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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기술] ⑧위기의 시간, 채권은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방어’와 ‘회복’ 사이에서 채권이 보여주는 진짜 역할

  • 입력 2025.06.30 10:00
  • 수정 2025.07.01 07:12
  • 기자명 안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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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금리는 그 문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익숙한 개인에게 채권은 여전히 낯선 자산이다. 그러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채권부터 이해해야 한다.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박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다. 이 시리즈는 채권의 기초부터 실전 전략까지, 시장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우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그래픽=안중열 기자·챗gpt]
[그래픽=안중열 기자·챗gpt]

[직썰 / 안중열 기자] 시장에 위기가 찾아오면 투자자는 늘 같은 갈림길에 선다. 지금은 기다릴 때인가, 움직일 때인가. 금리 급등, 신용 경색, 정책 혼선 등 위기의 양상은 매번 다르지만, 불확실성이 짙어질수록 자산은 방향이 아니라 구조로 말한다. 채권은 그 구조를 가장 먼저,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는 자산이다.

흔들리는 시장을 견디고 다시 뻗어 나갈 수 있는 전략은 예측보다 설계에 가깝다. 채권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복원력 있는 투자 시스템의 출발점이다. 이번 편에서는 위기 국면에서 채권이 수행하는 실질적 역할과, 이를 토대로 구축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 배분 방식을 살펴본다.

◇회복의 마중물, 채권

시장이 흔들릴 때 다수의 투자자들은 보유 자산을 줄이고 현금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만, 실전에서 성과를 내는 투자자는 자산의 크기보다 구조를 바꾼다. 이때 채권은 단기 충격을 흡수하면서도 회복기의 수익을 선도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금리 급등기나 신용 경색 국면에서는 단기채나 변동금리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방패 역할을 한다. 반면 정책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거나 유동성 회복의 조짐이 보이면, 장기채와 BBB급 이상의 우량 회사채가 먼저 반등 흐름을 이끈다. 위기 속 채권은 위험을 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회복을 준비하고 선점할 수 있는 구조적 자산이다.

◇스프레드 축소가 신호다

시장이 충격을 받을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자산은 채권이지만, 회복의 시작도 가장 먼저 포착된다. 이 과정은 채권 간 금리 차이, 즉 스프레드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난다. 기준금리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반응하는 것이 신용 스프레드이며, 이 지표의 축소 속도와 폭은 시장의 신뢰 회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 신호다.

같은 등급의 채권이라도 스프레드가 더 빠르게 좁혀지는 경우는 해당 발행처에 대한 시장 신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정책금융기관의 유동성 공급이 연결돼 있거나, 기업의 자구계획이 구체적으로 공개되고 투자자 대상 정보공개(IR)가 활발한 발행처일수록 가격 복원력도 크게 나타난다.

2022년 말, C건설 채권은 시장 불신으로 스프레드가 170bp까지 벌어졌지만, 정부의 유동성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두 달 만에 60bp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 기간 해당 채권의 가격은 약 8%가량 반등했다.

◇회복 조짐부터 전략 시작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는 시장이 바닥을 찍었다고 확신할 때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불확실성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즉 회복의 조짐이 감지되는 시점부터 수익 기회는 열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채권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략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짜야 한다.

예를 들어 단기 리스크에 대응해 단기채를 전체 포트폴리오의 2030% 수준으로 편입하면 유동성 확보와 손실 최소화에 도움이 된다. 동시에 스프레드 확대 구간에서 수익을 선점하기 위해 BBB 등급 이상의 우량 회사채를 3040% 정도 배분하면 회복기의 초과 수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때 정책 연계성과 정보공개 수준이 높은 기업을 선별하면 고수익 구간을 더욱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장기채는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되는 시점에 시세차익이 탄력적으로 발생하므로 전체 자산의 30% 이내 수준에서 담는 전략이 유효하다. 금리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경우 장기물은 단기물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환율 위험 관리와 시나리오 분산 효과를 고려해, 구조화 자산을 전체의 10% 이내로 배치하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과 회복 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원금보장형 DLS나 환헤지형 달러표시 채권 ETF, 인플레이션 연동형 펀드 등은 특정 국면에 최적화된 대응이 가능하다.

◇유동성 흐름이 진짜 위험 신호

‘현금이 최고다(Cash is king)’라는 말은 위기 때마다 되풀이된다. 그러나 시장이 실제로 마비되는 이유는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니라, 가격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는 ‘거래 단절’ 현상 때문이다. 체결이 사라지고 호가가 사라지면 가격은 의미를 잃는다.

이때 채권은 시장의 유동성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국고채와 AAA급 회사채의 거래량 변화, 단기물 금리의 갑작스러운 상승 패턴, 그리고 신용 스프레드의 급격한 확대나 비정상적 수렴 등은 모두 시장 불안 해소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2023년 PF 리스크 당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급등한 후 불과 두 달 만에 반등했고, 뒤이어 주식시장도 회복세로 전환됐다. 채권은 가장 먼저 흔들리지만, 동시에 회복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구조화 자산, 위기 분산의 설계 요소

자산 배분 전략에서 구조화 자산은 단순한 수익 추구가 아니라, 시나리오 분산과 리스크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기능적 가치를 갖는다. 원금보장형 DLS는 하방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으며, 환헤지형 달러표시 채권 ETF는 환율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된다. 또 인플레이션 연동 펀드는 실질금리 상승 구간에서 실질 수익률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들 자산은 단독 투자보다 전체 포트폴리오 내 안정성을 높이고, 특정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기능성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기관투자자는 조기 대응에 나섰다

2023년 10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시장에 확산되기 직전 보험사와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BBB+ 이상 회사채 매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시장은 여전히 높은 금리와 넓은 스프레드를 유지하고 있었고, 기준금리 인하는 공식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그해 10월부터 12월까지 기관투자자의 회사채 순매수 규모는 전체의 62%에 달했다. 이후 해당 채권군의 평균 가격은 약 3.2% 상승했다. 이들은 수익을 예측한 것이 아니라, 구조의 회복 가능성에 먼저 반응한 셈이다.

◇채권은 구조로 대응하는 자산이다

채권은 시장 충격기에 가장 먼저 흔들리지만, 회복기에는 가장 먼저 반등하는 자산이다. 단기적으로는 방어 기능을 수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수익의 엔진이 된다. 이 이중적인 속성은 단일 자산이 아닌, 설계된 구조 속에서만 발현된다.

지금 채권을 매수해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내 포트폴리오가 위기를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지, 회복을 선점할 수 있는 전략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구조는 예측보다 강하고, 타이밍보다 지속 가능하다. 시장은 반복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전략은 설계와 점검을 통해서만 반복 가능해진다. 채권은 생존의 도구이자, 회복의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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