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가계대출총량제가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은행권의 대출 관리가 사실상 ‘연중 규제’ 체제로 고착되고 있다.
연초 설정한 대출 증가율 목표에 맞추기 위해 은행들은 한도를 월별로 쪼개 운용하고, 연말이 다가오면 주택담보대출 창구가 잇따라 닫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주택 마련 실수요자는 대출 절벽에 내몰리는 반면, 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로 수요가 쏠리는 가계부채 불균형이 심화하는 역효과도 뚜렷하다.
◇연말 은행 주담대 취급 중단 잇따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대부분 은행의 연내 실행 주담대 대출 한도는 바닥을 드러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재 거의 모든 은행이 연내 실행 가능한 대출 한도를 모두 넘어섰다고 보면 된다”며 “한도가 남아 있는 은행이라 하더라도 곧 신규 접수를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은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 신규 접수를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22일부터 대면 신규 접수를 제한했고, 24일에는 비대면 신규 접수도 제한한다. 하나은행도 오는 25일부터 연말까지 영업점 신청 주담대와 전세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한다.
현재 5대 은행 가운데 주담대 취급 중단을 하지 않은 곳은 신한·우리·NH농협은행이다. 이들 은행은 모집인 대출은 중단했지만 대면·비대면 대출은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실질적으로 연내 대출 실행이 수월하게 가능한 곳은 농협은행 정도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아직 대출 한도에 여유가 남아 있어 상황에 따라 연내 대출 실행도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대출총량제 지속에 대출 절벽 연례화
은행권이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는 이유는 대출총량제 때문이다. 국가 가계부채 증가율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대출총량제는 은행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명목 GDP 성장률 이내로 제한한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에 연간 가계대출 관리계획을 제출하고, 연초 설정한 증가율에 따라 대출을 취급해야 한다. 만일 대출 한도가 소진되거나 소진이 예상되면 취급을 중단하거나 제한한다.
지난 2021년 하반기 시작된 대출총량제는 5년째 유지 중이다. 한도 관리 중심 규제이다 보니 대출 실수요자들은 불편이 크다. 올해의 경우 대출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영업점을 찾거나 비대면 대출 ‘오프런’을 시도하는 풍경이 일상화됐다.
대출총량제는 가계부채 관리라는 정책 목적과 달리 대출 구조의 불균형도 키웠다. 지난 10월 은행권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보름 사이 8825억원 증가했고, 같은 기간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도 1조4000억원 늘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총량 부담이 큰 주담대를 먼저 조이고 건드리기 어려운 마통·신용대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주담대 창구는 좁아진 반면 우회적으로 마통·신용대출로 수요가 쏠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발표한 ‘6·27’, ‘10·15’ 대책 등 부동산 안정화 방안으로 서울, 수도권 집값이 상승하면서 대출총량제에 따른 가계부채 불균형이 더 심화됐다.
◇정부, 내년도 총량제 유지…실수요자 분리 정책 필요
정부는 내년에도 대출총량제를 유지한다. 총량제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낮추는 데 일정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요자의 대출 접근성 악화, 가계부채 관리 불균형이라는 부작용이 드러났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출총량제는 연초 연간 목표가 정해지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월별·분기별로 한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라며 “내년 연말에도 대출 절벽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대출총량제는 6년차 돌입을 앞둔 가운데 규제가 상시화·고착화면서 ‘실수요자 피해’라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총량제 유지’라는 틀 아래에서도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별도 관리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주거 안정성과 대출 접근성은 지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