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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기술] ②같은 채권, 다른 수익률

숫자보다 구조, 구조보다 맥락…수익률 본질을 꿰뚫어야
금리는 결과일 뿐…‘IR과 정책 대응·회복 속도’ 등이 관건

  • 입력 2025.05.18 09:00
  • 수정 2025.06.05 14:07
  • 기자명 안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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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금리는 그 문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익숙한 개인에게 채권은 여전히 낯선 자산이다. 그러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채권부터 이해해야 한다.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박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다. 이 시리즈는 채권의 기초부터 실전 전략까지, 시장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우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그래픽=안중열 기자]
[그래픽=안중열 기자]

[직썰 / 안중열 기자] 채권 수익률은 단일한 숫자로 해석될 수 없다. ‘투자자금 회수 기간(듀레이션)’이나 신용등급이 동일하더라도, 기업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이유는 금리나 유동성 차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수익률의 결정에는 해당 기업이 정보를 어떤 방식과 시점에 공개했는지, 시장과 얼마나 일관되게 소통했는지,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어떤 구조로 대응했는지가 크게 작용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지표가 바로 ‘스프레드(Spread)’다. 국채 대비 회사채 금리 차이를 의미하는 스프레드는 단순히 위험 프리미엄의 척도를 넘어, 시장이 기업의 신뢰성과 회복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결국 같은 수준의 금리를 제시하는 채권이라고 해도, 해당 기업의 스프레드가 얼마나 빠르게 정상 수준으로 복원됐느냐에 따라 투자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등급은 같아도 수익률은 다르다…회복 속도와 설명력의 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대한항공의 A등급 회사채 수익률은 일시적으로 연 6%를 넘겼다. 전 세계 항공업이 사실상 멈춰 서면서 해당 업종 전반의 신용 리스크가 급격히 상승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후 산업은행의 긴급 유동성 공급, 항공 수요 회복 조짐, 자구안 발표 등이 이어지자 석 달 만에 수익률은 3.4% 수준으로 빠르게 하락했다. 신용등급은 변화가 없었지만, 시장은 대한항공의 대응 구조를 보고 신뢰를 회복한 것이다.

2022년 말 중흥건설 역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불안으로 인해 회사채 수익률이 6%까지 치솟은 바 있다. 그러나 계열사 유동성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개별 프로젝트별 현금흐름을 선제적으로 공개하면서 불확실성을 해소해 나가자 수익률은 한 달 만에 3.8%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두 사례 모두 ‘시장이 단순한 수치가 아닌, 위기 대응의 구조적 정합성과 설명의 설득력에 반응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차이를 계량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스프레드 회복 속도’다. 위기 발생 후 신용 리스크가 급등하면서 벌어진 회사채와 국채 간 금리차가, 평시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것이다. 한국신용평가와 KB자산운용 등은 이 지표를 활용해 개별 기업의 회복 탄력성과 투자 적합성을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의 경우 2020년 3월 약 260bp까지 벌어졌던 스프레드가 석 달 만에 70bp 수준으로 축소됐다. 반면 동일 등급의 다른 기업은 스프레드 정상화에 5~6개월 이상 소요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용등급은 동일했지만, 구조적 대응 역량의 차이가 수익률의 회복 경로를 갈랐다.

◇정보 공개의 타이밍과 정합성…시장 신뢰를 가른 ‘설명력’

같은 신용등급을 받은 채권이라도 수익률은 얼마든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는 단지 공시 횟수나 분량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시의적절하게 공개했는지, 그리고 그 설명이 투자자에게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가 핵심 변수다.

2023년 A건설은 분기마다 PF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며 시장과 능동적으로 소통했다. 반면 B건설은 정기공시 외에는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 결과, 같은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A건설의 회사채 수익률은 B건설보다 평균 0.38%포인트 낮게 형성됐다. 시장이 평가한 것은 단순한 등급이 아니라, 기업의 대응 일관성과 설명의 정합성이었다.

이처럼 정성적인 소통 능력을 계량화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기업설명회(IR) 빈도지수’는 정기공시 외에 기업이 비정기적으로 투자자와 얼마나 자주, 지속적으로 소통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IR 자료나 보도자료, 공시문 등에서 핵심 리스크와 관련된 키워드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명확하게 등장했는지를 기반으로 점수를 산출한다.

일부 자산운용사는 이 두 지표와 실제 스프레드 회복 속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투자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IR 빈도지수가 4 이상인 기업들은 평균 1.8개월 만에 스프레드가 평시 수준으로 복원된 반면, 빈도가 낮은 기업들은 회복에 평균 3.2개월 이상이 걸렸다. 즉, 정성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실질적인 투자지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불필요한 발표 남발이나 불확실한 언어는 오히려 시장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대응 태도와 논리적 일관성이다.

◇금리보다 변화 속도…‘하이브리드 운용’이 주목받는 이유

채권 수익률은 금리 그 자체보다 금리 변화의 속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2023년 1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 신호를 보내자 장기물 중심의 미국 국채 ETF인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만기 ETF’는 한 달 만에 13% 넘게 급등했다. 금리 방향성보다도 타이밍과 변화 속도가 수익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기 회사채 ETF는 유동성 부족으로 성과가 미미했지만, A등급 개별 회사채를 연 4.2% 수준에 매입해 만기까지 보유한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기록했다. 이처럼 회전 전략과 만기 보유 전략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운용’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다.

하이브리드 운용은 금리 방향성이 명확할 때는 듀레이션이 긴 채권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회전 전략을 취하고, 불확실성이 클 때는 단기물 중심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목표 수익률 기반의 자산 배분, 신용등급 분산 전략, 인플레이션 연동채 편입, 환헤지, 유동성 프리미엄 확보, 옵션 헷지 전략 등이 결합되면서 전략의 정밀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신한자산운용은 2023년 하반기 채권형 펀드에 하이브리드 전략을 적용해 기존 단기채 중심 포트폴리오보다 약 0.8%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전략은 단기 성과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반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대안으로도 유효성이 입증되고 있다.

◇수익률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구조부터 읽어야 한다

높은 수익률이 반드시 좋은 채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낮은 신용등급이 곧바로 고위험을 뜻하지도 않는다. 채권 수익률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해당 수익률이 어떤 구조에서 비롯됐으며, 어떤 정책적·설명적 맥락 속에서 형성됐는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스프레드는 왜 벌어졌고, 회복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됐는가. 기업은 어떤 정보를 통해 시장에 대응했고, 정책당국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이러한 구조적 질문에 입체적으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수익률의 실체가 드러난다.

IR 빈도지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점수, 스프레드 회복 속도 등은 이제 단순한 참고 지표를 넘어, 수익률의 구조와 시장 신뢰도를 해석하는 전략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향후 금융당국이 비재무 정보를 반영한 회사채 평가 기준을 제도화할 경우, 이러한 지표들은 공시제도뿐 아니라 투자기준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 투자는 더 이상 금리만을 쫓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금리를 만들어낸 구조를 읽고, 그 구조가 놓인 시장의 맥락을 전략적으로 해석하는 통찰이 필요한 시대다.

수치는 구조를 만들고, 구조는 맥락을 만든다. 진짜 수익률은 그 맥락을 꿰뚫는 안목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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