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15일 아침, 파리 교외에 설치된 처형대. 마타하리는 가을의 맑은 햇빛 아래 알몸으로 처형대에 묶여 있었다.얼마 후 "제3 군법 회의의 판결로 M.G.젤러(마타하리 본명)를 스파이 혐의로 사형에 처한다"라는 선고문이 낭독되었다. 사형집행인이 눈가리개를 씌워주려 다가가자 마타하리는 "내게 손대지 마세요. 눈가리개는 필요없어요!"라고 소리쳤다.그리고 잠시 후 12명의 사수가 발사한 총에 의해 의해 마타하리는 처형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41세. 혐의는 독일군 스파이였다. 당시 프랑스 재판관은 마타하리를 향해 "그녀
2018년 평창올림픽 때 한국을 찾은 유럽국가 선수들이 라면을 좋아했는데 특히 노르웨이 선수들이 한국 라면을 유독 즐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오래전 어느 한 한국인이 노르웨이에 라면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 때문에 노르웨이 선수들은 한국의 라면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좋아했다고 한다. '미스터 리(李) 조국의 대통령'2000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러 노르웨이에 갔을 때 언론에서 발표한 내용이다.한국전쟁 당시 미군 캠프에서 구두닦이로 일하던 중 폭격으로 부상을 입은 소년, 이 소년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었던 노
지난 2009년 '세계 부자' 순위 94위, '독일 부자' 순위 5위의 VEM 그룹 아돌프 매클레 회장이 동네를 지나는 열차에 몸을 던져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생긴다. 2008년 당시 GM을 비롯한 세계 자동차 업계가 무너지자 공매도가 유행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미리 팔고 주가가 내려갔을 때 주식을 사서 갚는 매매 방식이다. 일반인들은 보통 주식을 먼저 빌린 후에 매도를 하는데 돈 많은 고객에게는 주식을 먼저 팔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독일 최대 펀드 DWS와 메클레 등이 중심이 된 투기성 펀드는 GM과 같은 업종인 독일의
미국의 명문대는 동부 하버드, 서부 스탠퍼드로 나뉜다. 2014년 그 유명한 스탠퍼드를 중퇴한 한 화학 전공자가 ‘피 한 방울로 25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을 발표한다. 의료 서비스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창업한 엘리자베스 홈즈다.그녀는 유능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여인이 제시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현 미국대통령 바이든을 비롯 빌클리턴 전 대통령, 알리바바의 마윈 등이 극찬을 하고 돈 좀 있다는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테라노스’의 가치는 90억 달러 (약 10조 원)까지 치솟는다
의 첫 글은 폰지사기의 창시자 ‘찰스 폰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폰지의 수법은 그럴싸한 수익모델을 만들고 투자를 하면 고이율의 수익금을 준다는 방식이었다. 수익금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이전에 투자했던 사람에게 주는 방식인데 이 폰지사기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적이 있었다.지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멀지않은 알바니아란 국가에서 벌어진 일인데, 발칸반도의 서편 인구 330만의 작은 국가에서 발생한 국가 규모의 다단계 사건으로 내전까지 이어진 일이다.한 번 더 폰지게임을 간단히 설명하면 투자를 하면 수익을 꼬
1882년 임오년 6월 구식군대 군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유는 신식군대 별기군과의 차별대우. 구식군대는 13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하다가 겨우 1개월치 녹봉을 받았는데 그 나마도 모래가 80% 이상이었다고 한다. 당시 선혜청(쌀, 포, 동전의 출납을 관할하던 곳) 관리자가 민겸호였는데, 구식군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이를 조종한 인물은 권력에서 밀려난 흥선 대원군이다. 민겸호는 죽임을 당했지만 민비는 야반도주에 성공해 충주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의 집으로 도망간다. 그 시절 민비는 신통방통한 한 여인을 만난다.후일 ‘진령군’이라
때는 통일신라시대, 서기 752년 일본 후쿠오카에 7척의 배에 700여명의 대규모 신라 사절단이 도착한다. 긴 여정을 거쳐 3개월 후 일본 수도 나라에 도착한 신라 사절단은 여자황제 고켄천황을 알현하고 큰 절을 올렸다.일행의 우두머리 김태렴은 황제에게 신라에서 가져온 특산물을 바치며, 자신은 신라의 왕자인데 왕의 명을 받아 왔다며, 신라가 일본에게 조공을 바치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 일본 황제 코켄천황은 ‘조공’이라는 말에 넋이 나가 버렸다.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싸울 때는 잘 대해 주었는데, 통일 후에는 신라가 일본을 무시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까지 했던 형, 법대 재학시절 동기의 소개로 병원이사장 딸을 만나 법대 학장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난 형이 있었다.그런데 졸업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형의 집주소가 없었다. 결혼 때문에 정신이 없었나 보다 싶어 주소를 찾아 넣어 주려고 학적부를 뒤졌는데 ‘아뿔사’ 이 형의 학적이 없었다. 설마 했던 진짜 가짜 학생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속에 나온 일이 아니라 지난 1983년에 실제로 일어 났던 일이다. 이 형은 후일 저축 은행 회장님이 되니 김회장님이라 부르겠다.김회장님은 재학(?)
2001년 9월 11일, 뉴욕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붕괴 되었을 때 타냐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건물 잔해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사건 발생 5일 후에야 극적으로 구조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시 떠올리기 싫은 잔해더미에서 구조된 후, 그녀가 처음 들은 소식은 북쪽 빌딩에서 근무 중이었던 약혼자 데이브의 사망 소식이었다."9월 11일은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운 날씨였습니다. 여름의 마지막 날은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우리는 아침 7시 30분쯤에 도착해서 작별 인사를 했고 '사랑해, 나중에 봐'
1985년 6월 18일 일본 최대 사기꾼 중의 한명인 나가노 가즈오 도요타상사 회장의 집에 취재진이 몰려 든다. 당시 2,000억엔 (당시 환율로 약 7,500억원)을 공중 분해한 나가노가 구속된다는 정보를 듣고 생중계 하려고 3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온 것이다.그날 오후 4시 반 즈음 두명의 괴한들이 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나가노를 죽이러 왔다며 창문을 열고 들어가 품속에서 꺼낸 칼로 나가노를 살해한다. 당시 33세였던 나가노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 졌으나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이 장면이 일요일 오후 일본 공중파로 생중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아들로 태어나 네살 때 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다섯 살 때 첫 작품으로 ‘마림바를 위한 소나티네’를 작곡하고, 열살 때부터는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한 천재가 있었다.하지만 음대에는 진학하지 못했고 노동자, 노숙자로 지내기도 했다. 평소 지병인 난청 증세가 악화되어 음악에 전념하지 못하고 록밴드의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병이 심해져 포기하게 된다. 이후 작곡가로 활동을 하는데, 그의 나이 서른 셋,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중에 왼쪽 귀의 청력을 상실한다.그로부터 2년 뒤 오른쪽 마저 청력을 상실하면서 청각장애 2급
일본의 키지마 카나에(木嶋 佳苗)는 1974년 11월 27일생(체포 당시 34세)으로 혼인빙자를 내걸어 최소 6명의 부자 남성을 살해한 엽기 꽃뱀으로 불린다. 꽃뱀은 이쁠 것이라는 환상을 카지마 카나에는 어김없이 무너뜨렸다. 2009년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의 한 주차장.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41세의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된다. 차량 안에서는 연탄이 발견되고 혈액에서 수면제, 알콜성분까지 검출되어 정황상 자살로 추정된다. 차에서 숨진 남자는 7세 연하, 당시 34세의 여성과 교제 중이었는데,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을
대한제국 시절, 임오군란으로 잠시 궁을 떠나야 했던 명성황후에게는 '진령군'이라는 무속인이 있었다. 사진 자료는 거의 없지만 진령군이라 불리었던 무속인에 대한 기록은 곳곳에 남아 있고, 진령군이 직접 골랐다는 집터가 서울 혜화초등학교 근처에 남아 있다.진령군이라는 이름도 고종이 직접 하사했다 하는데, 황실의 일을 결정할 때면 진령군에게 앞날이 어떻게 될지 물어 봤다고 한다. 대한제국 황실의 국정운영이 진령군 손에 달려 있던 셈이다. 대한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라면 반대편 서쪽 끝 러시아제국에는 '라스푸틴'이 있었다. 이 두
찰스폰지는 1882년 3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는 중에 대학에 합격했는데, 폰지의 돈 많은 친구들은 그 시기를 인생의 방학으로 여기며 지냈다.폰지도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결국 무일푼의 처지가 되고 대학학위도 받지 못했다.당시 이탈리아 청년들 사이에선 신대륙으로 가서 돈을 벌어 부자로 돌아오는 꿈을 꾸던 게 유행이었다.폰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모아 1903년 보스턴으로 가는 이민선에 올랐는데 가지고 있던 돈 2.5달러 마저 도박으로 탕진했다.가난한 이민자들이 그랬듯 폰지는 식당에서 숙식하며
피해 액수가 조 단위가 나오는 사기사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폰지사기'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폰지는 찰스 폰지(Charles Ponzi, 1882년 3월 3일 ~ 1949년 1월 18일)라는 인물에서 따왔다. 폰지사기는 그럴싸한 사업의 모습을 만들고 그 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얻는다며 사람들의 투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일컫는데, 사실 사업의 실체가 없다.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을 지급할 뿐이다. 그래서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이, 먼저 투자한 사람보다 많아야 하니 일종의 '피라미드 형식'을 띤다. 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