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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 문화가 회사를 망친다

  • 입력 2016.01.28 12:13
  • 수정 2016.01.28 12:14
  • 기자명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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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를 같이 시작했던 후배들이 이제는 모두 임원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역경과 고난의 시간을 같이 한 전우들이죠. 사석에서 임원들은 저를 ‘형’이라 하고 저 역시 그들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서로 막역한 사이입니다. 이런 끈끈한 관계는 회사에 위기가 닥쳤을 때 힘을 한데 모아 위기를 돌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곤 했습니다. 회사는 이해관계가 바탕이 된 ‘2차 집단’이라고들 하지만 저와 임원들 간에는 가족 같은 끈끈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고민이 생겼습니다.
역량 있는 외부인을 임원으로 스카웃 해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리더군요. 임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임원에게 문제가 있긴 하더라고요. 제가 능력에만 신경을 썼지 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자 혹시나 저희 조직의 순혈주의(純血主義)가 역량 있는 외부인을 배척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현 상황에서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회사 사례도 있을까요?




CEO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임원들, 괜찮을까?

성과만으로 평가하는 조직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바탕으로 서로 이끌어주고 허물을 보듬어주는 그런 조직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업초창기부터 동고동락해왔던 멤버들이 그대로 회사에 남아 있다면 그들 간의 연대의식은 꽤 끈끈할 것이다.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라 친구, 전우(戰友)라는 친밀함. 대기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작은 기업이 갖는 강점일 수도 있다.




리더는 과연 이런 분위기에 만족하고 이를 장려하는 것이 맞을까? 이들이 갖고 있는 연대의식이 자칫하면 패거리 문화로 변질되어 조직의 건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리더는 과연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할까.
김 이사가 10여 년간 몸 담았던 회사는 업계의 오랜 불황, 그리고 주요 매출처의 부도를 이유로 인한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부도처리 되었다. 마지막까지 회생해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실력이 뛰어났고 성실함이 몸에 밴 그였기에 퇴사 후 여러 곳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김 이사는 자신에게 입사 제의를 한 회사 중 부동산 개발업체인 W사에 총무담당 이사로 입사했다.
김 이사가 W사 입사를 결정한 것은 우선 W사 대표인 박 사장의 온화한 인품에 매료되었고, W사에는 관리 파트 전문가가 없었기에 김 이사가 회사에 확실히 기여할 부분이 있겠다는 판단 등이 감안되었다. 김 이사는 W사에서 제2의 인생을 제대로 꽃피워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W사 임원진이 대부분 박 사장의 후배와 지인들이라는 것이었다. 사석에서 임원들은 박 사장을 ‘형님’이라 불렀으며, 박 사장 역시 임원들에게 스스럼없이 반말을 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와는 판이한 분위기라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서로 믿음을 갖고 일하는 것이 보기 좋았기에 김 이사는 자기도 빨리 W사 문화에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 이사가 W사 임원들의 업무 처리 방식을 점검하다 보니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한시가 급한 업무임에도 여유를 부리는가 하면, 반대로 신중하게 이중 삼중으로 체크해서 처리해야 할 사안을 대충 결정한 뒤 박 사장에게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꼼꼼한 일처리가 특기인 김 이사였기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조만간 곳곳에서 지뢰가 터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동안 이렇게 어영부영 회사가 굴러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김 이사는 본인이 느낀 문제점을 박 사장에게 보고해야 하나 고민했다. 보고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임원들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새 식구가 기존 인원들을 질투해서 흠집잡기 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회사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총무담당이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자신을 임원으로 채용해 준 박 사장에 대한 도리라 생각하고 독대를 신청한 후 박 사장에게 회사의 전반적인 문제점, 특히 핵심 임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이나 안이한 태도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김 이사, 회사마다 다 나름의 문화가 있는 거요

그런데 박 사장이 김 이사의 이야기에 보인 반응은 김 이사에겐 상당히 의외였다.


“김 이사. 회사에서는 인화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새롭게 합류한 사람이 갑자기 뾰족한 목소리를 내면 다른 임원들과 사이가 멀어질 수 있어요. 우리 회사가 그리 큰 규모도 아닌데 임원들 간에 분란이 생겨서는 힘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도 나름대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우선은 다른 임원들과 잘 어울리도록 하는 데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랍니다.”


나름 고민 끝에 충정을 담아 사장에게 고언을 한 건데, 박 사장은 인화단결 운운하며 김 이사를 트러블메이커로 취급하는 것 같이 김 이사는 머쓱해졌다. 속도 쓰렸다.
박 사장은 꼼꼼히 일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담당 임원들에게 상당한 전결권을 주었으며 본인은 큰 결정만 내렸다. 김 이사로서는 박 사장이 강조하는 인화단결이라는 말이 상당히 거북하게 들렸다. 임원회 자리에서 임원들은 다른 임원에 대한 칭찬을 자주 했는데 김 이사가 볼 때는 서로 밥그릇을 챙겨주는 짬짜미 액션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임원들 간에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김 이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다시 박 사장에게 건의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하고 몇 가지 사례를 모았다. 자료를 들고서 다시 박 사장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박 사장은 자료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김 이사에게 짜증을 냈다.


“김 이사도 이제 우리 식구가 된 지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이리 융화가 안 되나요? 임원은 전체적인 큰 틀을 잡아가는 사람이지 이런 식으로 디테일한 것까지 관여하고 통제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회사마다 그 나름의 문화, 분위기가 있는 겁니다. 김 이사가 예전 회사에서는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모르겠지만...”


김 이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이사의 퇴사와 W사의 위기

비밀은 없는 법. 김 이사가 박 사장에게 보고를 했다는 사실이 암암리에 임원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기존 임원들의 김 이사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김 이사가 하지도 않은 일이 교묘하게 왜곡되어 박 사장에게 전달되었고, 그로 인해 김 이사는 박 사장에게 몇 번 질책을 당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김 이사가 여직원과 이상한 관계라느니, 납품업체로부터 자주 접대를 받는다느니. 그 괴소문의 출처가 어딘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김 이사는 결심했다. 임원들의 공고한 연대가 자신에게는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다.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찾기 어려웠다. 적지 않은 나이에 들어간 회사라 버텨보려 했지만 눈총에 무력감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1년 뒤, W사는 모 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을 정상적인 사업이 아닌 부정한 곳에 사용했음이 드러나 업무상 횡령, 배임의 문제가 불거졌다. 상호저축은행은 대출약정 위반을 이유로 대출금에 대한 일시 회수에 들어갔다. W사의 현금 유동성은 위기에 빠졌다.
회사를 떠났던 김 이사는 박 사장의 요청으로 긴급 투입되어 법적인 업무를 도왔다. 하지만 둑이 터지듯 그 동안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문제들이 전부 대두되었다. 사정이 좋을 때는 적당히 묻힐 수도 있었겠지만 위기 때는 그러지 못했다.
박 사장과 임원들은 상호저축은행에 연대보증 섰던 금액을 갚지 못해 전부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 중 몇 명은 횡령과 배임이 문제가 되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에 관한법률위반(사기)죄로 실형(징역 1년~ 3년)을 선고 받았다.


“서로 보듬어주던 인적 카르텔이 위기 앞에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저도 새삼 느꼈습니다.”


W사 법무업무를 같이 담당했던 나에게 김 이사가 털어 놓은 스토리의 전모는 위와 같다.




패거리만 들어찬 회사는 반드시 망한다
박 사장이 강조했던 인화단결과 융합. 과연 회사의 건강성을 해치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였을까. 회사는 친목단체나 동아리가 아닌데 말이다. W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패거리 문화’였다. 조직 내 ‘사조직’, ‘이너서클’이 바로 이런 문제점을 갖고 있다. 같은 패거리에 속한 사람은 키워주고 지켜줬지만 패거리에 융화되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배척되는 분위기.
CEO는 인재를 등용하거나 평가함에 있어 ‘주위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다. 요즘 회사에서 많이 하고 있는 다면평가 역시 특정인에 대해 여러 사람의 평가를 종합해서 판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다만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는 평가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회사에 대한 기여’와 ‘동료들 간의 평가’가 항상 같을 수는 없을 터. W사의 경우 임원들이 교묘한 카르텔을 형성하는 순간 CEO의 눈과 귀가 닫혔던 것이다.
한비자는 <유도>(有度) 편에서 신하들이 패거리를 짓고 국정을 농단하거나 군주를 미혹하게 하는 일들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칭찬을 근거로 능력자라 하여 끌어올린다면 신하는 위로부터 이탈하여 아래로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만들 것이다. 파당관계를 가지고 관리를 등용한다면 민간은 사적인 교제에만 힘을 쓰고 법에 의한 임용은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관리들 중에 능력자가 없게 되면 그 나라는 어지러워질 것이다.“
“칭찬받는다 하여 상을 주고 비방당한다 하여 벌을 준다면 상을 좋아하고 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공도(公道)를 버리고 사리(私利)쪽으로 수작을 부려 작당해서 서로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충신은 죄 없이도 위태롭게 되고 죽임을 당하며, 간사한 신하는 공이 없는데도 편히 즐기고 이득을 보게 된다. 충신이 위태롭게 되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유능한 신하들은 몸을 숨길 것이다. 또한 간사한 신하가 편히 즐기고 이득을 보면서도 그것이 공적 때문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간악한 신하가 횡행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멸망하게 되는 근본이다.“


리더는 조직 내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칭찬, 비방)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 평가 속에 담길 수 있는 사리사욕이나 경향성을 인지해야 한다.
CEO가 주위 칭찬만 듣고 추켜세우면 임원들은 서로를 칭찬해주는 패거리를 만들게 된다. CEO가 그런 주위 칭찬이 실질에 부합하는 것인지 냉정히 따져보지 않고 그에 편승한다면 임원들은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는 것보다는 무리지어 아첨하는 데만 더욱 열을 올릴 것이다.
일단 패거리가 CEO에게 잘 보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너도나도 패거리를 만드느라 혈안 되는 건 당연지사. 문제는 인재들의 자리를 사리만 추구하는 패거리가 대신한다는 데 있다. 유능한 인재가 적소에서 쓰이지 못하는데 누가 남아 있겠는가. 패거리만 들어찬 회사가 도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CEO는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박 사장이 미욱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존 임원들이 서로 인간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 그리고 김 사장의 색깔이 기존 임원과는 다르다는 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 사장은 김 이사를 조직을 위해 적극 활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미 조직이 균일화된 상황이라면 이질적인 구성원이 합류한 경우, 리더는 그 새로운 구성원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기존 조직원들을 긴장하게 할 수도 있다. 분명 ‘세력’이라는 면만을 따져보면 김 이사는 기존 조직원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의 견제는 박 사장의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무리 기존 인력들이 서로 뭉쳐 있다 하더라도 CEO가 자신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누군가를 지지하면 힘의 균형관계는 급속도로 무너질 수 있다. 박 사장이 이런 식으로 김 이사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은 것은 아마도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김 이사가 박 사장에게 독대를 청하면서까지 기존 조직의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충정과 패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면 기존 조직에 대한 처방을 함에 있어서 김 이사를 충분히 활용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박 사장은 눈치챘어야 한다.
오히려 눈치가 빨랐던 것은 기존 임원진들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김 이사를 견제하기 위한 술책을 감행했다. 자기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간신의 입장에서는 능력에 관계없이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이 자신의 ‘정의’다. 군주를 교묘하게 꾀면 노력 없이도 대접받을 수 있는데 힘들여 역량을 키울 필요가 없다. 조직의 순혈주의는 이처럼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신이 CEO라면 고인 물은 썩는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외부인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조직을 바라보길 권한다. 물론 당장 칼을 휘두르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그들은 리더의 예상보다 더 높고 공고한 성을 쌓아두었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런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열린 셈이다. 내 눈과 귀를 가렸던 그들의 평판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조직을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조직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원문 : 조우성 변호사의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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