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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입력 2016.01.26 10:12
  • 수정 2016.01.28 12:25
  • 기자명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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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가 가능할까?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CEO들이 있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고 경영자로서의 경력이 짧은 CEO일수록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하곤 한다.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고, 그 직원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싶으며, 언젠가 내 곁을 떠난다 하더라도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면 축복 속에 보내줄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큰 규모의 사업체를 오래 경영해 본 CEO들은 직원들 개개인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표현하는 예가 드물다. 간혹 있다 하더라도 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나 드러나는, 약간은 만들어진 이미지이지 그의 진심이 과연 그럴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CEO와 직원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여야 하나?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관계로 이해한다면 비난받아야 하나?
같은 미래를 꿈꾸며 야근을 하더라도 씩 웃고 있는 기특한 직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CEO에게 이런 질문은 도발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시험에 들지 않은 우정처럼 허약한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철석같이 믿었던 우정도 이해관계나 감정의 미묘한 흐름으로 인한 갈등에 노출되면 쉽게 깨질 수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꿔 본다.
시험에 들지 않은 CEO와 직원의 관계처럼 허약한 것이 또 있을까?




직원들을 사랑한 CEO

직원 30명 규모의 K사를 운영하는 권 사장. K사는 고객사로부터 오더를 받아 금형을 제조하여 OEM 방식으로 물품을 제조, 납품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 일 자체가 이익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권 사장은 반월 공단에서 자수성가한 견실한 기업가로 평가받았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권 사장의 직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고등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배움에 대한 한이 컸다.
권 사장은 직원들에게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며 원하는 직원들에게는 야간대학, 사이버대학, 외부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매출 규모에 비해 직원들의 자기계발비 비율이 높았지만 권 사장은 ‘직장은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개개인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던 K사에 위기가 닥쳤다. K사 매출이 특정 몇몇 회사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 그 동안의 잠재적인 리스크였는데, 최대 거래업체인 B사에 큰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B사는 결국 부도처리 되고 말았다.
K사는 B사에 꽤 큰 금액의 미수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은 다소 시간차를 두고서 미수금들이 다 지급되어왔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B사가 갑자기 부도처리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K사는 B사의 많은 채권자들과 부대끼며 경쟁적으로 노력했지만 채권을 회수하는 데 실패했다.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권 사장은 당황했다. K사는 사내 자금유보율이 높지 않은 편이었는데 거액의 미수금으로 인해 현금유동성 문제에 봉착했다. 권 사장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권 사장은 자신이 제일 하기 싫은 일, 즉 직원들의 급여를 제때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다.




급여가 두 달째 밀리게 되자 직원들은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났다. 그 중 몇몇은 권 사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왔고, 다른 2명은 임금체불을 이유로 권 사장을 노동청에 고발했다. 권 사장은 노동청과 검찰청을 오가며 수사를 받게 되었다.


"내가 참 덕이 없나 봅니다. 내 생각엔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오히려 직원들이 대동단결해서 어려움을 극복해 줄 것 같았는데 당장 두 달치 급여가 밀리니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지더군요.”


검찰 수사를 앞두고 나를 방문한 권 사장은 회한이 서린 표정으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알고 봤더니 노동청에 저를 고발하는 데 앞장 선 직원은, 제가 평소 제일 아꼈던 친구였어요. 유달리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큰 친구라 예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는데... 다들 부양할 가족들이 있으니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야속한 마음이 밀려와 자다가도 몇 번씩 깹니다. TV에서 보면 회사가 어려울 때 월급을 반납하고 경영을 정상화 시킨다는 미담이 방송되곤 하던데 그건 정말이지 TV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권 사장이 느끼는 심리적 공허함, 허무감의 상당 부분은 ‘믿었던 직원들’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이 키웠던 회사의 운명이 풍전등화 신세가 된 상황 자체보다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직원들의 본인에 대한 신뢰의 깊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은가 하는 데서 더 상처를 받은 듯했다. 나는 권 사장을 위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직원들을 탓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CEO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한비자는 일찍이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마음 속 깊이 군주를 사랑하는 신하는 없다."


너무나 단정적인 말이라 혹여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까 싶다. 한비자의 이런 관점은 군주와 신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父子) 관계에 비유하며, 군주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신하를 보살피고, 신하는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유가(儒家)의 입장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지만 나는 한비자의 저 비정한 언급에는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말의 ‘불편한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인데 남편이 혹은 아내가 몇 달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해서 그 관계를 끊는 것을 정상적이라 볼 수는 없다. 부부는 이해관계가 아닌 사랑이 바탕이 돼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CEO와 직원의 관계도 그렇게 치환해서 대입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직원이 CEO를 사랑해야만 할까. 직원이 CEO를 사랑하려면 정작 자신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줘야 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 직원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직원의 입장에서 어려움은 없을까.
직원들에게는 그들이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진짜’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CEO는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직원들을 비난하긴 어렵지 않을까.
CEO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부담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같은 마음으로 자신과 함께 고민을 나눌 조직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직원들을 동생처럼 다루고,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CEO가 생각하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며 독려하지만, 어느 순간 CEO와 직원의 입장이 확연하게 엇갈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결국 CEO와 직원이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도 다르더군요’라며 한탄하는 CEO를 여러 번 보곤 한다.
CEO가 이렇게 직원들로부터 배신(?)의 순간을 맛보게 되면 그때부터 CEO가 직원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한다. ‘그래, 비전 같은 거, 직원들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아.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이야. 비전을 목 아프게 외쳤던 나만 바보지.’ CEO는 더 이상 직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비정해지려 노력한다.
나는 CEO가 직원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배신감에 떨면서 마음을 닫아 거는 것도 전체적인 상황파악에서의 편협함,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람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거다."

분노에 떨고 있는 CEO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마천 사기의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맹상군이 군주의 신임을 받고 부귀가 극성했을 때는 휘하에 식객이 수천 명 있었으나, 군주의 신임을 잃어버린 이후에는 그 많던 식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 맹상군은 식객 ‘풍환’ 덕에 다시 복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자 다시 예전의 식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맹상군은 그 예전의 의리 없던 식객들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자 풍환이 이를 말리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살아 있는 자가 반드시 죽는 것은 사물이 반드시 이르는 바요(生者必有死는物之必至也), 부귀할 때 선비가 많고 빈천할 때 친구가 적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군께서 과거에 직위를 잃었을 때 식객들이 모두 떠나간 것을 두고 이제 와서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계속 원망하신다면 이는 선비들이 다시 군께 돌아오는 길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원하옵건데 군께서는 옛날처럼 식객들을 대우하여 주십시오.“


이에 맹상군이 풍환에게 두 번 절하며 “삼가 그 명에 따르겠소. 선생의 말씀을 듣고 어찌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삼국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시대의 간웅(奸雄) 조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조가 자신을 괴롭히던 원소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승리 후 원소의 방을 뒤져 본 신하가 수색 과정에서 수상한 편지 무더기를 발견하고는 조조에게 갖다 바쳤다. 그 편지 무더기 속에는 조조 측에 있던 사람들이 원소 진영에 잘 보이기 위해서 암암리에 조조 측의 정보를 보냈던 편지들도 있었다. 조조의 부하들은 그 편지에 격분해서 편지의 주인공들을 모두 잡아 처형해야 한다고 조조에게 주장했다. 그런데 조조는 격분한 부하들에게 태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원소의 세력이 강대할 땐 내로라하는 영웅호걸조차 자신을 보호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힘없는 군사들이야 말할 게 없지 않는가. 십분 이해한다."


그러고는 그 편지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이 퍼포먼스는 부하직원들을 다루는 영리한 전술로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를 뛰어 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냉정히 꿰뚫고 있었던 조조이기에 쿨하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비자가 군주와 신하 관계를 언급한 대목은 그의 책 전편에 여러 차례 나온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이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군주와 신하는 서로가 계산하는 사이다. 신하는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에 이익되는 일을 하지 않으며, 군주는 국가에 손실을 끼치면서 신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행하지 않는다.(君臣之交, 計也, 害身而利國, 臣弗爲也, 害國而利臣, 君不行爲也)”
“남의 신하가 된 자의 마음은 반드시 그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人臣之情非必能愛其君也, 爲重利之故也)”
- 간겁시신 편



<한비자>



한비자를 흔히 모략과 권모술수에 관한 비법을 담은 책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한비자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한비자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돌직구 조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둘러 포장해서 표현하는 것을 좀 더 세련되고 예의 바른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비자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전국시대 말엽, 최약체 국가로서 호시탐탐 주변국가의 제물이 될 위험에 놓인 조국 한(韓)나라 군주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솔직한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비자의 ‘표현방법’이 아니라 그 내면에 흐르는 인간의 솔직한 정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그렇게 성장한다

권 사장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지금은 다시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요즘은 예전처럼 직원에 대한 애정 표현은 하지 않는다. 마음에 분명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권 사장이 예전에 품었던 마음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버텨낼 수 있는 힘과 지혜가 그 당시엔 조금 부족했을 뿐이라 말해주고 싶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약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임을 염두에 두고 관계나 상황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상처주지 않고 서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라는 방법론적인 관점에 집중을 할 필요가 있음을 보완하면 될 문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권 사장이 예전처럼 직원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듣고 싶다. 그 마음은 비바람을 이겨내고 품은 애정이기에 쉽게 상처받거나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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