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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보고 떠오른 지율스님의 가슴 쓰린 추억

  • 입력 2018.10.22 18:27
  • 기자명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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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50일째를 맞은 지율스님

‘지율스님의 '도롱뇽 단식' 등으로 인해 대구 천성산 터널 공사가 지연돼 6조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는 허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 대법 “’지율스님 때문에 6조원 손해’ 조선일보 기사는 허위”, 연합뉴스, 18.10.19.

지율스님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스님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두 차례, 무려 150일이나 단식을 하셨을까. 누가 뭐래도 스님처럼 목숨을 건 투쟁을 한 사람은 흔치 않다.

지율스님을 생각하면 잊히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두 번째 단식이 100일이 다 돼 갈 무렵이었다. 스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터져 나왔는데 스님이 갑자기 행방을 감췄다. 청와대는 물론 언론에서도 스님의 행방을 수소문하느라 난리가 났다. 그때 오마이뉴스로 제보가 들어왔다. 양평 모 수도원에 계신다는 것이었다. (*편집자 주: 필자는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국 국장이었다.)

마침 그때가 연말연시여서 나는 그날 밤 전 직장 모임에 참석해 있었다. 핸드폰으로 스님 소식을 접한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와 급히 광화문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는 몇몇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비상 소집했다. 나는 당시 김병기 사회부장에게 회사에 남아서 기사를 처리하라고 지시하고는 권우성 사진기자까지 네댓 명이 새벽 너덧 시경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다. 수도원의 정확한 이름이나 위치도 모른 채. (이날 우리는 여건이 되면 현장에서 기사를 부르고 김 부장이 사무실에서 받아서 속보로 현장 중계를 할 예정이었는데 여의치 않아 기사를 쓰지 못했다. 대신 그 이튿날 내가 당시 상황을 칼럼으로 하나 썼다.)

광화문 회사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양평에 도착했다. 한겨울이어서 사방이 캄캄해 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요기도 할 겸 양평의 명물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주인에게 사정 얘기를 했더니 근처에 수도원이 하나 있다며 위치를 알려줬다. 히끄무리하게 날이 밝아오자 우리는 식당 주인이 알려준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초행길이어서 좀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번지수도 정확히 모르는 데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었다.

단식 100일 무렵 체중이 28.3kg까지 떨어진 지율스님

한참을 헤매다가 어렵게 수도원을 찾았다. 구불구불 2차선 도로가에 있었는데 간판이 너무 작아서 찾기가 어려웠다. 도로에서 제법 멀리 정문이 있었는데 경사가 상당히 가팔랐다. 차를 몰고 경사진 곳을 올라 정문 앞에 다다르자 큰 개 너덧 마리가 우르르 나와 차를 막아섰다. 개 짖는 소리가 나자 잠시 뒤 사람이 나왔는데 수도사 복장이었다. 신분을 밝히고 용건을 얘기하자 나를 그곳 대표자 되는 분에게 안내해줬다.

나는 일단 대표자에게 스님의 안위부터 물었다. 여기 계시는데 상태는 위중하다고 했다. 한번 뵙기를 청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떠나서 스님 목숨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내가 목청을 높였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잠시 뒤 한마디 했다.

“종교인은 믿음에 따라 목숨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섬뜩했다. 우리는 쉬 납득하기 어렵지만 종교인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나는 한사코 스님을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떼를 쓰다시피 했지만, 도통 말이 통하질 않았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스님을 한번 뵙고 싶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외부인을 일절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님을 두 번 만나 뵌 적이 있고 오마이뉴스가 스님 관련 기사를 여러 번 보도해서 신뢰감을 갖고 계실 거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내가 그 대표자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스님을 설득할 수 있는 분이 안 계십니까?”

그분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분이 입을 열었다.

“정토회관으로 법륜스님을 찾아가 보십시오.”

우리는 스님이 누워 계신다는 별채의 겉모습만 한 장 찍고는 급히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전후로 정토회관에 도착했다. 나는 다짜고짜 법륜스님을 급히 좀 뵙고 싶다고 부탁했다. 마침 계시다고 했고 스님께로 안내해줬다. 스님께 제대로 예를 갖출 겨를도 없이 거의 떼를 쓰다시피 내가 말씀을 드렸다.

“지율스님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제발 법륜스님께서 좀 나서주십시오. 방금 양평 수도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법륜스님은 듣고만 계셨다. 이미 상황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들 가십시오.”

스님은 무슨 묘책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럼 저희는 스님만 믿고 물러가겠습니다.”

그로부터 2, 3일 뒤에 지율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나오셨다. 그때가 설날 하루 전날이었다. 이걸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스님 취재 때문에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귀성을 못해 불평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어느새 근 13년 전의 얘기다.

직썰 필진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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