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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성폭력 교수 연구실을 덮은 포스트잇들

  • 입력 2018.03.26 13:55
  • 기자명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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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을 박살 내러 돌아온다

미국 체조대표팀의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의 성폭행, 성추행 재판 과정에서 한 증인이 했던 말이다. 최근 이 문구가 이화여대의 한 교수 연구실 벽면에도 붙었다.

이화여대 교수 연구실에 붙은 한 벽보 ⓒ이화여대 커뮤니티 사이트

지난 23일 이화여자대학교 내의 두 개 교수 연구실 벽면이 성폭력 규탄포스트잇에 뒤덮였다. 래리 나사르를 향한 증언의 문구를 인용한 것도 그중 일부다. 이화여대의 강력한 여성들이 수십 년간 성폭력을 저질러온 것으로 추정되는 교수들을 박살내기 위해 정말로 행동에 나섰다.

연구실의 문과 벽면엔 성범죄자의 방” “성범죄자는 방을 빼라라는 문구와 함께 해당 교수들의 성폭력을 규탄하고 학교의 대처를 요구하는 메모지들이 가득 붙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성폭력사건 비상대책위원회

언급했듯 이 인상적인 포스트잇 시위가 벌어진 이유는 해당 연구실을 사용하는 교수들을 두고 상습 성추행, 성희롱 논란이 일어났기 때문. 최근 이화여대에선 조형예술대학 K 교수와 음악대학 관현악과 S 교수를 대상으로 성폭력 가해 사실을 폭로한 미투 운동이 벌어졌다.

지난 20일 페이스북 페이지 이화여대 조소전공 성폭력비상대책위원회 K 교수가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22일 페이스북 페이지 이화여대 음악대학 관현악과 성폭력사건 비상대책위원회 S 교수 또한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 희롱해 왔다고 고발했다.

조소전공 성폭력 비대위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SNS에서 K 교수의 성폭력을 폭로한 최초 제보자가 등장했다. 이후 같은 교수에 대한 복수의 성추행 제보가 뒤를 이었다.

각 제보에 따르면 “K 교수는 대학 MT, 전시 뒤풀이, 자신의 작업실, 서울 모처의 술집 등에서 제자들에게 성추행을 자행해 왔다. K 교수가 행한 성폭력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여성 비하 발언, 성적 농담” “제자들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고 주무르며, 신체접속을 시도등이 제보됐다.

S 교수 또한 마찬가지다. 음악대학 관현악과 성폭력 비대위에 따르면 S 교수는 부임 이후 수십 년 동안 개인 레슨 시간, 전공 수업시간, 클래스 모임 등에서 학생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관현악과 성폭력사건 대책위는 외모에 대한 평가와 성희롱적 발언은 물론이고 건강상 이유, 자세 교정, 악기 지도 등의 이유를 들어 성추행하고 본인이 한의학을 공부했다며 신체 부위를 만지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일삼았다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조형예술대 K 교수 성폭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한겨레

두 교수에 대한 제보를 종합하면 공통점이 나온다. 두 교수는 모두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일삼았으며,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교수의) 성폭력을 조심하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인데도, 가해 교수들이 학계에서 가진 영향력 때문에 학생들이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는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에 해당한다. 조소과, 관현악과 성폭력 대책위는 교수들의 성폭력 행위가 소수과이자 졸업과 진로를 위해선 교수의 직접적인 평가가 중요한 예술대, 음대의 특징을 악용한 것이라 지적했다.

(최근 검찰에서 구속이 결정된 이윤택 성폭력 사건이나, 용인대에서 폭로된 거문고 명인 이오규 교수의 성폭력 사건 등에서도 같은 양상의 경향이 확인된다)

현재 조소과 K 교수는 침묵, 관현악과 S 교수는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있다.

지난 22KBS의 보도에 따르면 S 교수는 “(자신의) 행동을 오해하는 학생들이 있어 오래전부터 아예 터치를 하지 않는다며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이어 음대 학생들은 단체 행동을 하고 그런 성격들이 못 되는데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는 조작된 이야기다라며 자신을 향한 폭로와 비판을 조직적인 음해 행위라고 일축했다.

이에 이화여대 재학생들은 가해 사실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교수들을 규탄하기 위해 23일 포스트잇 시위를 벌였다. 22일 이화여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 포스트잇 시위가 제안됐고, 23일 이화여대 재학생들이 이를 실제로 실행했다.

ⓒ이화여대 커뮤니티 사이트

23일 관현악과 성폭력 대책위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놀라울 만큼 많은 학우들이 (포스트잇 시위에) 동참해주었습니다. 관심을 두기 어려운 타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겨 솔선수범 나서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재학생들의 연대에 감사를 표했다.

현재 이화여대 재학생들은 교수실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 해결 촉구를 위해 음악대와 조형예술대를 방문하고 학교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등 공동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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