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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엄마가 되어버렸다

  • 입력 2018.03.02 10:51
  • 수정 2018.06.05 16:53
  • 기자명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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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무언가가 아이를 갖도록 몰아붙인 것 같아요. 우리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말이에요."

<엄마됨을 후회함> 오나 도나스

서른에 결혼했고, 서른넷에 아기를 낳았다. 삼 년 넘도록 아기를 일부러 갖지 않았다.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모으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었다. '"좋은 소식 없냐?"는 안부 인사를 가족, 친구, 동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과장 없이 수백 번 들었다. 신혼부부에게 물어볼 말이 별건가. "올해는 아니지만, 내년쯤엔 가지려고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었으므로, 아이를 못 가진다는 말이 아니었으므로, 듣는 사람들은 안심했다. 내년은 매년 갱신되었다. 내년이 되면 다시 "내년에 가지려고요"라고 대답했고, 또 내년이 되면 "내년에 가지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결혼한 지 삼 년, 친구들의 임신, 출산 소식을 줄줄이 듣던 남편이 조바심을 냈다. "작년에도 내년이라고 말했는데, 왜 올해가 되었는데도 내년이라고 말해야 해?" "다들 왜 아이 안 가지냐고 물어본단 말이야!"

나는 궁지로 몰렸다. 아이를 아예 갖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도 없었다.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출산한 친구들은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꾸물대다가는 출산 연령이 '노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 무엇보다 마음먹는다고 아이가 당장 생기지 않는다고, 임신이 안 되면 그동안 일부러 갖지 않은 걸 후회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낳긴 낳을 건데 지금은 아니야' '더 늦으면 후회할까' 갈팡질팡했고 휘둘렸다. 그러니까 아기를 낳아보고는 싶었다. 여자로 태어나 임신, 출산을 못 해보면 왠지 억울할 것도 같았다. 여성에게 주어진 '재생산'의 능력은 축복이라 여겼다. 딱 거기까지였다.

재생산 후 부과되는 엄청난 책임과 구속은 애써 외면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내 몸이 어떻게 바뀌는지, 신체적 고통이 얼마만큼인지, 어미로서 아기를 먹이고 키우는 일에 무엇이 있는지, 누군가의 엄마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내 인생을 얼마나 뒤덮을지 상상 못 했다. 알았다 해도 믿기 싫었다. 다들 하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누군가 겁준다 해도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엄마'로 살아가는 삶? 나에겐 해당 없을 거라 자신만만했다.

ⓒpixabay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엄마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이란 시끄럽고 제어가 되지 않는 귀찮은 존재. 다가오면 어색하게 웃어는 주겠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먼 별에서 온 외계인. 돌볼 줄도 몰랐고 놀아줄 줄도 몰랐다. 갓난아이의 달콤한 냄새, 반짝이는 솜털, 뭉실뭉실하고 보드라운 피부가 얼마나 특별한 지도, 미취학 아동과 바보 같은 말을 혀 짧은소리로 주고받거나, 과장된 몸짓으로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는 재미도 몰랐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엄마'가 된 내 모습은 상상한 적도 바란 적도, 부모로 사는 삶이 무언지도 관심 없던 나는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누나가 결혼하고 애까지 낳을 줄 몰랐어"

내 남동생이 종종 하는 말이다. 툭하면 여행이나 다니던 '자유로운 영혼'쯤으로 보였나 본데 아니었다. 출산은 남자들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여자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로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스물네 살부터 돈을 벌었고 결혼 적령기에 남자를 만나 결혼하며 인생 정규 코스에 착착 맞춰 살았으니 다음 단계로 가야 했다.

임신과 출산이 나를 한층 더 완성된 여성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주리라 믿었다. "그 회사 한번 다녀봤어, 힘들었지만 꽤 괜찮은 경험이었지"라는 말처럼, "애 한번 낳아봤어, 말로 할 수 없이 가치 있는 일이야"라고 말하며 어른 행세를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남자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결혼 후 찾아왔듯, 부모가 되어 가족을 '완성'하고 싶었다.

"엄마로의 이행이 육체와 자아,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경험하려는 소망에 의한 것임을 전제로 한다. 엄마가 되는 일이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어주고, 존재의 목적과 활력의 근거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

<엄마됨을 후회함> 오나 도나스

ⓒpixabay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삼 개월을 하루 꼬박 18시간씩, 눈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잠들기 직전까지 파자마 차림으로 집에서 일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때쯤 몸은 황폐해졌고, 엄마는 이 와중에 임신하려면 몸 만들어야 한다며 용하다는 한의원에 데려가 보약 한 첩을 지어주셨다. "이 한의원 한약 먹고 임신한 엄마가 셋이래. 한 재 먹기도 전에 임신해서 다른 사람에게 줬는데 그 사람도 먹자마자 임신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남은 걸 줬는데 그 사람도 임신했다지 뭐야!" 그 한의원 약은 정말 용했다. 나도 한 재를 다 먹기도 전에 임신이 되어버렸다.

너덜너덜했던 몸에서 유일하게 멀쩡했던 자궁은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근육과 신경을 총동원해 내 행동을 제약했다. 메슥거리고 기운 없고 괴롭던 임신 초기가 지나자 제법 '임신 상태'를 즐겼다. 임산부 대접받으며, 내 몫을 하고 있다는 충족감이 들었다. 기혼여성들이 나를 자기와 동급으로 인정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의 세계에 속할 수 있다는, '주류'에 들어왔단 생각에 안심했다.

그 주류의 세계는... 그리고..... 내가 아이를 낳자, 엄마가 된 대가로 모든 변화와 충격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라고 했다.

"네가 선택했잖아. 네가 원해서 낳았잖아. 너는 엄마잖아."

"'자유로운 선택'이 비록 자유, 자율, 민주주의, 자기 결정에 가깝다 해도 역시 기만적인 이유는 불평등, 강요 이데올로기, 사회적 규제, 권력관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인생사를 개인적인 결정으로 해석해야 하고, 모든 실패와 비극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가 듣고 사는 모든 말 뒤에 엄격한 규범, 도덕적 지식, 차별, 사회적 권력이 숨어서 우리 자신과 결정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준다."

<엄마됨을 후회함> 오나 도나스

ⓒpixabay

벼락처럼 내리꽂는 의무와 책임 앞에서 "내가 정말 아이를 바랐나? 엄마가 되고 싶었나?"라는 낯선 물음은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와 버렸지만 나는 가끔 기어이 뒤돌아본다. 감히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을 시도한다. 내가 결정했지만, 나의 온전한 바람이었나. 계획적으로 가진 경우라 해도 자신의 열망이었는지, 아니면 결혼했으니 아이를 낳는 거라는 관습과 규범에 자연스럽게 따른 건지, 차이를 분간할 수 있나.

엄마가 되어야 했던 이유, 그리고 되어버린 이유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엄마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어도, 엄마가 된 자신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해도 어떤 엄마들은 엄마가 되고야 만다. 강제적인 임신이 아니라 분명한 '선택'에 따른 거라 해도 그 선택의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여기엔 자궁을 가진 여성이니까 하는 당연한 과정이자 의무도 아니고, 순전히 자유로운 개인적 선택의 결과라고도 말할 수 없는 숱한 망설임, 인정, 처벌, 규제, 강요, 환상이 있다. 우물대고 꾸물거렸던 고민만큼이나 불확실하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선명한 이유들 말이다.

"애 낳는 게 힘든지 모르고 낳았어?" "힘들어할 거면 왜 애를 낳았어? "라는 질문에 그래서 또렷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더불어서 어쩌면 당신, 그리고 나조차도 대단하게 심사숙고한 결정 끝에 태어난 게 아닐지 모른다는 점도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이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지, 엄마가 되면 어떤 결과가 올지 모른 채 엄마가 되어버렸다. 내 안의 강렬한 열망이기보다 아이를 키우며 갖는 기쁨 자체에 대한 기대보다, 엄마 됨으로써 얻어지는 인정이나 안정, 그 반대로 엄마가 되지 않은 채 살아가면서 겪어갈 참견이 두려워 엄마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강제로 임신한 게 아니라고 해서, 숙고 끝에 낳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 결정이 100퍼센트 자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엄마 역할을 훌륭히 하지 못해 하는 변명도 아니고 엄마로서 가질 책임감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회피도 아니지만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가 되고 싶어서 엄마가 된 건 아니었다고."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되어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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