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겐 발언권이 없다아이를 낳고 나는 집에 있는 주부가 됐다. 이제껏 성실히 살아왔고 맡겨진 임무에도 열심이었던 나였지만 '주부가 되었으니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라'는 소임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가슴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곤 했다. 집안일, 싫은 건 아니다. 살림꾼처럼 집안을 쓸고 닦고 물건을 착착 제자리에 정리하며 보람차기도 했다. 주부가 되고 청소는 나의 가장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다. 이 역할에 안착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울렁울렁 저항이 일었다. 임금 노동을 하지 않을 경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 나의 빈자리남편이 두 달간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깨끗하고 산뜻하던 우리 집은 망가져 갔다. 음식물 쓰레기가 며칠째 쌓여 악취가 풍겼고, 냉장고 식재료는 문드러졌다. 싱크대와 식탁엔 끈적거리는 때가 찌들었다. 식탁 위의 깎아둔 과일에선 곰팡이가 피었고, 빨래도 퀴퀴하게 쉬었다. 매일 아침 양말 찾느라 온 집안을 뒤졌고, 샤워하고 나면 입을 팬티가 없었다. 아이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바람 부는 날에도 반팔 옷을 입은 채, 알림장에 아무 기록도 못 한 채 어린이집에 갔다. 나의 빈자리는 금세 탄로 났다.우리집도 진짜 시작됐다. ⓒ
1. 벼랑 끝에서 싸우고 난 후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은 가족과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달이 채 못 갔다. 프로젝트 막바지로 가며 새벽 퇴근, 주말 출근, 출장이 이어졌고 둘 다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버틸 수 있던 유일한 이유는 남편이 '휴직'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찾은 답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다시 방향 설정할 기회를 가지겠다고 했다. 난 조건을 하나 달았다. '육아휴직'이면 좋겠다. 일반 무급 휴직에 비해 수당이 나와서만은 아니었고 육아휴직의 가치 때문이었다. 일벌
1. 기다리는 사람, 마음 놓고 늦는 사람ⓒ다큐멘터리 차라리 처음부터 못 온다고 하지. 저녁 6시가 넘어 다시 물어봐서야 늦는다는 말이 돌아온다. 0.1%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 내가 바보다. 여지를 남겨두고 시간 끌다 사람 실망시키는 패턴에 휘둘린다. 왜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됐나. 남편이 괘씸하고 내가 한심하다.다들 이렇게 산다니 원래 이런 거려니 하고 살자. 수백 번 마음 먹었다. 그런데 억울했다. 누구 좋으라고. 참고 살면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나는 끝까지 묻고 가능한 한 싸우기로 했다. 그 없이 못 살아서
ⓒpixabay1. 나의 딸은 십팔 십팔 하는 십 팔 개월을 시작으로 미운 두 살, 세 살을 두루 거쳐 네 살이 됐다. 그동안 나도 단련되었는지 어지간한 떼 부림엔 눈 하나 깜짝 안 하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럭 하는 횟수가 줄고, 달래는 솜씨가 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일주일 하는 어린이집 방학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첫날밤, 애를 세 번이나 울렸다. 저녁 7시가 넘자 팔다리가 후들거렸고 얼굴엔 피곤이 검버섯처럼 덕지덕지 피었다. 아이를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잠들지 않은 아이를 보니 조바심이 났다. "너 왜
"제 생각에는 무언가가 아이를 갖도록 몰아붙인 것 같아요. 우리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말이에요." 오나 도나스서른에 결혼했고, 서른넷에 아기를 낳았다. 삼 년 넘도록 아기를 일부러 갖지 않았다.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모으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었다. '"좋은 소식 없냐?"는 안부 인사를 가족, 친구, 동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과장 없이 수백 번 들었다. 신혼부부에게 물어볼 말이 별건가. "올해는 아니지만, 내년쯤엔 가지려고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었으므로, 아이를 못 가진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