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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민 기만한 대선소주 마케팅의 비밀

  • 입력 2017.10.27 11:09
  • 수정 2017.10.27 11:58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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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의 승리자는 부산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못지않게 승리를 거둔 부산 향토기업이 있다.

부산의 가장 오래된 향토기업 대선주조는 올 초만 해도 망하기 직전이었다. 올해 1월 부산 지역 소주시장은 무학소주의 ‘좋은데이’가 75%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패권을 쥐고 있었다. 한때 ‘시원’ 브랜드로 부산 소주시장의 95%를 장악했던 대선주조는 지난해 무학에 밀려 점유율이 16.5%까지 곤두박질하면서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대선의 위기가 얼마나 절박했냐면 임직원들이 길바닥에 엎드려 ‘부산 소주 살려주이소’를 외치며 삼보일배를 할 정도였으니...


부산 서면 부속골목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대선주조 임직원. 사진: 대선주조

그런데, 올 초 대선주조가 ‘대선’ 소주를 출시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역전됐다. 점유율 10%대에 머물던 대선은 대선을 전후로 급격히 치고 올라가더니 8월에는 49.2%로 7년만에 무학을 앞섰다. 지난 달에는 55%의 시장점유율로 50%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업체들 간의 치열한 점유율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 소주시장에서도 이렇게 극적인 점유율 반전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대선은 어떻게 무학의 ‘좋은데이’를 제치고 다시 패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었을까?

비밀은 대선주조가 지난 대선 시즌 보여준 ‘대선 마케팅’에 있었다.

대선소주 포스터

'대선으로 바꿉시다'
절묘한 카피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해 정권교체를 외쳤던 부산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열망을 중의적으로 담아낸 ‘대선으로 바꿉시다’ 카피에 열광했다. 탄핵/대선 정국 내내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촛불도시 중 하나였고, 부산 시민들은 일찍 찾아온 정권교체의 열망을 대선 소주에 투영했다.

어딜 가나 “대선 주이소”를 들을 수 있었다. 무학의 ‘좋은데이’는 애꿎게도 부산지역 ‘소주 정권교체’의 희생양이 되었다.

한때 ‘아재들의 소주’로 각인됐던 대선을 젊은 브랜드로 리뉴얼해낸 ‘대선으로 바꾸자’라는 카피는 주류 마케팅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촛불시민의 적폐청산 열망을 담아냈던 저 카피와는 달리 이 회사의 경영진이 적폐와 깊숙이 연결되어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1

중심지미관지구로 지정되어 주거시설 건축이 불가했던 해운대 바닷가에 2009년 1월 난데없이 110짜리 주거용 건물의 건축승인이 났다. 문제의 엘시티 사건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기만 했던 엘시티의 건축허가는 역시나 특혜와 비리로 얼룩져있었고, 수사결과 24명이 기소/12명이 구속되는 사상 최대의 비리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엘시티 건축현장. 연합뉴스


여기에는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현직 국회의원, 전 부산시장 등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는 정관계 로비로 부산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엘시티 이영복 회장이 있었다.

엘시티 수사로 부산 지역사회가 들썩이던 지난해 7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대선주조의 오너 조성제 명예회장은 이영복 회장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쓴다. 내외부 반발에 부딪혀 검찰에 제출되지는 못했지만 조 회장이 부산지역 정재계 적폐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엘시티 사건의 중심인물을 구명하려 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조 회장이 부산상공회의소 회원사도 아니었던 엘티시 이영복 회장에게 무리하게 탄원서를 쓴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선주조 조성제 명예회장

조 회장이 탄원서를 쓴지 5개월 뒤 BN그룹의 자회사 BN케미칼의 이우봉 대표가 엘시티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구속된다. 대선주조 조성제 명예회장은 대선주조를 인수한 BN그룹의 명예회장이다.

이우봉 대표는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허남식 전 시장의 선거비로 썼다고 진술했다. 그는 허남식 전 시장의 마산고 동기로 선거 때 중책을 맡아온 허 전 시장의 최측근이다.

허남식 전 시장과 이우봉 대표, 조성제 회장 세 사람은 마산고 동문이다. 그 중 두 사람은 엘시티 비리 사건으로 구속 또는 기소되었고 한 사람은 엘시티 비리 사건의 핵심 인물을 구명하는 탄원서를 썼다.

#2

지난 8월 BNK금융그룹(부산은행의 지주회사)은 회장 선임을 두고 부산지역 시민사회와 갈등을 빚는다. 부산은행이 내부 인사의 회장 선임을 추진하자 부산 시민단체들은 부산은행의 내부 적폐 청산을 위해 외부 인사 선임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1조 7천억대 엘시티 특혜 대출 혐의로 부산은행을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정재계와 연결된 부산은행 적폐의 고리를 끊어내고 엘시티 사건의 정상적인 수사를 위해 반드시 외부 인사 선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부산상공회의소장을 맡고 있는 대선주조 조성제 회장은 이에 맞서 부산은행 내부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조 회장은 "BNK금융그룹이 지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매우 큰 만큼 당연히 부산 경제와 기업을 잘 아는 사람이 회장으로 BNK금융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며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스스로 결자해지 하라”고 주문했다. 수사의 당사자에게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당시 부산은행 회장의 내부인사 선임을 주장했던 곳은 부산은행으로부터 수천억원을 대출받아 사옥을 짓고 있는 부산일보와 대선주조 조성제 회장, 그리고 새누리당이다.

#3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인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조성제 회장이다. 김기춘 씨는 2013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대선주조 산하의 시원공익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시원공익재단은 대선주조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된 재단으로 장학사업과 무료급식사업 등의 공익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재단이다.

김기춘은 잘 알려진 대로 유신헌법의 초안자이자 강기훈 유서대필조작 사건, 초원복집 사건 등의 주역으로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를 써 내려간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로 지난 7월 블랙리스트 재판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대선으로 바꾸자’며 촛불민심을 등에 업었던 대선주조의 공익재단을 적폐세력의 중심 김기춘이 맡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괴하다.

올해로 창립 86년을 맞는 대선주조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향토기업이다. 한때 ‘시원’이라는 브랜드로 부산 소주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대선은 2007년 사주인 대기업이 사모펀드에 회사를 비싸게 매각하는 이른바 ‘신준호 먹튀 논란’이 벌어진 이후 부산 시민들에게 외면 받아왔다.

그러다 지난 대선을 통해 기적같이 부산지역 ‘소주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선주조. 그들의 구호처럼 시민들은 대선으로 새 시대를 열었고, 대선의 '대선' 마케팅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둘의 성격은 판이하다.

뒤로는 적폐세력과 손잡고 앞에서는 ‘대선으로 바꾸자’를 외쳤던 대선주조. 부산 시민들은 ‘대선’으로 무엇을 바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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