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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줄이겠다' 갑질한 주민에 한 청년이 보낸 편지

  • 입력 2017.10.18 16:56
  • 수정 2018.05.11 17:05
  • 기자명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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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임금 인상의 역풍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업무 중 겪은 충격적인 사연은 각종 커뮤니티, SNS 등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충북 충주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70대 노인이 건장한 체격의 40대 남성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건도 그중 하나다.

▶관련기사: '[직썰만화] 아파트의 노비'

위기를 겪고 있는 경비원들의 씁쓸한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지난 17일 충남 서산의 한 아파트에서 훈내나는 소식 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에서 추석 이후 경비원 4명 감원에 관련된 찬반투표를 진행하겠다는 임차인대표자회의 결과가 전해졌다. 이 공고문을 본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 인원 감축 반대 운동에 나섰다. 몇몇 주민들은 경비원 감축을 반대한다는 자필 게시물을 붙이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이하)

아파트 주민 구씨는 경비원의 인원 감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760세대 우편함에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아파트에 살면서 경비원분들께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경찰관, 소방관, 미화원, 택배원, 정원사는 경비원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760세대 최소 1500명에서 3000명이 넘게 사는 우리 아파트에서 이런 수많은 일을 단 8명의 경비원분이 해내고 있습니다. 1명이 180여 명에서 400여 명가량을 책임지고 매일매일 이 엄청난 일을 해내면서 경비원분들의 손에 쥐여주는 건 고작 최저임금 140만 원 정도입니다"

"내년도 최저 임금이 7530원으로 올랐습니다. 때문에 내년에 세대별로 더 부담해야 할 경비 비용은 5천 원 선이라고 합니다. 5천 원을 아끼려고 경비원 수를 줄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주민 모두가 빠듯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단돈 천 원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5천 원을 아끼기 위해 경비원 4명과 그에 딸린 가족들의 목숨을 끊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투표를 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투표 자체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표가 아주 아주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구씨의 구구절절한 호소문의 마지막에는 “경비원 해고를 반대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으면 한다. 지나시다가 경비원분들을 보면 따뜻한 인사와 응원을 보내드리자”는 제안이 적혀 있었다. 구 씨는 “딱히 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었다”면서 “경비원분들을 조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입주민들을 모아서 집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호소문을 쓰기로 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구씨는 “경비원분들의 고통을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부결을 확신하지만 압도적으로 부결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그분들을 경비원이라 부르지만 단지에 같이 살고 있는 이웃사촌이고 가족입니다. 나는 반대합니다”, “경비원 감축이라니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5천 원 (담배 1갑) 아끼자고” 등의 내용이 담긴 손글씨를 적어 붙이기도 했다.

한편, 경비원 감축 주민 투표는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투표 결과에 따라 4명의 경비원이 해고되는 것이다. 구씨의 말처럼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경비원들을 도마 위에 올리는 상황은 옳지 않다. 최소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위기의 경비원들. 이들의 노동 환경이 변화되려면 해당 아파트 주민들의 인식과 행동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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