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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최고로 높여야 한다"

  • 입력 2017.06.26 10:00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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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브리핑 말투의 변화는 결국 '국민'을 높이기 위한 압존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언어 예절을 중시하는 우리말에서는 존비법(尊卑法), 높임과 낮춤의 어법이 발달했다. 거기다 압존법(壓尊法)도 있다.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는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이다. 예컨대 할아버지(청자)에게 아버지(문장 주체)를 이를 때 아버지를 높일 수 없는 것이다.

(1)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직 안 왔어요.(○)

(2)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아직 안 오셨어요.(×)

가정에서는 압존법을 지키는 것이 전통 예절이지만 현재는 가정에서의 압존법도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다. (1)처럼 말해야 하는데 (2)처럼 말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상 언어에 ‘높임 과잉’이 일반화된 현실 탓일까. 아무 데나 ‘시’를 붙이는 게 ‘친절’이고 고객을 높이는 거라고 믿는 서비스 덕분에 ‘전화’도 ‘오시고’, ‘커피’도 ‘나오시는’ 세상이다. 그러니 할아버지 앞이라고 해서 아버지한테 ‘시’자 하나 붙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관련 글: '높임과잉'?, ‘기사님식당’과 ‘전화 오셨습니다’]

사라져가던 압존법, 청와대에서 되살아나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청와대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지칭하는 어법이 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쉽게 말하면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의 동정을 브리핑하면서 ‘께서’와 ‘시’를 뺐다는 얘기다. 예전 같으면 (3)처럼 쓸 것을 (4)처럼 쓴다는 것이다.

(3) 대통령께서 의사자 국립묘지 문제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4) 대통령은 의사자 국립묘지 문제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금까지 청와대 브리핑 말투는 대통령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때도 비슷한 어법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한결같이 ‘께서’와 ‘시’가 쓰였다. “대통령을 높이는 건 그렇다 쳐도 그걸 듣는 대통령보다 훨씬 연세 높으신 어른들은 뭐고?” 들을 때마다 낯간지럽고 민망했는데 바뀌었다니 그것도 ‘언어 표현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는지.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을 위한 따뜻한 오찬’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경례하자 허리 숙여 답례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눈길이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나이는 상놈 벼슬’이라는 속담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연장자에 대한 예절이 강조되는 사회인 것이다.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을 위한 오찬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경례하자 대통령이 허리 굽혀 답례하고 있다.

와대에서는 이 변화가 ‘국민 앞에 대통령을 표현할 때는 대통령을 낮추는 게 맞는 어법’이라고 했단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것은 대통령직이 말로만 위임된 권력이지, 기실은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는 걸 예의 말투를 통해 은근히 과시해 온 관행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과 ‘대통령’의 지위는 권력을 위임하고 위임받은 관계다. 형식 논리로 보면 모든 권력의 원천이라는 국민의 지위는 추상적이긴 하지만 대통령 위에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동정을 국민에게 보고하면서 대통령을 높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는 또 한편으로 우리 언어예절과 압존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 언어 예절은 윗사람 앞에서는 자신과 자신이 포함된 집단까지 낮추어서 상대방을 높인다. ‘나’는 ‘저’, ‘우리’는 ‘저희’로 쓰는 게 기본이고, 자신의 부모에게조차 살아 있을 때는 절대 ‘아버님, 어머님’이라 높이지 않을 만큼 엄격하다.

그런 뜻에서라면 헌법 제69조 규정에 있는 대통령 취임 선서문의 ‘나’는 ‘저’로 바꾸는 게 마땅해 보인다. ‘저’는 모든 민주주의 어법의 출발점이다. 5공 시절의 전두환은 ‘나’도 아닌 ‘본인’을 즐겨 썼지만 오늘날 대통령은 모든 연설에서 자신을 ‘저’로 낮추는 것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청와대 대변인이나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의 동정을 전하면서 ‘대통령께서 무엇을 어찌하셨다’고 하는 대신 ‘대통령은 무엇을 어찌했다’고 쓰는 것은 윗사람(국민) 앞에서 아랫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지킨 것이다. 대변인과 비서관에게 대통령은 윗사람이지만 그보다 더 윗사람인 국민 앞에서 대통령을 높이지 않은 것이니 압존법을 제대로 지킨 셈이다.

"국민을 최고로 높여야 한다"

정치인들이 말할 때도 ‘대통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신다’는 둥 높임말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의 높임말도 귀에 거슬릴 때가 더러 있지만 그걸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은 그것이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 대한 예우이기 때문이다.

압존법은 방송에서도 알게 모르게 쓰인다. 방송 좌담 프로그램에 나온 여성 출연자가 자기 남편을 높여서 말해 비난받는 경우가 그것이다. 시부모 앞에서 남편을 높이지 않는 것처럼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도 압존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치인 이준석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을 버릇없게 ‘조 수석’이라 부르느냐고 비난하는 이에게 “방송에서는 시청자를 최고로 높이기 때문에 압존법을 사용해 호칭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 것은 맞는 말이다. 이때의 시청자란 바로 ‘불특정 다수’, 즉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개념일 터이니 말이다.

▲왕조시대의 언어는 아직도 남아 있다.

요즘도 국회의원들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무개 의원’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언어 예절에 어긋나 보인다. 의원 개인이 헌법기관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권한일 뿐이므로 국민 앞에 군림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 불붙은 대선, '말과 말' 사이]

어쨌든 우리 사회의 진전은 말(표현)의 민주화도 일정하게 이뤄냈다. ‘대통령 각하’에서 ‘대통령님’으로 오는데 걸린 시간이 딱 50년(1948~1997)이었다. 여전히 ‘하사(下賜)’나 ‘치하(致賀)’ 같은 왕조 시대의 언어들이 쓰이긴 하지만 그것들을 강제해 낸 힘은 시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이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근혜 탄핵에 이어 지난 대선을 앞당긴 촛불 혁명의 힘은 지금 청와대와 대통령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쇼’라고 폄하(지금도 이를 ‘쇼’라고 비난하는 야당도 있다.)될 수도 있는 이러한 변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것이 식자들이 늘 말하는 ‘시대정신’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데 그치지 않고 제도화 관습화되기를 기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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