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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의 수다가 꼰대들의 수다와 다른 이유

  • 입력 2017.06.20 10:57
  • 수정 2017.06.20 13:50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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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tvN <알쓸신잡>의 본래 제목이다. 언뜻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로부터 일말의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묘한 지식의 향연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니 둘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한편, <알쓸신잡>의 또 다른 이름은 '아재들의 수다'다. '아재'라는 정체성을 지닌 구성원들이 '수다'라는 방식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잡학(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각자의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굳이 부연을 하지 않아도, 이름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에 대한 호불호가 나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지닌 가치와 쌓아올린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것도 예능이라는 툇마루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 툇마루를 제공한 사람이 나영석 PD라는 점은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소였다.

ⓒtvN <알쓸신잡>

나이가 그득한 아재들에게 이런 표현이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그들은 쉴 새 없이 떠든다.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들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지식의 향연이라 할 만 한데, 신비하게도 그들의 수다에 귀가 집중되고, 뇌가 쏠린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이 기획이 마뜩지 않았다. 아재 5명이 수다 떠는 걸 TV를 통해 지켜봐야 하나? 출연자들에게 각각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의 수다를 들어야 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반)강제적으로 아재들의 대화 속에 소환된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아재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현현(顯現)한다. 때로는 집안의 어른으로, 또는 회사의 상사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옛날에는 말이야', '내가 해봤는데 말이지', '에이! 아니야, 그러면 안 되는 거야'라는 이른바 부장님 토크를 굳이 TV를 보면서도 들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알쓸신잡>의 수다에 빠져들까? 5.395%(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첫회 시청률은 2회 5.687%, 3회 6.414%로 완만하지만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쯤 되면 '빠져든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싶다. 이유는 역시 그들의 수다 속에 있다. 2회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유시민 : 난 솔직히 『무진기행』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왔냐 하면, 뭐야 이게? 정말 빛나는 문장인데 이 작가는 도대체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뭐가 뜨RRRRRR 마음 속에서 굴러가는 소리가 나야지 그 소설이 좋아 보이는 거야.

황교익 : 저하고 감수성의 차이야. 저는 뜨RRRRRR 굴렀거든. 제가 읽은 게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그래요

유시민 : 철이 없어서 굴렀던 거 아닌가?

이쯤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등장해 정리한다.

김영하: 그것도 중요해요. 왜냐하면 어느 시기에 어떤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읽느냐, 어떻게 보면 소설이, 합의를 이뤄서 어느 작품에 동의하는 건 불가능하고, 어떻게 보자면 각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소설이 가치가 있는 거예요. 생각의 다양성들을, 감정의 다양성들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은 합일된 생각을 이끌어내려 안달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정답을 정해놓지도 그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대화의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와 같은 애티튜드(Attitude)는 다른 장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통영, 보성, 강릉을 차례로 찾은 그들은 도착과 동시에 자신만의 여행을 계획한다. 가령, 유시민과 황교익, 유희열은 허균과 허난설헌 생가, 오죽헌, 정동진을 방문하고, 김영하와 정재승은 강릉통일공원, 에디슨 박물관, 피노키오 박물관을 찾는 식이다. 자기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일정을 계획하고,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그 일정을 만끽한 후 다시 저녁 무렵에 다시 모여 담소를 나눈다. 저녁 식사를 하거나 혹은 맥주를 마시면서 본격적인 수다의 세계에 진입한다. 마치 프랑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인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알쓸신잡>만의 차별성이 아닐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 시대의 지식인들의 통찰력이 담긴 수다를 엿본다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유시민의 입을 통해 '항소이유서'의 전말에 대해 듣고, 황교익의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를 감상하고, 김영하의 폭넓은 상식과 소설가 특유의 감성적 어휘들에 감탄하고, 정재승으로부터 '이런 연구도 있었어?'라고 탄복하는 것도 <알쓸신잡>의 매력이지만, 거기에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강조되지 않았다면 결국 우리가 봐왔던 아재들의 (끔찍한)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아재 감성이 프로그램 전반에 깔려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아재로 군림하려 들지 않는다.

그건 나영석 PD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보여주고자 했던 '어른'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꽃보다 할배>나 <윤식당>이 그 좋은 예다. 꼰대가 아닌 어른의 모습을 한 아재들로부터 우리는 편안함을 얻는다. 그제서야 그들의 수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수다는 수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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