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정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날이 올까?

  • 입력 2017.04.28 11:39
  • 수정 2017.04.28 11:40
  • 기자명 정운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0년의 한국 정당사에서 진보성향의 정당은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독재권력에 탄압받고, 보수 기득권 정당에 치이고, 이념대립 속에서 빨갱이로 내몰리고 더러는 내부갈등으로 처절하게 찢기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현실은 적잖이 잔존해있다.

처음 깃발을 든 건 죽산 조봉암이었다. 그는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했다. 일제하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이승만 정권 하에서 농림장관을 지낸 죽산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그러나 결국 이승만의 정적으로 몰려 1958년 소위 진보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됐다. 진보의 꿈은 무참하게 꺾였다.

진보당 사건 관계자들이 재판을 받는 장면. 오른쪽 두 번째(흰옷)가 죽산 선생이다.

진보당의 맥을 이은 ‘혁신계’는 1960년 4·19혁명으로 기지개를 켰다. 그러나 장면 민주당 정권 역시 소위 ‘2대 악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수구적 행태를 되풀이했으며, 뒤이어 들어선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이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1965년엔 1차 인혁당 사건, 1974년엔 2차 인혁당 사건(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해 혁신계 인사들과 대학가 운동권을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이후 진보정당은 암흑기에 들어섰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2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재판정에 서 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진보정당이 부활했다. 창당 후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위원장이 후보로 출마했으며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후 당 안팎의 계파 갈등, 이념논쟁 등으로 분화를 거듭했으며 현재 정의당으로 이어져 왔다.

진보는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대에는 별난 존재 정도로 인식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60~70년대 시절 자주적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가 숱한 사람들이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간 것이 한 예다.

2007년 9월 15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 중인 권영길 후보

무모한 도전과 부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진보는 시대의 견인차이자 방향타이다. 보수가 주류가 된 사회일수록 진보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 보수-진보, 구색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진보가 시대의 주류가 된 사회, 더 구체적으로 말해 진보가 집권하는 시대는 가능할 것인가?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가능하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서구에서 유사사례가 없지도 않다. 그러나 한국처럼 극단적 이념대립과 경직된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건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지지율은 5~8% 안팎이다. 극심한 빈부 격차, 비정규직 문제 등 열악한 노동 현실에 비춰보면 심 후보의 지지율은 아쉽기 그지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진보정당의 가치는 공감하면서도 쉽게 표를 주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불안감이 있고 근본적으로는 보수의 벽이 두꺼운 탓이다.

일각에서 심상정-문재인 후보 단일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속뜻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총선에서 교차투표라면 모를까 이번 대선에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보수와 중도에서 표를 끌어올 공세적 전략을 세워야지 단일화라는 수세적 자세는 최선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심 후보가 10% 이상 득표한다면 세상이 한결 달라질 것이다. 심 후보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