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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2016년 12가지 이슈

  • 입력 2017.01.04 12:26
  • 수정 2017.01.04 12:27
  • 기자명 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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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2016년이었다. 매년 다사다난하다고 말하지만 올해만큼 스펙터클했던 해는 또 없다. 특히 10월 중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태풍의 눈처럼 모든 뉴스를 집어 삼켰다. 그 와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2016년의 이슈는 참 많았다. 게다가 하나같이 현재진행형이다.

1월, 소녀상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최종 협상했다. 굴욕적 합의였다. 진정성 없는 협상 전 과정은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10억 엔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개별 지급하나 이는 일본 국가의 배상이 아님을 못 박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로부터 최상의 것을 받아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일 합의 이후에 “위안부의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유엔 기구에 제출했다.

국가를 대신해 나선 것은 시민들이다. 시민의 힘으로 국내, 국외 가리지 않고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좌상 외에도, 앞으로 걸어가는 듯 발꿈치를 들고 서 있는 소녀상도 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전진하자’는 의미다. 2016년 박숙이, 유희남, 공점엽, 김경순 등 7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별세했다.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9명이다. 2017년 1월 4일, 1264차 수요집회가 열린다. 노란 나비의 물결은 계속 된다.

2월, 운동화

국회의원들이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국회에 섰다. 테러방지법안 반대를 위해 무기한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의원 한 명당 평균 5시간, 최장 기록은 12시간 31분을 연설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다. 192시간 27분의 필리버스터는 정치 교과서에만 등장하던 헌법 1조의 의미를 부활시켰다. 제아무리 달변가라고 한들 5시간을 연설하는 게 어디 쉬운가. 의원들은 나름의 ‘꼼수’도 부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나 조지 오웰의 ‘1984’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 역사적 광경을 직접 보기 위해 3천여 명의 시민이 국회를 찾았다. 스트리밍으로 지켜본 누적 시청자 수만 510만명이다.

3월, 딸

나경원 의원의 딸 김 모씨가 지난 2012학년도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에 부정 입학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나 의원이 성신여대에서 특강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 전형이 신설됐고, 김 씨의 입학을 도운 의혹을 받는 이병우 교수가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음악 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스페셜 올림픽 위원장은 나경원이며, 김 모씨 이후 해당 학과에는 장애인 입학생이 한 명도 없다.

이것은 모두 ‘팩트’이다. 이에 대해 나 의원은 “다른 학교 입시전형에도 1차 합격한 상황에서 성신여대에 최종 합격해 그 학교를 택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운 좋게도 성신여대에 최종 합격했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기막힌 우연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4월, 엄마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겁다. 5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2016년 6월 기준으로 피해자 2399명, 사망자 464명이다. 여기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추정 인원만 800만 명이다. 엄마들의 시계는 아이가 떠난 2008년에 멈췄다. 그리고 ‘내 손으로 아이를 죽였다’고 절규한다.

반면 ‘엄마’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부끄러운 이들도 있다.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시국 현장이면 어디든 나타나는 ‘엄마 부대’다. 곡기를 끊은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치킨을 뜯거나 “우리가 배 타고 놀러 가라고 그랬냐”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엄마 부대’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필요가 없는 치졸한 행위를 일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이가 진짜고, 가짜인지를 안다.

5월, 포스트잇

우리는 생존 전(戰)에서 우연히 살아남고, 또 우연히 죽는다. 건물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일상의 누적된 공포는 수만 장의 포스트잇으로 나타났다. 강남역 10번 출구와 2호선 구의역 승강장 주변 창과 벽에는 추모 포스트잇이 가득 붙었다.

남성인 자신보다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성이 살해당했고, 보호장구 없이 홀로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 보수에 나선 스무 살 청년이 죽었다. 사고의 원인은 단 한 명의 가해자와 부주의, 안전 불감증으로 치부됐다. 사고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시대의 수많은 목격자는 침묵하지 않고 포스트잇으로 표현했다. 분노는 들풀처럼 번져 나갔다.

6월, “뭣이 중헌디?”

달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언제나 손가락을 본다. ‘뭣이 중헌’ 지는 모르고 사건의 파편만 좇으며 많은 것을 확대하여 해석한다. 6월 극장가를 휩쓴 영화 '곡성'의 명대사는 여성 성폭력 사건의 이면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연예인 박유천 성폭행 고소 사건에서는 ‘성폭행’ 그 사실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업소녀’라는 딱지를 붙이며 피해자의 직업에 대한 편견을 내비치며 ‘차라리 돈 주고 하지 그랬냐’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성 성폭행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는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사실을 거듭 주장하며 범죄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소송의 전 과정은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신상을 드러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야만 한다. 몇 번의 진실 공방 끝에 남는 건 허무하게도 ‘운 나쁜 가해자’와 ‘성폭력이나 당하는 피해자’다. 가해자, 피해자만 달라질 뿐 사건은 무한 반복된다. 뭣이 중헌지도 모른 채.

7월, 밥

밥을 나눠 먹는 것이 한국인의 정이라더니, 그놈의 정, 참 끊기 어렵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합헌 결정이 났다. 공무원 사회는 벌벌 떠는 것처럼 보였지만, 법 시행일(9월 28일) 이후 고르는 메뉴는 영란 정식, 2만 9900원이다. 100원 빼느라 무지 애쓰셨다.

3만 원에 울상 짓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2017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7.3%, 440원 많은 6470원으로 결정됐다. 총선 때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공약 때문에 두 자리 수 인상안도 기대해봤지만 역시나 였다. 2016년 직장인 평균 점심값이 6370원이니 최저임금으로는 7천 원짜리 백반 한 끼도 힘들다. 유독 김혜자, 백종원 등 유명인의 이름을 건 편의점 도시락이 인기를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인스턴트식 가난의 유행이다. 한 끼 먹기, 참 고달프다.

8월, 빨갱이

정부는 경북 성주에 주한미군의 사드(THAAD)를 배치하겠다고 기습적이고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사드를 배치하는 지역은 평생 참외 농사지어다 자식 키운 노인들이 사는 집 앞마당이다. 지역민들의 여론 수렴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배신한 적 없는 열혈 ‘1번’ 지지자들에게 떨어진 날벼락이다. 성주 군민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선 건 당연지사. 박근혜 대통령의 핏줄인 고령 박씨 집성촌에서는 마을회관에 걸어 둔 박근혜 대통령의 대형 사진까지 뜯어냈다. 주의 사드 배치 반대 집회가 연일 열리자 아니나 다를까. 보수의 땅, 경상도에도 어김없이 ‘빨갱이 주의보’가 내려졌다. 그런다고 당할쏘냐. 성주 군민의 대응은 꽤 통쾌했다. “우리가 빨갱이면, 박근혜 대통령도 빨갱입니꺼?”

9월, 외인사

317일의 사투 끝에 백남기 농민이 생을 마감했다. 2015년 11월, ‘밥쌀 수입 반대’, ‘쌀값 보장’을 외치며 행진하는 농민에게 경찰은 살인적인 수압의 물대포로 대응했다. ‘농사짓고 먹고 살게 해달라’는 늙은 농부의 작은 바람은 국가 폭력으로 무참히 부서졌다. 국가는 백남기 농민이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1년을 흘려 보냈다.

그러고는 그의 죽음이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말한다. 죽음으로 내몬 과잉 진압의 책임자들을 고발하자, 부검 영장까지 들이밀었다. 과거 노동 운동가 박창수 씨가 안기부의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의혹이 일자, 백골단을 앞세워 시신을 탈취해 부검했다. 경찰의 최종 결론은 ‘자살’이었다. 그러나 2016년은 달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법, 정의 그리고 백남기 농민들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이 있었다. 경찰의 강제부검을 막기 위해 300여 명의 시민들은 한 달여간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10월, 마이크로소프트

2016년 국정감사의 스타는 애꿎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이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에게 맥락은 몽땅 잘라먹고 "MS 제품을 왜 MS사에서만 사냐"는 황당한 발언을 던져 논란에 휩쓸렸다.

이 의원은 시교육청이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왜 경쟁입찰하지 않고 수의계약했느냐는 것인데, MS와 한컴을 뭉뚱그려 질문하다 보니 착오가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름 억울할 만하다. 문제는 국회 속기록을 들여다 봐도 이 의원의 질문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것에 대해서’, ‘그게 그런 거’,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 등 주어와 목적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국어의 기본 문법은 깡그리 무시하고, 의미 없는 단어만 나열하는 화법의 그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11월, 촛불

누군가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승리한 자가 정의라고 한다. 대중은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권력의 3불(否) 불평등, 불공정, 부정부패에 반기를 들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최다 규모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품은 100만, 200만 그리고 1천 만 명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비정치적’이라는 오명을 썼던 10대, 20대들까지 나섰다. 촛불은 광화문 광장을 에워싸던 차벽을 넘었고, 청와대 앞 100m까지 밀고 들어간 순간, 시민들은 ‘이길 수 있다’, ‘바뀔 수 있다’는 승리감을 맛봤다.

12월, 닭

올해 가장 서글픈 동물이다. AI로 살처분 된 닭, 오리가 2700만 마리를 넘어섰지만 애석하게도 관련 기사에는 온통 ‘청와대 닭 좀 잡아가라’고 난리다. 하긴 조류독감의 전파 속도보다 박근혜-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이 빠르게 번졌지만, 그 분은 어제도 오늘도 강건하시다. 닭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죄 없는 닭들은 예방 목적으로 마구 살처분 하는데, 정작 ‘잡아야 할’ 닭은 무방비로 청와대 앞마당에 풀어 뒀다.

닭에게 무슨 죄가 있나. 닭의 기억력이 3초에 불과한들, 필통 위에 ‘필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야 할 정도로 제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분과는 비견할 수 없다. 이제라도 닭의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 다른 ‘고귀한’ 생명을 갖다 대며 그의 무지를 비난할 필요 없다. 그분에게는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가 가장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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