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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시민들, 이재명의 '사이다'를 만나다

  • 입력 2016.12.21 09:55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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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시장은 대선 후보군에 턱걸이를 하는 듯하더니 어느 새 문재인 전 대표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잠재적 대권후보의 한 사람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인기가 요샛말로 ‘장난이 아니다.’ 후보군에 턱걸이로 드는가 싶더니 정기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린 게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가파르게 치솟던 지지도가 두 자릿수로 오르면서 어느 날부터 대세라는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를 위협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말이다.

박근혜 퇴진 구미시국회의가 초청한 연사로 그 이재명 시장이 지난 17일 구미에 왔다. 구미시 민방위교육장에서 열려고 했던 실내 강연이 구미역전 거리강연회로 바뀐 것은 구미시가 강연장 대여를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구미시민들은 역전 편도 2차선 아스팔트 위에서 이재명을 만날 수 있었다.

꽤 여러 차례 대통령선거를 겪었지만 내가 대선 후보를 직접 만난 것은 제14대 대선(1992년) 때의 김대중 후보뿐이다. 그때 내가 살고 있던 읍의 역전에서 그의 유세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지역의 분위기와 달리 엄청난 인파가 운집했는데 나는 멀찌감치 서서 잠깐 그의 연설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선 후보를 만나거나 유세를 듣지 못한 것은 내가 살고 있던 동네에 그들이 오지 않았고, 내가 굳이 대처로 나가 그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굳이 후보를 직접 만나보려 하지 않은 것은 무심해서가 아니라 그게 후보 선택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경북은 '증오와 배제'를 넘을 수 있을까

아직 내년 대선은 확정되지 않았으니 이재명 시장은 ‘잠재적’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지역에서 별 인기 없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최근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을 추월했다고 한다.) 이른바 티케이(TK) 지역에서 그가 같은 경북의 ‘안동’ 출신이라는 사실은 별 변수가 되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부산은 지역 출신의 노무현을 세 번(총선 2회, 지방선거 1회)이나 외면했고, 대선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범위를 경남, 대구 경북까지 아우르는 영남으로 넓혀도 결과는 같다. 영남 사람들의 뿌리 깊은 지역감정은 출신지와 무관하게 ‘김대중 정당’이면 남과 다르지 않게 보았던 것이다.

일견 지연을 넘어선 정치적 선택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착시라는 걸 모두가 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학습된 뿌리 깊은 증오와 배제의 결과이고, 그 논리의 기반은 근거 없는 지역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 후보를 뽑은 바 있는 부산 경남이나 대구와 달리 경북에서는 아직 야당에게 출신지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 이재명 시장의 강연회는 구미시가 장소 임대를 취소하는 바람에 구미역전 도로에서 열렸다.

시내버스로 구미역으로 갔을 때 벌써 강연이 시작되어 있었다. 구미역전 광장이 아니고 역 앞에 수직으로 뚫린 왕복 4차로의 편도를 막아 만든 무대에서 이미 라디오를 통해 귀에 익은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로의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은 청중은 줄잡아 2, 3백쯤.(청중의 숫자를 가늠하는 것은 경찰뿐 아니라 내게도 좀 힘겹다.^^) 무대에 서 있는 이재명 시장의 외투 왼쪽 깃에 달린 노란 세월호 리본이 선명했다. 성남시 청사에는 새마을 깃발 대신 노란 세월호기가 걸려 있다던가.

무대 왼쪽에 ‘사드 반대’와 ‘전농’의 깃발이, 청중들 가장자리에는 ‘이재명 손가락 혁명군’, ‘희망 이재명’이라 적힌 커다란 깃발이 간간이 흔들렸다. 한가운데 앉은 어떤 청중은 ‘경북의 아들 이재명 대통령’이라 쓴 손 피켓을 들고 있었다.

‘손가락 혁명군 이재명’ 깃발의 아래쪽에는 ‘전주 이사모’라 적혀 있었다. ‘이사모’는 아마 ‘이재명을 사랑하는 모임’쯤으로 짐작되었지만 깃발을 든 이가 전주에서 온 사람인지는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재명이 특유의 ‘사이다’ 발언으로 대중에게 떠오른 지 일정 기간이 지났으니 지지자 모임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이 시장은 구미참여연대가 올 5월에 게시한 카드뉴스[관련 기사 : 남유진의 구미-이재명의 성남, 어디에 살겠습니까?] 덕분에 큰 주목을 받았다면서 허두를 뗐다. 그는 특유의 말투와 청중과 교감하는 형식으로 복지와 진보·보수를, 경제와 재벌체제를, 현 시국에 대한 생각을 에두르지 않고 밝혔다.

▲ '막말꾼', '파이터'를 넘어 그는 노무현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때론 진지하지만 가끔씩은 청중의 눈높이를 겨냥한 듯, 농조로 진행하는 그의 강연에 청중들은 시원스레 화답하며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구미와 성남의 복지를 비교하면서 ‘약 오르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가는 날, 바로 수갑을 채워서 구치소로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어 청중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곤 했다.

다음은 그가 강연 중에 밝힌 내용들이다. 같은 내용은 한데 모아서 정리했다.

'성남시 복지'에 대하여

일반회계 예산을 인구수로 나누면 구미는 1인당 260만 원, 성남은 160만 원으로 구미가 100만 원이 많은데 그 복지 수준은 성남만 못하다. 교복 무상 지원, 청년배당, 산후조리비 지원도 없다. 성남은 학교에도 200억 원을 지원하는데 구미는 어떤가.

성남이 따로 부자여서가 아니다. 예산을 아끼고 아껴서 정말 필요한 데 쓴다. 지자체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예산을 딴 데 쓰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예산집행방식도 문제다. 교부세 지원으로 지자체 코를 꿰려고 한다. 지자체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인데 이는 지방자치제를 망치는 일이다.

진보와 보수

남들은 나를 진보좌파라 하는데 아니다. 나는 법을 지키자, 법대로 하자는 것일 뿐이다.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으로 가야 한다. 물론 그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조직적 중범죄 행위의 주범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면 청와대 나가는 날 수갑 채워서 구치소로 보내야 한다. 그게 평등한 민주공화국이다.

법을 지키자는 게 진보인가. 나는는 진짜 보수다. 지금 보수는 친일매국세력, 부패 기득권 세력, 이들이 정체를 숨기고 보수라고 강변하고 있다. 보수와 부패 기득권 세력과는 구분해야 한다.

재벌체제와 경제

재벌체제 해체해야 한다.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것은 법을 지키는 일부터다. 법에 주 52시간 이상 일 시키지 않아야 하는데 더 시킨다. 그래서 연장근로, 야간근로 라는 이름으로 봉급 많이 준다고 소문내어서 근로자들 욕 먹이는 일을 한다.

52시간 근로, 이 법만 지키면 최하 20만에서 최대 8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1년에 망하는 자영업자 80만 명인데 이걸 해결할 수 있다. 노동법만 지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재벌은 법을 어기고 횡령하고 배임하여도 휠체어 타고 왔다 갔다 하면 해결되어 버린다.

'복지'에 대하여

나라 예산은 국민이 맡긴 세금인데 국가 안보, 질서 유지 등의 비용으로 쓰고 적게 쓰고 아껴 써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써야 이걸 복지라고 한다. 이는 헌법에 나와 있다. 복지를 가지고 ‘포퓰리즘’이니 ‘악마의 속삭임’이니 하는 것은 잘못이다.

김무성이란 분이 나를 악마로 몰았는데 나는 성남 ‘복지대마왕’이 되기로 했다. 복지를 하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청년 여러분, 백만 원 받으면 게을러지는가. 이는 국민을 개돼지 아는 지배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집행하는 머슴이자 대리인이다.

만인이 평등한 나라, 노력한 만큼 분배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얼굴만 바꾼 박근혜 세력, 기득권들이 계속 집권하려 한다. 우리가 이룬 기회를 반드시 싸워서 지켜야 한다. 죽 쑤어서 개 주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사드와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방력을 높이는 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서다. 전쟁 없이 안전하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박정희도 전쟁 중에도 한 손은 잡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현재 남북한의 모든 통로가 막힌 상태는 매우 걱정스럽다.

남북 경제협력 재개하는 것은 상호 이익이다. 평화 정착과 군사적 긴장 완화가 이익인 것이다. 북핵이든 미사일 문제든 일방적인 제재 압박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화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한반도 비핵화도 이루어 내어야 한다.

사드 배치는 온 국민의 문제, 열심히 싸워달라.

▲ 강연회를 마친 후 사람들은 '박근혜 구속' 피켓을 앞세우고 구미시 내 중심가인 문화로를 한 바퀴 돌았다.

강연은 간단한 질의 응답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강연 도중에 청중들이 더 늘어나거나 준 것 같지는 않았다. 도심이고 주말이라 행인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무심하게 지나가기만 했다. 경북의 이재명에 대한 지지도는 어느 정도일까가 궁금했다.

경북은 이재명을 '아들'로 받아들일까

집에 돌아와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누리집에서 <더리서치>가 실시한 ‘전국 정례조사 대선후보 및 정당지지도’(2016-12-14)를 확인해 보았다. 전체 지지도에서 이재명은 문재인(25.7%), 반기문(20.4%)에 이어 3위(18.9%)다.

그런데 대구·경북에서의 지지도는 같은 3위인데도 6.8%로 거의 1/3 수준에 그쳤다. ‘경북의 아들 이재명’은 경북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는 낯설고 먼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소속정당의 지지도는 마침내 이 지역에서도 새누리당을 제쳤다고 했다. 이러한 민심의 변화가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다음 선거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어느 일간지에선 그를 ‘착하지 않은 노무현’이라고 했다. 그를 ‘파이터’와 ‘막말꾼’으로 이르며 ‘품격’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지지도를 견인하는 것은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 시원스레 내뱉는 그의 직설이다. 그가 ‘성남 사이다’를 넘어 노무현이 간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 박정희의 고향 구미는 박근혜 탄핵 이후 전개될 대선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강연 후 사람들은 ‘박근혜 구속’ 피켓을 앞세우고 시내 문화로를 한 바퀴 돌았다. 구미에 와서 처음 돌아본 젊은이의 거리였는데 젊은이들은 무심히 행렬을 바라보기만 했다. 박정희의 고향이면서 현 집권세력의 지역 기반이라는 구미가 이후 어떤 정치적 미래를 선택하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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