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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칼을 꽂은 부산 난개발

  • 입력 2014.02.12 10:19
  • 수정 2014.02.12 10:24
  • 기자명 거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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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주근깨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달맞이를 할 수 있을까요? 밤이 되면 고개 뒤편에 하늘 높이 치솟은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빛을 발합니다. 달이 저 거대한 건물 조명을 뚫고 고개에 아름답게 달빛을 드리울 수 있을까요?

건축가 정기용이 <서울 정릉 3동 주택재개발 기본계획>에서 첫번째로 든 원칙이 경관보존입니다. 힐스테이트에서 경관보존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나요? 고개를 야금야금 파먹더니 드디어는 고개 위에 쇠막뚝을 꼽은 모습이죠. 더 기가 막힌 건 경관을 파괴한 가장 잔인한 건축물로 역사에 남을 이 아파트가 부산건축문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군요. 혹시 달맞이고개에 올릴려고 상을 준 건 아닌가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듭니다.

몇년 전 달맞이고개는 그나마 봐줄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맞이도 아니고 고개도 아닙니다. 거대한 말뚝이 꼽힌 달맞이 고개는 그냥 고층 아파트 부지일 뿐입니다. 부산시의 난개발이 수천년 이어져온 지리적 맥락까지도 해체시켜 버렸습니다.

용두산 부산타워에서 바라본 영도입니다. 오른쪽 편에 있는 다리는 요즘 다시 다리를 들어올려 화제가 된 영도대교이고 중간에 큰 건물은 롯데백화점입니다. 백화점 뒤에 타워크레인이 돌아가는 곳은 현재 건설 중인 108층 롯데호텔입니다.

108층 롯데호텔이 다 지어지면 부산 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용두산 부산타워에서도 영도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산항을 조망하려면 부산타워가 아니라 롯데호텔 옥상을 올라가야합니다. 부산타워는 용두산까지 다 해도 200미터가 안되는데 롯데호텔은 500미터가 넘습니다. 그러면 현재 4천원을 받고 운영하는 부산타워는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롯데호텔은 부산타워의 조망을 해칠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풍수지리도 거스르는 점이 있습니다. 롯데호텔이 지어지는 곳은 원래 옛날 부산시청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 전엔 용미산이라고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일본이 그 산을 헐고 부산시청(당시 부산부청)을 지었습니다. 108층 롯데호텔이 반 이상 올라가면 꼬리인 용미산이 머리인 용두산보다 더 높아지게 됩니다.

21세기에 왠 풍수지리냐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용미산이 용두산보다 높아진다는 사실은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일본은 부산을 대륙침략의 기지로 삼았고 패전 후에도 식민도시의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용두산엔 신사를 세워 신성시했죠. 우리는 풍수지리를 국운과 연결짓는데 익숙합니다. 그런 점에서 뒤바뀐 용두산과 용미산의 풍수지리는 찝찝함을 넘어 괜한 불안감까지 들게 합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뒤에 보이는 초고층 빌딩이 모여있는 곳은 해운대 마린시티입니다. 2010년엔 여기 오피스텔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는데 당시 초고층건물 화재에 무방비라는 게 밝혀져 국민들에게 초고층 주거시설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했죠. 이후 해운대 소방서에 초고층 빌딩 화재 대응센터가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응팀이 있다해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난 화재를 지상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마린시티는 3년 뒤인 작년 2월 또 한번 전국적인 뉴스에 올랐습니다. 칼날처럼 솟은 아이파크 입주민과 그 사이에 있는 햐얏트 호텔 사이가 2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사생활침해 스트레스를 호소한 아이파크 주민들이 호텔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 오피스텔 주민들이 배상을 받긴했지만 용적율이 1000%에 가까운 곳에 호텔이 있다는 걸 알고도 입주한 주민들에 대한 여론은 별로 호의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파크가 피해자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생활침해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주변 주민들에게 입히고 있었습니다. 외벽을 유리로 지은 커튼월 공법의 아이파크 건물이 주변에 빛을 반사하는데 여름이 되면 그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2012년에 경남마리나 아파트 입주민들이 현대아이파크 건물의 반사되는 빛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갈등 부추기는 고층건물

부산이 난개발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해변 앞 땅은 모조리 건설자본이 독식해 고층빌딩을 지었거나 짓고있습니다. 마린시티 앞의 수영만 요트경기장이 거의 유일하게 남은 해변 앞 땅이라는데 그마저도 세계적 요트경기장 재개발을 핑계로 호텔과 쇼핑센타를 짓겠다고 합니다. 이제 한가로이 해변을 볼 수 있는 조망지는 고층빌딩 뿐입니다. 부산의 해변이 모조리 부자들의 앞마당이 된 것입니다.

왜 부산의 난개발은 이리도 심할까요? 부산은 도시를 끼고 있는 해안 경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두번째 도시로서 360만 인구의 부동산시장이 있습니다. 건설자본이 호시탐탐 노릴만한데 여기에 20년 간 바뀌지 않는 독점적인 지방권력이 유착하면서 난개발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난개발은 수천년 이어져온 지역의 역사적 지리적 맥락을 파괴했습니다. 일반시민들의 해안 조망권을 뺐어갔습니다. 지역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분쟁에 시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난개발로 이익을 보는 건 건설자본과 유착세력들입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한 비용은 시민들이 떠안고 있습니다.

이제 부산시의 난개발을 끝장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난개발의 고리들을 끊어야 합니다. 건설자본을 규제하던가, 관료들을 통제하던가, 독점적 지방권력을 끝장내던가. 이들 중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보면 짐작되는 답이 있을 겁니다.

* 부산지하철노조와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소셜미디어 부산집중취재에서 취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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