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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사건을 아십니까?

  • 입력 2016.09.28 09:58
  • 기자명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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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직썰만화] 대한민국 국방부의 위엄

지난 9월 5일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파주을)은 ‘국민방위군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골자는 북한군과 맞서 싸우려고 나섰던 ‘국민방위군’도 마땅히 ‘참전용사’ 예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특별법 제정 시도는 처음 있는 일이며, 사건 발생 66년만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6·25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맞서 싸울 군사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대규모 징집을 단행했다. 문헌에 따르면 수십만(68만명 등)에 달하는 국민방위군을 편성했는데, 법적 근거는 1950년 12월 21일 법률 제172호로 공포된 ‘국민방위군 설치법’이었다. 따라서 국민방위군은 민간인이 아니라 국가가 징집한 정식 병력자원이었다.

국민방위군은 국가가 징집한 병력자원인 만큼 필요한 예산편성과 군에서 정식으로 관리해야 했다. 이듬해 1월 29일 국회에서 1~3월분 예산(209억830만원, 대원 50만명 기준)이 통과됐는데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한 예로 장정 1인당 하루 식량은 4홉이었는데 이는 당시 5홉 5작이었던 전쟁포로보다도 적었다. 이마저도 현금이 아닌 ‘양곡권’을 주어 경유지의 시장이나 군수에게 보이고 급식을 해결하라고 했다.

게다가 이들을 지휘, 관리하는 자들도 문제였다. 국민방위군이 비록 예비군 조직이긴 하나 마땅히 현역장교가 지휘를 맡아야 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사령부의 수뇌부는 대부분 사설 우익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 간부 출신들이었다. 김윤근은 대한청년단 단장 출신으로 민간인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별을 달고 국민방위군사령부 사령관이 되었다. 윤익헌 등 청년단 간부들 역시 졸지에 대령, 중령으로 임명돼 부사령관 등에 취임했다. 사정이 이러니 병력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면서 국민방위군에게도 후퇴명령이 내려졌다.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장비는 전무하디시피 했다. 방한복은커녕 입대 당시 입고 온 평상복에 2명당 1장씩 지급된 가마니 한 장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추위에 서로 살을 맞대고 자다보니 이가 들끓어 빗자루로 쓸어내야 할 정도였다. 한겨울에도 발진티푸스가 창궐했으나 의약품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남하하는 국민방위군 대원들

주먹밥 하나로 하루를 때우던 대원들은 너무나 배가고파 소나무 껍질, 땅속의 메뿌리, 정미소 벽에 붙은 왕겨, 인분을 뿌린 밭작물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었다. 심지어 우물가 수채에 버려진 밥풀을 주워 먹기도 하였고, 바닷물을 먹고 사망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정식 군복도, 군번도, 무기도 없이 ‘죽음에 대열’에 나선 이들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였다.

남하과정에서 굶어죽거나 질병, 영양실조 등으로 죽은 대원은 5만~10만 명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부산일보가 펴낸 <임시수도 천일>에는 사망자가 5만여 명으로 나와 있다. 현재로선 사망자, 부상자, 행방불명자에 대한 정확한 숫자를 알 수도 없는 실정이다. 관계당국은 물론 그 누구도 실상을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극의 발단은 국민방위군사령부 간부들의 예산유용 때문이었다. 당시 수사당국이 조사한 바로는 24억 원, 국회조사단의 주장으로는 50~60억 원에 달했다. 천벌을 받고도 남을 일이었다. 여론이 들끓자 국방부는 군사재판을 열어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 부사령관 윤익헌, 재무실장 강석한, 조달과장 박창원, 보급과장 박기한 등 관련자 5인에게 사형을 선고, 1951년 8월 13일 대구 근교 야산에서 총살형을 집행했다.

김윤근 사령관 등 5인의 처형이 집행되고 있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이나 보도연맹사건과는 또 다르다. 이 사건은 이념갈등에서 빚어진 참사가 아니라 국방당국의 관리 소홀과 군 간부들의 비리에서 비롯된 일종의 ‘병무비리사건’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전적으로 정부당국에 책임이 있다. 그간 이 사건이 조명 받지 못한 것은 특정개인이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박정 의원의 특별법 발의를 계기로 법 제정은 물론 진상규명위원회 설립과 그를 통한 피해실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국가배상, 위령사업 등이 적극 추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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