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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은 이정현으로 반박 가능하다

  • 입력 2016.09.27 11:16
  • 수정 2016.09.27 11:17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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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은 김성근으로 반박 가능하다.” 프로야구팬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조롱에 가까운) 우스갯소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인을 빼앗기는 팀이 잘못이다. 그게 프로" (2009. 10.)

vs KIA가 한국시리즈 내내 사인을 훔쳤다" (2009. 11.)

"권혁 투입, 투수가 없었다" (2015. 5.)

vs "선수가 없다? 프로에선 말이 안 돼" (2012. 2.)

"우리끼리 너무 비난하고 싸우지 말자" (2015. 5.)

vs "비난 없는 지금이 바로 위험한 시기" (2015. 1.)

물론 상황이 미세하게 다르고 참작할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저 발언들은 전부 김성근 감독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김 감독만큼 언론을 잘 활용하는 야구 감독도 드물다. 그는 기사가 될 법한 말을 적절한 타이밍에 내놓는다. 또, 본인에 대한 비판을 잘 기억해뒀다가 특정 시점이 됐을 때 반박하기도 한다. 그만큼 김성근 감독은 언론 플레이에 능하고 지능적이다. 게다가 횟수도 잦다.

말을 많이 하면 실언할 확률도 높아진다. 뚜렷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기 마련이라 이전에 했던 주장과 정반대로 말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른바 말 바꾸기다. 반대로 말하면 뚜렷한 철학이 없는 사람은 어떻겠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이말 저말 쏟아내지 않을까?

“김성근은 김성근으로 반박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탐내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다. 지금 그는 애처롭게 밥을 굶고 있다. 다이어트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국민을 위해 반드시 관철해야 할 정치적 사안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정현 대표가 지난 26일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요구 때문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정세균 의장이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의결된 데 불만을 품은 것이다. 그 중심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이 대표는 밥을 굶고 있다. 여당 대표의 단식 투쟁은 사상 초유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정감사는 파행을 거듭 중이다. 근데 잠깐,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 단식이 특권의 시작"이라 말한 바 있다.

“선거제도가 정착된 그러한 나라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도 바로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바로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4년 10월 31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

“특권을 내려놓자” 부르짖고 “국회 개혁”을 소리치던 그가 난데없이 특권을 몸에 두르고 나타난 꼴이다. 과연 이정현 대표는 2년 전 자신이 한 말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를 뭐라고 반박할까? 노련한 정치인이자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는 이런 말 바꾸기도 아무렇지 않게 반박해낼 것이다.

지난 2005년 11월 15일 '쌀 협상 국회 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던 전용철 · 홍덕표 두 농민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약 한 달 뒤인 12월 2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던 이정현 대표는 "농민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진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대통령이 즉각 사과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인을 밝히고 그 과정에 책임져야 할 일이 나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매우 강경한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자체적으로 진상 규명을 해나가고 재발 방지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그랬던 그가 물대포에 쓰러져 316일 만에 세상을 떠난 백남기 농민에 대해서는 "조금 전에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농민 백남기 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건조한 반응을 내놨다. 참, 의아한 일이다. 과연 밥을 굶고 있는 그에게 11년 전 그의 발언을 되돌려준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철학의 부재인가, 단순 말 바꾸기인가.

당 대표 경선에 나설 때는 "권력에 줄 서기 하는 수직적 질서를 수평적 질서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선 후 "대통령에 맞서는 게 정의라고 인식한다면 여당 소속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한 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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