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박태환 신화, 어쩌면 약물 덕이었다면?

  • 입력 2016.08.12 14:04
  • 수정 2016.08.12 14:39
  • 기자명 정희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릴리 킹

지금 리우 올림픽 현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선수는 누굴까. 중반을 향해 달리는 리우 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미국 인디애나 출신의 열아홉 살 수영 선수 릴리 킹이다. 그가 가장 빛나는 스타인 이유는 여자 평영 1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서만은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깨끗한 스포츠(clean sports)'를 위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여자 평영 100미터 준결승을 위해 대기실에 있던 킹은 앞서 끝난 준결승 경기에서 러시아의 율리아 에피모바가 1위를 골인한 직후 검지를 치켜드는 모습이 대기실 모니터에 잡히자 모니터의 에피모바를 응시하며 자신의 검지를 들어 좌우로 가로저었다. 에피모바가 넘버원을 뜻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킹은 '넌 아니야'라고 응수한 것이다. 이 제스처는 과거 미국 프로 농구 스타 디켐베 모톰보가 상대방의 슛을 블록한 후 했던 것인데 "넌 나한테 안 돼"라는 의미로 읽혀 NBA가 선수를 상대로 하는 것을 금지시킨 행동으로 따라서 매우 도발적이다.

그렇다면, 킹이 그런 도발적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피모바는 이미 2013년 금지 약물 사용으로 인해 16개월 징계를 받은 바 있는데 올해 또 다시 약물 사용이 밝혀져 징계를 받아 리우 올림픽 출전이 금지됐지만 박태환의 경우처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출전 허가 판결로 경기에 나선 것이었다.

킹은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인터뷰에서 "나는 깨끗하게 금메달을 따서 기쁘다"면서 "약물 사기꾼(drug cheat)들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에피모바에 직격탄을 날렸다. 에피모바는 그 충격 때문인지 경기 후 퇴장하는 복도에서 매니저와 부둥켜안고 몇 분에 걸쳐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킹은 시상대에서 에피모바와 악수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맥 호튼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선수들이 약물 사용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호주의 수영 금메달리스트 맥 호튼은 은메달을 딴 쑨양을 가리켜 "약물로 속임수를 쓴 선수와는 인사할 시간이 없다"며 악수를 거부했고 기자들이 쑨양과의 대결에 대해 묻자 "도핑에 걸린 선수와 내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을 거부하며 무시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통산 21개째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역시 쑨양을 '약물 사기꾼(Drug Cheat)'라고 비난한 맥 호튼의 발언에 지지를 표하면서 "도핑 테스트에 2번이나 걸린 선수가 또 헤엄칠 기회를 얻었다는 건 슬픈 일"이라며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와 함께 경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수영선수 카미유 라코르는 "쑨양이 금메달을 받는 시상식을 보며 역겨웠다"며 수영이 결승전마다 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선수가 2~3명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순양의 소변은 보라색"이라며 "수영이 이렇게 변질되는 것이 슬프다"고 한탄했다.

약물 문제는 이번 올림픽 최대 이슈가 된 듯하다. 여기엔 IOC의 자충수도 있다. 대회 전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문제와 특히 러시아 정부가 이를 방조, 묵인을 넘어 지원했다는 증거까지 나오자 처음 문제가 된 육상 선수뿐 아니라 러시아 선수단 전체를 이번 올림픽에 출전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유럽 중심주의 가득한 IOC는 결국 육상 선수단만 출전을 불허하고 나머지 선수들에 대해서는 각 경기 연맹에 그 결정을 떠넘겨 버렸다.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곧 IOC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하계 올림픽에 곧 이어 열릴 장애인 올림픽 주최 측은 모든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을 불허한 것이다. IOC는 스스로 이번 올림픽을 '약물 올림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정을 한 것이다.

호튼이 쑨양을 비난할 때만 해도 선수들 개인 간 문제로 보였다. 킹이 에피모바를 비난할 때는 (구(舊)소련 시절부터 이어지는) 러시아와 미국 간 국가적 라이벌 관계로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한 방 먹인 게 바로 릴리 킹이다. 그는 과거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이 적발돼 징계를 받은 바 있는 미국의 저스틴 게틀린과 타이슨 가이가 이번 대회에 출전한 것에 대해 "IOC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들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선수단 팀 동료에까지 일격을 날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당시 여론은 박태환의 출전에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올림픽에 출전해 조국에 금메달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번에 금메달을 땄다면 그는 '약쟁이 선수(doper athlete)'가 됐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그런 선수를 출전시킬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응원하는 나라가 됐을 것이다.

혹자는 박태환이 이미 법적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만약 출전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됐을 거라고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약물 복용 의혹 관련 기자회견장에서의 박태환 ⓒ민중의 소리

첫째, 박태환의 출전을 금지하는 조항은 약물로 징계를 받은 선수가 3년간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선수 생활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또 수영으로 돈을 벌어도 된다. 그렇지만 그런 불미스러울 뿐 아니라 '사기'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자가 국가 대표가 되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수가 약물을 했다면 국가 대표로 세계 무대에 서는 것 정도는 제한을 받아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출전해서 약물 덕에 메달을 따고 그 덕에 연금까지 받아서야 되겠는가.

둘째, 논란 중 하나가 바로 박태환 자신은 몰랐다는 주장인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원래 운동 선수의 약물 사용을 따질 때 몰랐다는 사실 자체가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박태환의 경우는 몰랐다는 주장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그가 투여했다는 네비도는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테스토스테론이다. 운동 선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스테로이드고 그 스테로이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테스토스테론이다. 20대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코 감기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주사를 맞는데 그 주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맞았다는 것은 상상 가능한 스토리가 아니다.

셋째를 이야기하기 전에 승부 조작을 감시 이야기해 보자. 최근 문제가 된 프로 스포츠 승부 조작의 경우 입장객, 팬, 시청자, 주최 단체, 중계 방송사를 속여 기만하는 것으로 명백한 사기다. 합법적 베팅인 스포츠 토토에 참여하는 자들에겐 명백한 경제적 손실마저 떠안기게 된다. 도박 치고도 '사기 도박'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감옥에 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약물을 사용한 선수들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협회로부터의 징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약물은 승부 조작 못지않은 더러운 행위다. 스포츠의 절대적 기반인 '공정한 경쟁'을 무너뜨린다. 승부 조작은 포볼 내주기처럼 실수를 빙자해 경기에서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 반대 급부로 돈을 따겠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약물은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상대를 이겨 자신이 불법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스포츠의 근본을 뒤흔드는 짓이다. 상대선수들에게는 명백한 불공정 경쟁이자 사기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물론 스포츠계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박태환은 경기 후반 특유의 막판 스퍼트가 전매특허였고 그 덕에 많은 메달을 땄으며 우리는 여기에 열광했다. 그게 혹시 약물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른 선수들, 그러니까 박태환 때문에 순위가 밀린 선수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른 선수들은 100미터를 달려야 하는데 약물 선수는 10미터 앞에서 시작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컨닝해서 시험 보는 학생을 우리가 응원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가.

우리 스포츠에도 약물이 문제가 된 것은 오래다. 이미 다양한 종목에서 적발이 됐다. 그럼에도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체육회는 아직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역도, 사이클, 수영 같은 개인 종목뿐 아니라 프로 야구 같은 팀 종목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프로 야구의 경우 약물이 문제가 될 때마다 외국에서 온 용병 선수들 때문에 소수의 선수들이 호기심이 잠시 가졌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약물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사실이 아니다. 우리 선수들도 용병 선수들과는 상관없이 매우 적극적으로 또 자체적으로 사용했다. 공개적으로 팀 미팅 때 주문을 받기도 했다. 승부 조작에 이은 또 하나의 시한폭탄인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할 때다.

스포츠에서 약물은 없어져야 한다. 물론 유혹을 이기지 못해 사용하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선수들이 없어져야 한다. 약물로 경기하고 약물 덕에 메달 따고 그 메달 덕에 연금 받고 그 메달 덕에 인기 얻고 또 그 메달 덕에 광고 찍는 모습은 마치 사기꾼의 '이중생활'을 보는 듯하다.

죄를 짓고 벌을 받았다면 그의 사회생활과 생계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가의 명예와 관련된 직책이나 국민의 세금과 관계된 일이라면 보다 신중해야 한다. 박태환을 보며 옹호하고 심지어 응원까지 하는 지금 바로 그 수준이 지금 대한민국의 상식과 도덕의 수준을 보여준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