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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범죄 여성 피해자 통계는 잘못되지 않았다

  • 입력 2016.05.26 15:04
  • 수정 2016.05.26 15:07
  • 기자명 MC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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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박가분님의 [반론]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과 통계의 함정에 대한 반박 글입니다.

위에 글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언론과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80%다’는 통계를 부정하는 글이다. 필자는 박가분이다. 박가분의 주장은 이렇다.

1) 해당 통계는 강력범죄의 항목 설정이 잘못되었다.

2) 통계는 살인, 성범죄, 강도, 방화를 강력범죄로 규정하지만, 미국의 사례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폭력 범죄가 들어가야 한다.

3) 그렇게 조정했을 때 강력범죄 피해자 성비는 1.46에 달한다. 고로 왜곡된 통계다.

4) 통계가 유통되는 양상을 2007년 광우병 괴담에 비견하며 사회운동이 자초할 파산을 경고한다.

박가분의 이 글은 사료적 의의가 있다. 비극적 사건을 여혐 프레임으로 몰고 가지 말라는 인터넷상의 남성 여론은 해당 통계를 부정하는데, 이 글의 논리와 정확히 동일하다. 이런 주장을 검토하는 것에도 의의는 있을 것이다. 인터넷 남성 여론은 1)~3) 뿐 아니라 부수적인 비판들을 제기한다. 저 주장과 근거들을 긁어모아 쟁점 별로 체크해보자.



0. 들어가기에 앞서
통계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실을 취사적으로 수치화한 정보다. 통계가 곧 현실이 아님을 주지하고 통계 밖의 현실과 맞춰 보며 유기적 해석을 해야 한다.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80%다’는 주장은 ‘한국에 사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흉악한 범죄에 훨씬 많이 노출돼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력범죄의 정의를 어떻게 구획하느냐는 사실 본질적 쟁점이 아니다. 어떤 정의를 경유하든 간에 한국 여성이 삶에서 어느 정도로 위험을 겪을 수 있는지 밝히는 게 본질이다.


1. 강력범죄 피해자 80%는 여성인가
사실이다. 경찰청이 발표한 2013년 공식 통계를 보면 강력범죄 피해자 26,962명 가운데 여성 피해자가 23,150명이다. 약 86%다. 박가분은 “여성가족부에서 나온 통계인 듯하다”고 추정하고 ‘여성가족부 발 통계’라 이름 붙이지만, 이는 사실 경찰청 통계다.


출처: 경찰청

2. 강력범죄의 정의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경찰청 통계는 살인, 방화, 강도, 성범죄를 강력범죄로 구분한다. 여타 통계 자료나 다수 언론 기사를 봐도 대부분 저 정의를 따른다. 2013년 주간조선 기사도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가 10명 중 8명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폭력범죄를 강력범죄에 포함하면서도, 네 유형의 범죄를 ‘흉악 강력범죄’로 구분한다. 이는 경찰청 통계와 같은 취지의 구분일 것이고, 강력범죄를 통상의 범죄보다 강도가 센 것으로 인식하는 통념에도 부합한다. 참고로 검찰청 통계도 살인, 방화, 강도 성범죄를 ‘강력범죄(흉악)’이라고 구분해 놓았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와 맥락 위에서 익히 알려진 통계가 다시금 공유되고 있는 것인데, 자의적으로 정의된 것도, 진보주의자나 여성주의자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통계를 전용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통계 항목을 정의하는 관행 자체에 맹점이 있다며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은 할 수 있다. 박가분이 말한 대로 강력범죄를 정의하기에 따라 피해자 성비가 크게 바뀌는 것도 사실이고, 폭력 범죄를 강력범죄로 분류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3. 강력범죄 중 성폭행 피해자 수가 압도적인데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도 많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성범죄 피해자는 강력범죄 피해자 26,962명 중 22,310명이다. 이 수치는 특정 조건이 충족됐을 때 한국에서 성범죄 발생률이 꼭 그만큼 높다는 뜻이 된다. 박가분은 “여성가족부 기준 통계에서 강력범죄의 여성 피해자 비율을 현격히 높인 주된 범주는 ‘성범죄’이지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에 해당하는 ‘살인’이 아니”라며 강남역 사건과의 상관성을 부정한다. 여성들은 왜 두려워하고 분노했을까. 피해자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여성이 부닥칠 신변의 재앙은 살인뿐 아니다. 성범죄야말로 절대다수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며 ‘여자라는 이유로’ 기다리는 재난이고,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로 나타날 개연성도 크다. 그간 소라넷, 공중장소 몰카, 리벤지 포르노,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이 공론화됐는데,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성범죄 피해자 수가 살인 피해자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건 사건의 의미를 기각하는 게 아니라 증폭시킨다. 이렇듯 성범죄를 ‘특수한 성별의 사례’로 보편적 비교 대상에서 밀쳐두는 태도는 타자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승인하지 않는 대상화와 닿아있다.


4. 한국의 성범죄 발생률은 높은가
중요한 대목이다. 현재 공유되는 강력범죄 통계에서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만약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비중에도 의미를 둘 수 없다. OECD가 발간한 Society at a Glance 2014에 따르면, 한국의 강간 범죄율은 OECD 13위다. 중상위권이지만 속단할 수 없다. 암수범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암수범죄는 실제로 일어났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다. 이런 통계 외적 변수가 통계의 정확성을 좌우하기도 한다. 관건은 신고율인데, 가령 스웨덴·노르웨이 같은 인권 선진국의 강간 범죄율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범죄가 양지에 잘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반대로 한국은 성범죄 신고율이 낮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성범죄 신고율이 7~10%라고 말한다. 반면 미국은 30% 수준이다. 한국의 실제 성범죄 발생률은 OECD 13위보다 높을 개연성이 있다. 즉, 강력범죄에서 성범죄 항목이 차지하는 큰 비중은 유의미하며, 국제적 기준에서 한국 여성은 성범죄 위험에 높게 노출돼있다.


5. 어쨌든 다른 강력범죄에서는 남성 피해자가 많지 않나

방화를 제외한 살인기수(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것)와 강도의 남녀 피해자는 동등한 수준이다. 살인은 여성이 18명 더 많아 50:50을 넘었다. 2014년 발간된 UNODC(유엔 산하 마약 및 범죄국)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살인 사건 남녀 피해자 성비는 79:21이다. 물론 여자가 21이다. 유럽은 72:28 아메리카는 88:12 아시아는 71:29다. 얼마간의 변수를 감안해도 한국에 사는 여성은 피해자 성비 상으로 이례적이다. 이것은 곧 타국에 비해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경향이 크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박가분은 살인 미수까지 포함하면 남녀 성비가 1.5:1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차지하는 살인 피해자 성비를 평가절하한다. 말했듯 세계적 성비는 8:2고 이것도 기수만 포함한 것이다. 또한 살인기수와 미수를 합산했을 때 남성에 비해 여성 피해자의 미수 사례가 적다면 여성은 살해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만큼 회피하기 힘들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6. 한국은 살인 발생률 자체가 낮지 않나
한국의 살인 범죄율은 인구 10만 명당 0.8명이다. UNODC에 기록된 한국의 살인 범죄율은 기수와 미수를 합산한 것이라 기수만 센 타국과 기준이 맞지 않는다. 이 점을 바로잡으면 한국은 OECD 36개국 중 30위권 수준이다. 즉 국제 기준에서 한국 여성의 살인 피해자 성비는 매우 높지만, 타국 여성에 비해 살해당할 위험이 높다고 하긴 어렵다.


7. 폭력범죄 피해자는 남성이 많지 않나
경찰청 통계 수치를 인용하면 폭력범죄 (계) 294,188명 (남) 178,669명 (여) 85,205명이다. 강간과 살인 같은 층위의 범죄에선 남성에 비해 여성 피해자가 많지만, 폭행 같은 층위의 범죄에선 남성이 많다고 정리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은 폭력 범죄율 자체가 높지 않다는 점은 기억하자. 한국의 폭력 범죄율은 OECD 21위다. 여기에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도 감안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가정폭력은 연간 20만 건 이상 신고되는데 경찰은 실제 가정폭력의 10% 정도라 본다. 처벌받는 사례도 많지 않았다. 사적 영역의 불화라는 인식이 경찰이 개입하는 데 장벽이 된다. 이 점은 데이트 폭력에도 해당한다.


8. 결론
정리해보자. 강력범죄에서 여성 피해자가 80%라는 통계는 자의적 왜곡이 아니다. 강력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성범죄 피해자지만, 살인과 강도에서 여성 피해자의 비중도 높거나 낮지 않으며, 성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여성의 인권을 위협한다. 폭력 범죄 피해자 중엔 남성이 많고 그것을 강력범죄에 포함하면 성비는 역전되지만, 암수범죄를 고려해야 하며 폭력 범죄 발생률은 낮은 편이다.
이 통계적 정황들을 엮어 보자. 한국은 범죄 발생률이 낮은 국가다. 폭력과 살인 범죄율은 OECD 하위권이고, 강도와 주거침입도 각각 34위와 32위로 최하위권이다. 이렇게 치안이 양호한 나라에서 강력범죄 중 성범죄 유독 비율이 높고, 다른 국가에 비해 여성 살인 피해자 비중도 크다. 한국 여성의 인권과 안전이 남성에 비해 보호받지 못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 추세의 문제도 있는데, 성범죄 발생률은 2003년 12.7명에서 지금은 40명을 넘었다. 암수범죄가 통계로 집계된 측면도 있겠지만, 여전히 낮은 신고율을 감안하면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성범죄를 포함한 강력범죄가 줄어가고 있는 미국 등과 비교하면 특기 사항이다.
강력범죄 피해자 80% 이상이 여성이라는 주장은 오해와 이론의 소지가 있다. 언뜻 들었을 때, 신체를 위해하는 범죄 전반에서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이란 말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같은 기사의 헤드라인을 뽑는다면 “한국의 치안 그물망, 여성에게는 헐겁다”처럼 통계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통계를 통해 현실을 가시화했을 것 같다. 하지만 박가분 같은 비판이 한국에 사는 여성이 마땅한 대책이 필요할 만큼 신변의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못한다. 사회적 관행에 따라 항목이 정의되었고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청이 작성했으며 수치에 허위와 오류도 없는 통계를 괴담으로 치부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박가분은 ‘여성가족부 발 통계’란 표현을 반복하는데, 여성계의 음모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심어 줄 수 있다.
박가분은 검증되지 않은 사실관계로 사회 현안이 무분별하게 증폭되고, 여론의 신뢰를 잃게 돼 운동 세력이 대가를 물게 되는 상황을 경고한다. 틀리지 않은 원론이다. 강남역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여성들 심정에 공감하고 페미니즘 사회운동이 기반을 넓히길 바라며 충고를 했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판단한 통계의 어폐를 지적하는 것과 함께 통계의 유효한 대목을 긍정해야 한다. 그리고 통계로 말하려는 취지를 받아 안아 현실을 더 투명하게 파악하도록 보론을 제시하면 된다. 지금 박가분이 쓴 글은 상대의 통계적 명제를 흔들고 폐기하는 데 매몰돼있다는 인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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