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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로 보는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문법

  • 입력 2016.04.29 14:30
  • 수정 2016.04.29 14:38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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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은 ABC와 인터뷰도 했다. ⓒABC

마블의 히어로 영화인 <데드풀>이 두어 달쯤 전 개봉했을 때, 히어로물 팬들은 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데드풀은 제 4의 벽을 넘어다녔다. ('제 4의 벽'이란 작품 속 배우는 관객이 있는 작품 밖의 세상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연극 이론의 한 개념이다-편집자 주) 데드풀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기행과 음담패설을 일삼는다.

아니나 다를까 <데드풀>은 최종적으로 제작비의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내며 성공을 거둔다. 원작 팬부터 소문만 믿고 친구 따라 시사회를 본 사람까지 저마다 입을 모아 그 재미의 원인을 분석했다. ”히어로 영화와 코믹스 전반을 ‘까는’ 히어로라니 신선하다”, “안티-히어로이자 메타-히어로적인 캐릭터다”, “<데드풀> 제작진이 약을 거하게 빨았다” 등등.
그러나 <데드풀>의 흥행 원인을 작품 내부에서만 찾는 것은 조금 단순한 분석이다. 히어로 데드풀의 또라이적인 특성, 장르적 완성도도 물론 일정한 공이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데드풀>은, 오늘 전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이르기까지, 최근 히어로 영화 산업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하나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포지셔닝했고, 그래서 성공한 영화라고 봐야 한다.

각각의 이야기가 한 덩어리로 뭉치니 너무 커지더라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히어로 영화 산업의 흐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히어로 무비(영화와 드라마를 포괄함) 장르는 두 단계에 걸쳐서 발전해 왔다.
첫 번째 단계는 개별 히어로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시리즈의 단계였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배트맨>,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4> 등을 꼽을 수 있다.
핵심은 각각 따로 독립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다른 히어로와의 ‘콜라보레이션’이나 다른 작품과의 ‘타이-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개별 시리즈 내에서 시작되고 종결되었다. 예컨대 스파이더맨이 지키는 세상과 배트맨의 고담시티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각각의 세계나 서사가 거대할지언정, 그 세계관이나 이야기가 하나로 연합되지 않았다.
그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이뤄낸 것이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와 <어벤져스> 시리즈다. MCU의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히어로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상호 간섭하여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룩해낸다. MCU에서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의 캐릭터를 <어벤져스>라는 하나의 거대 서사로 묶어내며, 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 코믹스를 넘나들면서 큰 그림으로 연합한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기도 한다. ⓒDC코믹스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이하 에오쉴)>와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이하 윈터솔져)>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에오쉴>은 MCU 특유의 정보기관 ‘쉴드’ 요원들의 이야기였는데, <어벤져스> 시리즈의 필 콜슨, 닉 퓨리 등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심지어 <윈터솔져> 개봉 당시에는 어땠던가? <에오쉴> 시즌 1이 방영 중인 것을 이용해, <윈터솔져>에서 해체됐던 ‘쉴드’의 속사정을, 이후의 <에오쉴> 에피소드에서 보여 주지 않았던가. 이렇게나 밀착적인 ‘타이-업’을 이용해, MCU는 ‘더 많이 알면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세계를 구축했다.


ⓒ마블


그러나 이런 식의 서사 구성은 이 모든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이후에 나온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을 생각해 보라. 촘촘한 상호연관성을 이용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농담들은 MCU 팬들에게는 깨알같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거대하다 못해 비대해진 서사의 갈래 중 무엇을 어디까지 보여줄지 <어벤져스2>는 명쾌하게 결단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쟤가 저런 애였냐’,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등의 혹평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이젠 한 다리 건너 별개의 이야기를 뻗는다

대도시 주변을 개발하는 방식 중 ‘위성도시’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도시가 과포화되지 않도록, 그 주변 지역에 신도시를 조성해서 대도시의 기능을 분산시키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서울 인근에 있는 일산, 성남, 안양, 수원, 의정부 등의 위성도시는 서울의 인구나 기능의 일부를 분담하고 있다.
독립적으로 키워오던 개별 히어로 스토리를 MCU 등 하나의 거대 서사 속에 합친 지금의 히어로 영화는 과포화 상태의 대도시라 할 수 있다. 개별 히어로물의 서사를 계속 합지다 보니 일반 대중에게 이 거대서사는 이해하기에 너무 벅찼다.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 너무 비대해진 도시에선 민원이 속출했다.
마블은 민원해결을 위해 위성도시 개발 전략을 히어로물 영화에 접목했다. 이제는 커질 대로 커진 서사에 위성도시 같은 작품을 붙여 대중의 흥미를 확대•분산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데드풀>은 마블이 이 질문 끝에 찾은 위성도시 격의 영화로, 쏠쏠한 성공까지 거뒀다.
영화 <데드풀>이 위치한 지점은 다음 두 단계의 지평이다. 우선, <데드풀>은 ‘아는 대로 보이는’ 영화가 맞다. 히어로 영화/코믹스 문화에 익숙한 대중들이 특히 더 잘 즐길 수 있다. 데드풀이라는 인물 자체가 <그린 랜턴>, <엑스맨>, <어벤져스> 등에서 나타나는 기존 히어로 영화의 문법들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농담을 던지기 때문이다.



SNS에 공개된 <데드풀>의 대본 ⓒ20세기폭스코리아

그러면서도 <데드풀>은 정작 그 어떤 <엑스맨> 시리즈의 이야기와도 직접적인 접점은 갖지 않는다. 영화에서 ‘재비어 교수’라는 이름이나 ‘저택’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이상 그건 <엑스맨> 시리즈의 것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데드풀은 능청스럽게 “맥어보이야 스튜어트야?” 농담을 던지면서 논점을 뭉갠다. 조연 히어로로 등장하는 ‘콜로서스’나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 역시, 배경으로서의 <엑스맨> 세계관을 꾸며주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한 것은, <데드풀>이 MCU라는 거대 도시 옆의 위성 신도시 같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히어로 영화 산업이 차곡차곡 쌓아 온 유산과 기반을 최대한 활용하는 한 편, 그 메인스트림(데드풀의 경우 <엑스맨> 시리즈)의 서사와는 거리를 두고 별개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활약하는 것이다.
덕분에 이 영화는 ‘메타-히어로’적 요소를 갖고 놀 수 있었고, <엑스맨> 시리즈를 아주 조금 아는 사람부터 <엑스맨> 마니아까지 모두에게 골 때리는 유머를 선사했다.


그래서 <시빌 워>가 그리는 큰 방향이 흥미롭다

히어로 각각의 세계가 커지고 그 세계들이 하나로 뭉치던 히어로 영화 산업은, 이제 세 번째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나로 거대하게 뭉친 세계와 느슨하게 연결되는 별개의 서사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블과 디즈니는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데어데블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데어데블>이나 <제시카 존스>만 보더라도, MCU(구체적으로는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윈터솔져>와 <에오쉴>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엑스맨> 시리즈의 영웅이지만 그것조차도 농담처럼 언급하는 데드풀, 분명히 <어벤져스> 1과 2 사이의 이야기인데도 그냥 뉴욕의 흔한 사립탐정으로 일하는 제시카 존스. 모두 메인스트림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덧붙여 그 메인스트림의 줄기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식으로 서사를 전개해 온 히어로물이다. 이 큰 흐름은 꽤 예전부터 준비되었고, 진행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능성을 찾으며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시빌워 캡틴아메리카 ⓒ마블


<시빌워>는 MCU에서 거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어쩌면 <어벤져스2>보다 더 큰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이후의 MCU 영화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거대한 세계관의 변혁을 반영하면서도 독립적인 형태의, ‘위성 영화’ 같은 느낌의 영화들이 세네 편 정도 나오게 되지 않을까? 마블 영화들을 다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즐길 만한, 딱 <데드풀> 정도의 재미와 깊이가 있는 그런 히어로 영화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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