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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게임하면 그렇게 복장이 터지십니까?

  • 입력 2016.03.07 10:41
  • 기자명 묵혈(이승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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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대중화 원년?…부모들은 복장이 터질 판 ⓒ 한겨레



자녀들이 게임하면 그렇게 복장이 터지십니까?
SNS 링크를 통해 위 기사를 보고 나서 당신들에게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정적으로는 한국어 9품사 중 조사를 제외한 8품사를 온갖 쌍욕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만, 게임인으로서의 품위와 명예원칙을 지키고자 정중한 표현을 사용하겠다. 치솟는 분노를 참아가며 당신들의 기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다. 당신들의 논지를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이 등장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들의 마케팅이 강화되는 중인데, 이런 기술들이 기존의 사회적 인간끼리의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이 괴로운데, 다행히(?)도 그런 단계로 접어들기에는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



그렇다. 당신들의 기사는 가상현실을 다루고 있다. 게임 이야기는 글 마지막의 버추얼보이 이야기 정도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게임인으로서 당신들의 기사를 게임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게임 이야기로 풀어나갈 것이다. 당신들이 자녀 귀에 꽂힌 이어폰을 보고 한숨을 내쉴 때, 그 컨텐츠의 상당수를 게임이 차지하고 있으니까(혹시 사실과 다르다면 꼭 반박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가족과 권력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상하다고? 천만에. 나는 당신들의 기사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의 기사는 가상현실을 다루면서 오직 기기 자체의 상품성과, 외부인이 바라보는 가상현실 기기 이용자의 기괴함만을 묘사했다. 가상현실 기기 이용자 입장에서 어떤 컨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당신들은 이용자들이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기사에 썼지만, 이용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당신들 기사 6번째 문단은 비문이다. 가상현실 기기를 아이들이 사용할 것으로 가정했다면 아이들이 이용자지 왜 부모가 이용자인가. 차라리 소비자라고 썼으면 말이라도 될 것이다.
게임인들은 사회 주류 언론에서 게임을 소재로 기사가 나왔다고 하면 일단 걱정부터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사를 읽고 나면 치를 떨게 된다. 당신들의 이번 기사 같은 방식으로 게임을 다루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어떤 방식이냐고?




밑도 끝도 없는 비난과 트집잡기다. 일단 기사 마지막에 제품의 본질이 반사회적이라는 내용, 그게 그럴듯한 이유로 꼽혔다는 내용은 제쳐두자. 맞는 말이라서가 아니라 논할 도리가 없어서다.
당신들의 기사는 왜 뒷좌석의 아이들이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지 단 한마디의 설명도, 이해도, 배려도 없었다. 오직 스스로의 방식을 밀어붙이고 싶을 뿐이고, 그 방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띠껍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뭔가 충돌과 갈등이 있다면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하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니었나?
당신들 입장에서는 수없이 쏟아내는 기사 중 하나일 뿐이고, 오늘도 분량을 채워서 밥값은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기사 하나하나가 쌓여서 대한민국 게임계가 무슨 꼴이 났는지 알긴 하는가? 셧다운제 같은 악법은 당신들이 만들어낸 게임포비아층의 지지를 받으면서 통과됐고,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수출 효자산업이 되어가던 게임산업은 씨가 말라가는 중이다(그렇다고 게임회사들이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이건 흉악한 범죄 용의자를 체포했어도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맥락일 뿐이다).
차라리 게임 중독자 치료를 수익모델로 만들려고 애쓰는 각종 정신과, 상담 업자들은 전략이라도 있어서 과몰입 같은 신규 용어도 만들어내고, 연구결과나 분석자료, 논문이라도 가져와서 근거로 들이민다. 당신들 기사에 대체 이런 게 어디 있나. 무조건 학술자료를 갖다 붙이라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있다는 소개만이라도 했어도 내가 이런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참 휴대폰 보급이 활성화될 때 이를 통해 여성, 청소년 인권이 향상될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 수다를 떨어도 집전화를 쓰면 눈치가 보여 빨리 끊어야 했고 교우관계 향상이 어려웠지만, 각자 휴대폰을 갖고 있으면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던 분석. 당신들은 기사를 쓴다면 이 정도의 분석이라도 보여줘야 했다. 분석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넘어서 분석이라는 걸 했어야 하지 않나. 당신들의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징징이다.




뭐에 대한 징징이냐고?

권력 상실에서 오는 불안감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부모자녀 관계를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권력관계로 보고 있다. 이런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천만관객 영화가 수시로 나오는 극장가다.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성장하고, 관객들의 생활수준과 여유가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아서 이런 영화들이 흥행 대박을 치는 것 같은가? 나는 천만관객 영화가 나올 때마다 무섭다. 극소수 영화의 스크린 독점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영화들이 천만관객을 동원하는지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연인끼리의 데이트 코스에서 영화가 정석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공통의 화제를 찾기 위해서다. 오랜시간 잘 준비된 컨텐츠를 함께 즐기고 나면 서로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고 서로의 감정적 거리를 좁힐 수가 있다.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어떤가. 일상에 찌들고, 자녀들도 일찌감치 야근을 훈련 중이라서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다. 틈만 나면 애들은 스마트폰 쳐다보기 바쁘고. 드디어 주말을 맞이했다. 뭘 하지? 캠핑을 가서 원시적 기술이라도 과시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시간도 빡빡하다. 만만한 게 극장이다.
온 가족이 함께 뭔가를 즐긴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흐뭇하게 생각하는 당신들이 외면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청소년층에서 극장가기 짜증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중이라는 점. 휴대폰을 원하는 때에 쓸 수 없기 때문에 영화관람에 피로를 느끼는 청소년들의 볼멘 소리가 나온다.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자기가 직접 선택해서 보러 갔으면 이런 말을 할까?(역설적으로 희망이 보이긴 한다. 극장에서 제멋대로 휴대폰을 꺼내서 극장을 환하게 밝히고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기성세대보다는 휴대폰을 안 꺼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청소년들이 개념차서).
각종 인터넷 서비스와 IPTV로 집 안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도 극장까지 굳이 갈 필요가 없지 않냐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당신들은 굳이 애들 손을 잡아 끌며 극장을 간다. 왜? 자녀의 선택권을 한곳으로 몰아놓고 당신이 원한 컨텐츠에 온전히 몰입하게 강제할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러고 나서 영화만 보고 나면 다행이지, 끝나고 난 뒤에 영화 내용 어땠냐느니로 교장선생님 조회 훈시보다 더 구린 장광설을 푼 적이 정말 없는가? 당신들 덕분에 천만을 노리는 영화들은 그 장광설의 내용으로 적합한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천만 찍었다는 영화들 중에 안 그런 영화가 몇이나 되는지 한번 세어보라. 인류의 운명을 걸고 드넓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가부장의 논리로 소비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자기 이름 딴 거냐고 물을 때 딸 이름이라고 해서 한방 얻어맞던 장면은 기억하나 모르겠다.
그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애들이 맨날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거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한참 애들이 울고 불고 할 나이 때는 뽀로로를 ‘부모들의 구세주’로 떠받들어놓고 그 따위 소리가 나오는가? 당신들은 매체를 탓할 자격이 없다. 반려동물이 애를 먹일 때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전문가가 출동하면 오히려 키우는 사람을 교정해주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지금 당신들도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일단 생각이란 걸 좀 해 봐라. 컨텐츠는 무한한 경쟁의 장이다. 천륜이라고도 말하는 가족, 부모자녀간의 진심 어린 대화가 한낱 도트와 폴리곤 찌끄러기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징징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일단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우선 아닌가? 당신들이 말하는 가족끼리의 대화는 대체 뭔가. 웃음꽃이 만발하고 온 가족이 매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화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CF에 부모자녀간 모습이 나타나면 아빠는 애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고, 엄마는 자녀 걱정을 핑계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모습으로 묘사된 게 대체 몇 년째인지는 기억하는가?
자녀들의 휴대폰 연락처에 당신이 대체 어떤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을지 상상이나 해봤나? 당신 생각에는 ‘사랑하는 우리 아바마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두근거리는 우리 엄마’같은 이름으로 저장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현실을 말해주마. 내가 들은 가장 발랄하면서도 세태를 제대로 풍자해주는 저장명은 딸이 아빠 연락처를 ‘올것이 왔군’으로 저장해 놓은 것이었다. 당신들은 별다를까?




제발 눈치라는 게 있으면 이런 얘기 들었다고 또 자녀 폰 비번 풀어서 뭐라고 저장했는지 훔쳐보거나 자녀한테 물어보지 마라.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줘야 말귀를 알아먹나? 당신들 세대 정도면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 부모님이 간섭 좀 덜했으면 좋겠다,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 하면서 자라지 않았나? 어쩜 그리도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가.
게임은 자녀들, 청소년들의 개인 공간이다. 숨쉬기도 힘든 헬조선에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고, 자기 의지만으로, 원하는 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한 해방구란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저 망할놈의 게임, 스마트폰만 없어지면 자녀와 화목한 대화를 나누면서 하하호호하고 애들 성적도 팍팍 올라가고, 화목한 가정이 되면서, 세상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가? 내가 장담하건대, 지금처럼 게임 규제가 심해지고 게임이 망하면 당신 자녀들이 본드 불고 가스 분다. 그나마 그런 비행을 막아주는 게임에 감사해라.


참고링크: [TIG 카툰] 8BIT 시절

(뭔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닫지 말고 끝까지 읽어라.)




자녀들이 왜 게임을 하는지 생각 좀 해라
기사의 제목과 본문에서 부모가 복장이 터지고 열불이 났다고 썼는데, 만약 명절 차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혹은 가상현실 기기로 인강이라도 보고 들었다면 당신 복장이 터졌을까? 첨단 장비를 이용해 영재교육을 받는 모습에서 찬란한 미래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 아니고? 당신은 기술 자체를 문제삼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인류의 사회성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권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녀를 악의 축으로 내세울 수는 없으니 만만한 기술과 컨텐츠를 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 동대신문


아이들과 모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거 좋다. 대화의 시간이 필요하지. 그런데 대체 왜 그게 명절에 집에 가는 차 안에서인가. 차가 쭉쭉 달려가는 것도 아니고, 힘들고 피곤할 때 가족에게서 위안을 얻으려는 당신의 의도는 알겠다. 그런데 애들 입장에서 생각은 한번 해봤나? 장시간 이동 중인 자동차 안은 답답한 공간이다. 차가 막힌다면 더욱 심각하다. 만약 자동차 뒷좌석만한 방에다 창문 하나만 뚫어주고 3시간만 아동을 감금해봐라. 아동학대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고. 그런 극한상황에, 당신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한창 뛰어 놀 나이의 아이들’을 몰아놓고는 대화를 시도해? 내 장담하건대 당신들은 그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가족끼리 화목한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운전도 안 하는 것들이 찡찡거려서 힘들어죽겠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아빠 우리 언제 도착해’를 한 시간에 10번 넘게 들어봐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이건 내가 해 봐서 안다. 빌어먹을 구마고속도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끼리 대화할 시간이 평소에 부족했다면 왜 부족했는지를 고민하고 시간을 더 만들 생각을 해야지 쓸데없이 게임탓, 가상현실 기기탓을 하지 마라. 당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 세상을 뒤엎어라. 일찍 퇴근하고, 회식을 줄이고, 자녀의 학원을 줄이고, 가족끼리 저녁밥이라도 얼굴 보고 먹으면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란 말이다.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남긴 일화를 생각해봐라. 위층에서 애가 뛰어 놀아서 층간소음이 심하면 과자라도 하나 사 들고 윗집에 가보라고 하지 않았나. 당신들은 자동차 뒷자리의 자녀가 이어폰을 꽂고 어떤 컨텐츠를 이용하는지 아는가? 게임을 한다면 무슨 게임을 하는지 제목은 아는가? 오죽하면 게임인들 사이에는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이라는 게 있다.

'게임 제목 묻기 운동' 페이스북 페이지

게임이 세상을 말아먹네 어쩌네 하는데,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게임이 어떤 게임이냐고 묻는 것이다. 문화산업 강국과 한류를 말하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현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만 해도 최소 8만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는데 여기에 콘솔, PC, 온라인, 모바일게임까지 합치면 그 수를 셀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당신들에게 게임이라는 이름 하나로 싸잡아 매도당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 게임 제목 모를 수도 있지. 답답하면 욕도 할 수 있지.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게임 욕하면서 영재교육으로 바둑이나 장기, 체스를 가르치지는 마라. 역겹다.
이건 게임회사가 반성을 할 일도 아니고, 자녀들이 개과천선할 일도 아니다. 당신들이 배워야 한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이어폰은 왜 꽂는지, 왜 게임에 빠져드는지. 이해를 해야 대응을 할 것이 아닌가.
가장 빠른 길을 제시해 주겠다. 당신들의 자녀들이 하고 있는 게임을 단 한번만이라도 해봐라. 혹여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똑같다면 수줍게 친구추가를 신청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 게임들은 지인 네트워크를 끌어들이려고 엄청나게 애를 쓰다 보니 기존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정교하게 잘 짜놓았다. 그런 걸 이용해서라도 자녀와의 관계를 좀 다져보라고.
물론 자녀들이 호락호락하게 그걸 받아들일지는 모를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걸 부모에게 의존한 채 살아야 하는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가 세상에서 유일한 해방구에까지 침범하러 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차라리 비밀 일기장을 부모한테 공개했으면 공개했지 게임에까지 들어와서 간섭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벽을 넘어서 부모자녀간 거리를 좁히는 것은 당신 몫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신뢰를 얻으면 해낼 수 있겠지만, 게임 속에서까지 잔소리를 하고, ‘너 왜 이렇게 게임 레벨이 높아졌어. 밤에 잠 안자고 대체 몇 시간이나 한 거야’ 같은 소리를 한다면 자녀들은 다른 게임으로 도망치고, 게임을 한다는 사실도 비밀로 숨겨버릴 것이다. 당신 눈에야 게임 중독에서 벗어났으니 구원받은 기분이 들겠지. 자녀가 뭘 숨기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게임을 한 1988년을 여태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구닥다리 흑백 모니터에, 지금 스마트폰 성능의 100분의 1도 채 안 되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로 테트리스를 처음 해봤을 뿐이었지만, 지금도 그 기억을 생생하게 갖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집에 컴퓨터가 처음 생긴 그날, 어머니께서 10스테이지까지 있는 테트리스를 5스테이지까지 한방에 깨시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내 평생에 가장 멋진 게이머는 임요환도, 홍진호도, 이윤열도 아닌 내 어머니다. 당신의 자녀는 게임과 당신을 엮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게임 속 부분 유료화 아이템 살 때 필요한 물주로나 안보면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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