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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결방, 그리고 사전제작의 딜레마

  • 입력 2016.01.07 13:36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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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년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시청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성을 전달했던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1 1일과 2일 결방을 결정했다. tvN 측은 "<응답하라 1988>의 작품 완성도를 높이고자 방송을 한 주 쉬기로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아직 대본이 완성되지 않은 탓에 드라마 촬영과 편집 일정이 빠듯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응답하라 1988>의 촬영 환경은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러하듯) '생방송'을 방불케 할 만큼 급박하게 돌아간 지 오래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애초에 '시트콤'과 유사한 성격을 띤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응답하라 1988>는 극의 개연성이 많이 깨져 있는 상태다.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배려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시청자들이 동룡이(이동휘 분)에 대한 출연 분량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자 느닷없이 '오토바이 사고' 에피소드를 덜컥 안긴 것도 그렇다.
<응답하라 1988>을 보다 보면 작가가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기분에 맞춰 시나리오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특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긴 하지만, 적어도 극의 중심은 덕선과 정환(여기에 택이와의 삼각관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우와 보라의 러브라인에 공을 지나치게 많이 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중년의 로맨스에도 다소 과도할 정도의 분량을 배분하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응답하라 1988>가 사전제작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방송을 한 주 쉬는 결단을 한 것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의 표현이겠지만, 무작정 박수를 보낼 일은 아니다.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측면에서 <응답하라 1988>은 무책임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한다. 물론 그 잘못을 제작진에게 전가할 생각은 없다. 대신 우리는 사전 제작이라는 시스템을 환기해야 한다.



배우로서 소신 있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드라마 사전 제작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왜 드라마는 영화처럼 사전 제작이 힘들까. 과거에 이런 부분이 궁금해서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대답은 미리 찍어놓으면 시청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답을 듣고 1~2초는 이해를 했으나 3초쯤 부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모든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재밌어야 하는데 재밌지 않은 작품도 있다. 그래서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기획과 대본에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투자하고, 작품을 반 정도 이상은 찍고 시작한다면 더욱 퀄리티 있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드'에 대해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나라도 이런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범수-

동명의 웹툰 <라스트>를 드라마로 옮겼던 JTBC <라스트(LAST)>는 반() 사전제작 시스템을 도입했던 드라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대본이 8부까지 나와 있어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쪽대본에 시달리는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확연한 차이였다. 당연히 드라마의 질()도 뛰어났다. 곽흥삼 역을 연기했던 이범수는 기자 간담회에서 '드라마 사전 제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사전 제작이 '지향점(志向點)'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리스크가 크다. 우선, 앞서의 '미리 찍어 놓으면 시청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다'는 말은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국 측이 부담해야 할 확실한 리스크다.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시청자와의 소통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시청자에 휘둘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배우들에게 갑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 사전 제작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가령 전양자 씨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MBC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에 출연했던 전양자 씨가 구원파 사태에 연루되자 제작진은 이후의 전양자 씨의 분량을 없애기 위해 전양자 씨를 죽음으로 처리해야 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MBC '늑대'는 주연 배우인 에릭과 한지민이 촬영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3회만에 종영해야 했다. 이 사례의 경우, 만약 사전제작을 했다면 조기종영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0% 사전 제작 드라마의 실망스러웠던 성적표
1. 2008 SBS <비천무> 시청률 8%
2. 2008 SBS <사랑해> 9.1%
3. 2009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 6.7%
4. 2009 MBC <2009외인구단> 7.8% 조기 조영
5. 2010 MBC <로드넘버원> 6.2%
6. 2011 SBS <파라다이스 목장> 8.9%

수많은 이해관계가 점철되어 있는 방송계에서 당위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100% 사전 제작이 도입됐던 드라마들은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위에서 예로 든 <비천무>, <사랑해>, <친구, 우리들의 전설>, <2009외인구단>, <로드넘버원>, <파라다이스 목장> 등은 시청률 면에서 외면을 받았고,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이러한 실패의 누적은 자연스럽게 사전 제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2014
년의 화제작인 SBS <괜찮아, 사랑이야> OCN <나쁜녀석들>은 사전 제작에 대한 기피 흐름에 제동을 건 대표적인 드라마다. 노희경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던 <괜찮아, 사랑이야> 3회가 방송된 시점에서 대본이 완성됐고, <나쁜녀석들>은 방송을 타기도 전에 대본이 탈고됐을 뿐만 아니라 촬영도 절반 가량 진행된 상태였다. 두 작품은 시청률(각각 12.9%, 5.9%)뿐만 아니라 작품성 까지 인정 받았다.
() 사전 제작 시스템을 도입했던 두 작품이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에 기여한 공은 적지 않다. 이제 사전 제작은 '무모한 도전'이라기보다 '고퀄리티를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80% 사전제작 방식으로 제작된 재난드라마 JTBC <디데이>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뛰어넘는 긴장감과 드라마적 짜임새를 갖춘 <디데이>는 사전 제작이 드라마의 질적 측면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대본대로 찍으면 정확한 금액을 산출해서 촬영 가능하고 주5일 촬영이 가능하다. 또한 장소별로 몰거나 촬영을 하는 등 누수없는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 생방송 상태에선 전 스태프가 대기상태인 데다 어떤 신이 갑자기 나올 지 모르기 때문에 누수적자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일까? 2016년 최고의 기대작인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임당, The herstory>와 송중기와 송혜교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태양의 후예>는 모두 100% 사전 제작됐다.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치즈 인 더 트랩>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럽게 사전제작이 늘어나는 현상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의 이유는 씁쓸하게도 중국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에서는 드라마 방영 6개월 전에 방영 계획을 보고하고, 방영 3개월 전에 드라마를 완성해 심의를 받아야 한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는 이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인터넷 기반의 중국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보급했는데, 이 규제가 인터넷까지 확대되면서 사전 제작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사전 제작'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이 드라마들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사전 제작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한다. 반대로 톱스타를 섭외했다는 자신감이 사전 제작을 가능케 한 측면도 무시할 순 없다. 사전 제작이 만능 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 제작 환경을 바꾸는 좋은 해결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쪽대본' '생방송'이라는 드라마 제작 현실이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전 제작은 그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그 밖에도 일본의 경우처럼 횟수를 과감히 줄인다거나 주1회 방송 등 다양한 포맷을 실험하는 것도 필요하다.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더 긴 시간 동안 보고 싶어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60분짜리(<응답하라 1988>의 경우에는 무려 90분이다) 드라마를 주 2회분 찍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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