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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터널 바로 옆, 청소 노동자의 침실

  • 입력 2015.11.19 10:19
  • 수정 2015.11.19 14:47
  • 기자명 거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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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 찍힌 곳은 부산지하철 2호선 장산역의 승강장 끝부분이다. 터널을 지난 지하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곳으로 거의 터널이나 마찬가지인 지점이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지하철이 진입하는 곳이다 보니 소음은 어마어마하다.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올 때는 폭풍같은 바람이 몰아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바람이 터널에 쌓인 온갖 먼지들을 같이 몰고 온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스크린도어가 자살방지용 시설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승강장 스크린도어의 본디 용도는 터널 내 먼지를 차단하는 것이다. 장산역에는 그 스크린도어조차 없다. 공기가 나쁘다는 지하 승강장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인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 우측 문에서 사람이 나온다. 이 황폐한 공간에 사람이 살고 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이다. 이 공간은 장산역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 겸 침실로, 이들은 여기서 자고 일어나 새벽 열차를 청소한다.


굉음에 온갖 먼지가 날리는 지하철 승강장. 이 곳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애초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는 설계되지 않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곳에다 겨우 패널 몇 장을 막아 간이 벽을 세워 놓고 침실이라고 부르며 노동자들을 살도록 한 것이다.


침실이라고 하지만, 내부도 외부도 결코 침실 같지 않다. 방 안 천장에는 시커먼 먼지가 붙어 있고, 도색이 바랜 벽면은 얼룩과 때로 찌들어 있다. 전동차가 지날 때면 엉성한 벽 틈새로 바람과 함께 먼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이 곳에서 생활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자고 일어나면 목은 칼칼하고 머리가 띵하다"며 고통이 심하다고 하소연한다.


저 공간에서 사람이 나오는 걸 보고, 그 곳이 창고도 청소도구함도 아닌 사람이 쉬는 휴게실 겸 침실이라는 것을 알면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필자는 그저 장산역을 이용하는 시민일 뿐이지만 이유 모를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들은 노예가 아니다. 지하철 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업무를 마친 후 제대로 된 휴식 공간에서 쉴 권리가 있다.



장산역이 더 이상 청소 노동자들의 인권과 휴게권을 무시하지 않기를, 하루 빨리 이들에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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