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민생이라는 이름의 기만

  • 입력 2015.11.10 17:28
  • 수정 2015.11.10 18:26
  • 기자명 정주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야흐로 '민생'열풍이다. 대통령도 총리도 여당도 야당도 모두 민생을 살리겠다 아우성이다. 정치권의 첨예한 대립은 언제나 민생타령으로 끝을 맺는다. 이상한 건 나라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이토록 민생을 갈망함에도 국민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저들이 말하는 '민생'이란 말 안에 담겨 있다.

본디 민생(民生)이란 말 그대로 국민의 삶을 말한다. 고로, 민생을 강조하는 건 정치인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저들이 말하는 '민생'이 우리가 아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민생'이란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감자 냄새로 민생을 돌보는 '민생대통령'

1. 철학의 빈곤을 은폐하는 도구

유독 '민생'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철학의 빈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정치철학이 빈곤한 정치인은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는 심오한 쟁점·정책에 대한 접근능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그들은 누구나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이슈에 매달리게 된다. 마치 신입사원이 책상정리에 매달리는 것이나 갓 전입온 신병이 내무반 신발정리에 집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슷한 말로 ‘실용주의’라는 것도 있다. 이런 증상은 기업인 출신이나 의사, 연예인, 군인 등 전문직 출신 정치인에게서 흔히 나타나며, 2천년대 이후 대표적인 예로는 이명박, 문국현, 안철수 등이 있다. 이들은 정치를 민생과 동떨어진 영역으로 인식하여 쉽게 정치혐오에 빠지며, 자신의 무지를 '청정'이라 착각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깨끗한 대안'이라고 믿는 이유다.



2. 정치적 출구전략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대표들과 만난 3자회담 자리에서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을 돌보자"고 제안했다. 어제는 총리가 나타나 그것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담화를 읽었다. 대통령과 총리가 '정쟁'이라 표현한 것은 물론 국정원사건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다. 청와대와 함께 국정원사건의 수세에 몰려있는 새누리당도 틈만 나면 야당에게 "이제는 민생을 돌보자"고 제안한다. 궁지에 몰린 정치세력에게 더없이 좋은 환기제다. '민생'을 오용하는 것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9월 말부터 '민주, 민생 살리기 투어'라는 괴상한 이름의 공식행사를 갖고 있다. "민주와 민생 모두 중요하다"는 말은 김한길 대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 둘이 같다는 뜻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두 가지를 모두 잡겠다는 뜻이다. 장외투쟁의 성과없음을 '민생'이라는 환기제로 가리려 한다는 점에서도 새누리당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정치와 민생이 다르지 않다는 말을, 적어도 그것들이 매우 밀접하다는 당연한 말을 정치권에서 들을 수 없다.



3. 비겁한 중재자의 수단

김한길, 안철수, 손학규, 이재오 '민생'이란 말을 매우 즐겨쓰는 현역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 내에서 상대적 중도-중립자의 노선을 표방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중도라는 노선은 별다른 노력없이도 쉽게 '중재자'의 지위를 누린다. 중립자의 권위를 즐기는 이들 정치인들은 정치권의 치열한 대척점에서 '민생'을 중재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존재감을 드러낸다. 절대로 쟁점 깊숙한 곳까지 발을 담그지 않는 그들은 양측이 적당히 치고 받아 내상을 입었을때 "이제는 민생을 챙기자"며 밉상을 떤다. 이 전략은 종종 위 1번과 결합하여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한국정치사에서 '민생정치'로 가장 큰 이득을 누렸던 정치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MB는 2007년 대선기간 내내 "나는 여의도 정치를 모른다"며 노골적인 비정치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철학없음을 '민생'이란 말로 포장했고, 극우정당의 후보임에도 '민생'이란 말로 자신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희석하면서 중도표심을 움직였다. 여기에 더해진 '경제살리기'라는 지극히 '민생지향적'인 구호는 그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는데 큰 몫을 했다. 민생이란 말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상당부분 MB에게서 비롯됐던 것 같다.


정치와 민생, 정말 제로섬 게임인가?

종합해보면 정치권에서 흔히 사용되는 '민생'이란 말은 '비정치'의 다른 말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왜곡된 '민생'을 듣는 순간 복잡한 정치논리 밖에 있는(그렇게 느껴지는) 팍팍한 삶을 떠올린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정치와 민생이 유리되는 것이다. 정치권의 '민생' 오용은 국민들도 그것들의 구분지음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민생이 파탄났는데 정치권은 싸움만 한다'는 한탄은 저자거리의 흔한 넋두리다. 이런 인식은 무차별적인 정치혐오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치발전의 큰 장애물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런 태도가 민주주의를 민생의 대척점에 세운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하는데 민주주의는 정말 죽어서 문제인가, 아니면 과잉이라서 문제인가. 지금 정말로 살려내야 할 것은 거품 낀 민주주의인가, 주저앉는 경제와 민생인가"

일베에서 퍼온 글이 아니다. 놀랍게도 한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동아일보에 실린 어제자 사설의 일부이다. 저 무시무시한 주장의 전제는 이렇다.

1)정치와 민생은 반비례한다

2)정치인들이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항상 정치와 민생 중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와 분리된 민생'이라는 신화를 뒷바침하는 논리다. 위 사설은 이런 조악한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정치와 민생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순간 '민생'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정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유보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과잉'같은 파시스트의 언어가 통용되는 근거다. 국민들의 삶이 힘들어질수록 이 광기어린 주장은 더욱 힘을 얻는다.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을 챙기자'는 대통령이나 '민주와 민생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야당의 다짐이나 저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민생과 정치는 결코 갈등하지 않는다. 정치와 분리된 민생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정치가 민생의 하위개념도 아니다. 정치가들은 민주주의를 망쳐놓고 민생을 살리자고 할게 아니라, 민생과 민주를 모두 잡겠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그것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정치를 통해 민생을 바로잡겠다 말해야 한다. 민생을 '민주주의의 반대'로 해석하는 정치인이야말로 민생의 적이며,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대중은 민생이란 이름의 기만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치인들의 '민생장사'를 경계해야 할 이유다.

- 2013년 10월 필자의 블로그에 작성된 글입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