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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쓴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 입력 2015.10.20 14:05
  • 수정 2015.10.20 14:15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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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자녀를 둔 엄마들은 자녀의 불만이 가득 섞인 문자메시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말, 15세의 아들을 둔 로니 딘-버렌은 아들로부터 술이나 데이트, 영화 볼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문자를 받았습니다. 역사에 관한 내용이었죠.
텍사스 주의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녀의 아들 코비가, 세계지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찍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민의 패턴”이라는 챕터 내 미국 지도 위에 “1500년대~1800년대 사이 대서양 노예 무역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일꾼들(workers)이 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부로 건너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써있는 페이지였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딘-버렌 씨는 그 문자를 받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건 승자의 입장에서 원하는대로 적은 수정주의 역사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를 “일꾼”이라 적고 이 문제를 “이민”이라는 주제 하에 다루어, 마치 이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건너왔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교과서에 문제의식을 느낀 딘-버렌 씨는 페이스북에 이 내용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포스팅은 곧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곧 교과서를 출간한 맥그루-힐 에듀케이션(McGraw-Hill Education) 측은 페이스북에 성명을 올렸습니다. “해당 문구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아프리카인들이 강제로 이주해왔고 노예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는 역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판사는 다음 개정판에서 해당 문구를 수정하고, 디지털 버전 교과서에서는 즉시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교과서 출판사 측의 발빠른 대처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 상에서 분노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딘-버렌 씨 역시 큰 출판사가 즉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단 디지털 버전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고, 아들이 쓰는 교과서는 저작권 날짜가 2016년으로 찍힌 최신판이기 때문에 다음 개정판이 나오기까지는 10년이나 걸릴 것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출판사가 보조 자료를 찍어내거나, 기존 교과서를 리콜하는 등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좌편향인 사람이나 우편향인 사람이나 노예제의 진실이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맥그루-힐 에듀케이션이 교과서 문제로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 텍사스 주 교육 위원회가 사회 과목 교과 과정을 새로 짰을 때도 역사 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맥그루-힐의 교과서는 당시에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교육 과정 개정안이 건국 과정에서 토머스 제퍼슨의 역할을 축소하고, 정교 분리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냉전 시기에 미국 정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작년에도 텍사스 주의 교육 과정 가이드라인을 검토한 학자들은 역사 교육 부분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무슬림식 복장이 여권을 침해한다고 단정적으로 기술하고, 인종 차별 문제를 축소해 다루며, 노예제를 남북전쟁 발발의 부수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문제가 되었던 교과서들은 대부분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Southern Methodist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컨트리맨은 NPR과의 인터뷰에서, 교과서 속 인종과 노예 문제에 관한 서술을 대충 승인해버린 이번 처사는 학생들에게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올해의 텍사스 교과서 몇 권을 본 뒤, "이건 물리학을 가르치면서 아인슈타인을 빼 버리고 뉴턴만 가르치고 끝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맥그루-힐의 미대륙 노예 무역에 관한 서술이 적어도 한 학생에게는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 것 같습니다. 출판사의 답을 받은 후, 딘-버렌과 그녀의 아들 코비가 쇼파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옆에 있는 아들 코비가 건 전화였지요.

"왜 전화를 거는 거니?" 딘-버렌이 묻자, 코비는 "어서 전화 받아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코비는 자신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즈음 엄마가 부탁했던 일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엄마,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언제든지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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