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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먹는 랍스터? ‘서양식’이면 양잿물도 드시겠습니까?

  • 입력 2015.10.19 15:04
  • 수정 2015.10.19 18:30
  • 기자명 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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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들과 이태원서 점심을 먹으려다 ORENO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아들이 파스타를 먹겠다고 해서 둘러보다가 이 집 입구에 걸린 메뉴를 보니 가격이 싸더군요. 스테이크와 랍스터가 2만원 미만이었고, 사람도 많아 보여서 들어갔죠. 인테리어도 근사한, 서구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최악의 식사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꽤 알려진 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 특징은 서서 먹는 식당이라는 겁니다. 앉는 식탁이 있긴 있는데 이 자리는 예약도 해야 하지만 자릿세 3천원을 받습니다. 그것도 두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죠. 어쨌든 서서 먹는 테이블만 가능하다고 해서, 아들의 동의를 구해 들어가 '섰습니다.'
곧 있으니 웨이트리스가 와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드실 음료를 고르라고 합니다. 말뜻이 좀 묘해서 "네?" 하니까 설명을 하는데, 음료를 무조건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평소 시키지도 않는 음료수를(주스와 사이다)를 주문했습니다. 내 상식을 건드리는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파스타와 피자를 주문하면서 양이 좀 많을 것 같아 피자 남긴 것이 포장되냐고 물으니 포장은 또 안 된답니다.
서서 식사를 기다리는데 점점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을 보니 가격이 싸서인지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꽤 먹는 거 같았습니다. 식사도 한참 있다가 나왔는데 (그 사이 서서 기다립니다.) 맛은··· 맛이야말로 최악입니다. 식재료로 맛을 낸다기보다는 향신료, 특히 소금으로 맛을 내는 듯 짰습니다.
나오면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전혀 저렴하지 않습니다. 이 식당의 장사비법엔 숨은 계략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손님이 무조건 음료수(탄산음료, 커피 6천원부터)를 주문해야 합니다. 결국 이 가게는 음료수 장사 하는 곳이었습니다. 계산하면서 종업원에게 그랬습니다. "이집 음료수 장사하는 데네요." 계산원은 말없이 계산만 하더군요. 종합적으로··· 간단히 말해 시끄러운 선술집에서 서서 랍스터 제값 주고 먹는 거라 보시면 됩니다.


‘빨리 먹고 꺼져!’ 저렴을 가장한 상술

이제 fast food업계 뿐 아니라 dining업계에도 맥도날드화(McDonaldizaton)의 바람이 부나 봅니다.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서비스개념의 변화를 뜻하는 게 맥도날드화인데요, 실상 그 핵심은 '먹었으면 상 치우고 꺼져!'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식당은 고객이 상까지 치우도록 하지는 않지만 다리 아프기 전에 빨리 빨리 먹고 나가라는 거죠.


이 식당의 문제는 고객을 기만하는 데 있습니다. 이곳처럼 고객에게 음식을 서서 먹이면서 테이블 회전률을 높이려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회전률을 높이면 가격이 저렴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식당은 저렴해지는 가격을 음료수 강매로 충당하니 결국 전부 고객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블로그 몇 개 보니 '저렴한 식당'으로만 이야기하던데 사이다 6천원, 주스 8천원입니다. 네 명이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조용하고 좋은 식당 가서 편하게 드시는 게 훨씬 낫죠. 또 남긴 음식을 포장해주지 않는 것은 식사량이 적은 고객들을 배려하지 않는 불친절입니다. 패스트푸드점도 포장은 해줍니다.


식사 시간은 대화와 소통의 시간입니다

원래 좋은 사람과의 식사는 소통이고 사교입니다. 대화가 음식만큼 중요하죠. 물론 바쁜 회사원들은 양복 입고 걸으며 핫도그나 샌드위치를 먹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동하면서 빵을 먹는 경우가 흔하죠. 그렇지만 그런 미국에서조차 함께 하는 식사를 서서 하지는 않습니다. 벤치나 잔디밭이라도 찾아 앉죠. 어떤 경우엔 식사가 오히려 비즈니스나 사교, 연애를 위한 보조적 기능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서서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기차역 매점의 우동도 있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순대와 오뎅, 토스트를 팔기도 하죠. 그렇다면 서서 먹는 랍스터와 스테이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건 21세기 먹거리산업이 만들어낸 신종 패스트푸드입니다. 저도 경험해보니 함께 음식을 즐기며 먹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더군요. 동시에 이것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유행입니다. 음식의 맛, 그리고 고객의 대화 등의 정서적 공유를 도외시하고 하나의 트렌드세터가 되려는 상술의 발현이지요. 일본에서 들여온 프랜차이즈라는 사실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오래 있지도 못하게 시간제한을 두는 식당에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만원대 랍스터와 스테이크를 먹으려 하는 그 동력은 무엇일까요. 혹시 랍스터를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신의 품격 있는 취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우리나라는 배고팠던 과거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지 뷔페문화가 원산지인 서양보다 더 활발합니다. 꽤 비싸죠.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중요한 모임을 위한 식사는 절대 뷔페에서 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번잡스러울 뿐 아니라 대화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죠. (부페식당은 저렴한 식당이기도 합니다.) 좋은 식당은 좋은 서빙이 있는 곳에서 편안하게 식사하며 대화하는 뎁니다.
이 식당이 재미있는 건 좁고 번잡한 홀에서 손님 서서 먹이고 테이블 회전률 높이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도 와인을 판다는 겁니다. 다른 주류와는 다르게 와인은 혼자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 아닙니다. 대개 와인은 마시는 이들의 대화와 소통을 돕기 위해 천천히 마시는 술입니다. 이 식당에서 와인을 파는 것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와인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죠. 미국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황당해할 겁니다.
캐나다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는 제 친구는 이 식당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샘플 음식 먹는 거지. 대형마트에서 서서 그렇게 먹잖아.” 그렇죠? 초록색 이쑤시개에 꽂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요리사는 뷔페음식을 해달라는 제안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답니다. 랍스터, 스테이크를 팔면서 돈을 내고 먹는 고객에게 서서 먹으라는 것은 고객에 대한 모욕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그런 거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음료수를 강매해서 그 금액을 벌충하는 식당이라면 음식이 아니라, 그 식당이 저렴한 것이지요. 음식은 요즘 말로 영혼 없는 음식이고요.

나중에 검색해보니, 이 식당이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이 식당은 어느 재벌 계열사(한화 호텔앤드리조트)가 일본에서 수입해 들여온 겁니다. 재벌이 하는 가장 못난 짓 중 하나가 바로 외국 브랜드/프랜차이즈를 들여오는 겁니다. 그 엄청난 자본력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게 아니라 외국에 다니면서 이미 잘 되고 있는 비즈니스를 골라 들여오는 것 말입니다.
요즘은 재벌 3, 4세들이 많아지면서 모두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어려워지니까 승계구도에서 밀려난 3, 4세들의 호구지책으로 이런 브랜드를 들여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대부분이 사치품이거나, 자영업자들이 생존하기 위한 영역을 침해하는 업종이었기 때문에 늘 말이 많았습니다. 재벌이 재벌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골목길로 들어와 서민, 퇴직자, 자영업자들과 싸우는 셈입니다.
특히 한화의 ORENO 수입 과정은 유독 못됐습니다. 몇 년 전 재벌의 먹거리 사업 진출에 대한 여론이 악회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잠깐 눈치보며 먹거리사업 진출을 포기했다가, 삼사년 지난 뒤 슬쩍 다시 들여온 겁니다. 먹을 때 뿐 아니라 먹고 나서도 불쾌한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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