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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입을 다무소서

  • 입력 2015.09.25 09:53
  • 수정 2015.09.25 09:55
  • 기자명 백스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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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도 모르는 내 아비와의 기억은 내가 중학생 때까지였다. 내가 열 살 때 우리 집은 네 평 남짓 단칸방 월셋집에서 살았고 그때 아비의 수입은 150이었다. 노란 봉투에 손 글씨로 적힌 150만원이라는 글자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아비는 내가 중학교 때 엄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아비는 도박에 빠져 살았다. 벌어오는 돈 이상을 도박에 탕진했다. 집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우리 집은 가뜩이나 적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낭비 때문에 가난에 허덕여 살았다. 아비가 떠나고 나는 의료보험이 아닌 의료보호 대상자였다. 한 달에 만원이 채 되지 않은 의료보험료를 냈다. 그전보다 약값도 더 싸졌다. 나는 당시에는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던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정부는 우리 집에 한 달에 30만원을 보태줬다. 부족했지만 요긴했던 이 돈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끊겼다. 내가 '가장'의 요건을 갖췄다는 이유였다.


학창시절
, 공부를 못하진 않았다. 1등을 도맡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위권 성적은 받을 수 있었다. 학원을 제대로 가지 못했다는 변명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불만을 가져봐야 내게 이득 되는 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불만 갖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나는 아비보다는 잘 살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비처럼 도박에 손 댄 적도 없었고 평균 이상으로 공부를 잘 했으며 죽을 만큼 열심히 산 것도 아니지만 딱히 불성실하지도 않았다. 일 처리도 잘 하는 편이었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나는 내가 월등히 뛰어나다고 자만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평균보다는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먹고 사는 걱정을 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아비가 살아온 세상, 내가 어렸을 때 본 그 세상을 기준으로는 그랬다.
내 아비가 나를 낳았을 무렵의 나이가 된 나는 가정을 꾸리기는커녕 취업조차 되지 않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숱하게 했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해서 한 없이 낮춰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그때 내가 받은 돈은 100만원. 나는 아비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내 아비가 20년 전 받았던 월급봉투보다 얇았다.
내 아비가 지금 내 나이보다 조금 더 많았을 때 우리 집은 1600만원을 내고 방이 세 칸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그 때의 아비만큼 벌고 있는 나는 서울에서 제일 싼 동네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근하며 월세 방에 살고 있다. 내가 주거에 갖는 미련은 내 집 마련도, 전셋집 마련도 아닌 그냥 조금 더 넓고 깨끗한 두 칸짜리 방을 갖는 것이다.


조선일보 칼럼을 보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 그는 우리가 열심히 살지 않고 불만만 갖는다며 조롱했다. 나는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배웠다. 과외 몇 달 하면 어렵지 않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그 때를, 대학만 졸업하면 스펙이야 어떻든 어느 대기업이고 취업할 수 있었던 그 때를, 하물며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입에 풀칠할 걱정은 없었던 그 때를.
가난했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갖고 있었던. 그리고 조금 열심히 하면 뭔가를 손에 잡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그 황금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다. 너희는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그게 너희들의 죄라고. 하지만 우리가 늙은 건 죄가 아니라고.
당신이 황금 같은 시대를 산 것이 죄가 아니듯이 우리도 죄를 지어서 지금 시대를 사는 건 아니다. 우린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낙오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산다. 물론 그래도 낙오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 OECD국가중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다.아비처럼 살지 않기 위해 아비보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나는 그 때의 아비와 비슷한 월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쌀값은 그 때보다 몇 배나 올랐고 머리 누일 방 한 칸 구하기는 그보다도 몇 배는 더 힘들다.



나와 내친구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를 그깟 임금피크제로 양보 한 번 한답시고 온갖 젠체를 늘어놓는 가진 어른들의 볼멘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줘야 하는가
? 왜 우리가 당신의 알량한 자부심을 채우기 위한 조롱을 들어야 하는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친구들의 시체를 치우고 싶지 않다. 그게 나의 소박한 희망이고 꿈이다. 그러니까 제발 그 입이라도 다물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양보하라고 안 할 테니 그까짓 되도 않는 양보 같은 거 하지 말고 뭔가 아는 척 당신들의 삶을 자랑처럼 늘어놓지도 말고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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