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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지운 단어, 강제 징용

  • 입력 2015.09.14 15:33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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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外面)하기는 쉽지만, 응시(凝視)하는 것은 어렵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강해져야 한다. 단단해져야 한다. 숨기고 감추는 것은 약자(弱者)의 비루한 속성이다. 지난 12일 방영된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마지막 편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나약하고 한심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역사 왜곡의 현실은 씁쓸함을 넘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2015 6월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시마섬. 일본 군함과 닮아서 군함도(군칸지마)로 불린다. 1940년대 탄광 도시로 호황을 누린 곳. 그곳에 존재했던 정반대의 삶. 화려한 호화 아파트의 일본인들,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던 강제 노역장의 한국인들. 운동장에는 해맑은 일본 소년들, 같은 시각 어두컴컴한 지하 1000m 탄광에서는 최고 45도의 지열 속에서 굶주림, 고통 속의 한국 소년들. 바다 한가운데 제방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망망대해를 탈출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하시마의 또 다른 이름 지옥섬, 감옥섬. 그 곳의 숨겨진 진실을 이제 만나러 갑니다.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시마 섬과 그 곳에 강제 징용(forced to work)됐던 한국인들의 유해를 묻혀 있는 다카시마섬을 찾았다. 하시마 섬에는 '지옥도'라는 별칭이 붙은 하시마(端島) 탄광을 비롯해 한국인이 강제 징용됐던 시설(나가사키의 미쯔비시 제3 드라이독 · 대형크레인 · 목형장, 타카시마 탄광, 이미케의 미이케 탄광 및 미이케 항, 야하타의 신일본제철) 7개 더 있다. 무려 5 7 900명의 한국인이 강제동원 됐고, 그 가운데 94명이 강제동원 중에 사망했다.


ⓒMBC


일본 측은 이러한 사실을 쏙 빼버린 채 하시마 섬을 탄광산업이 활발했던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만 홍보하고 있다
. 물론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의 반발이 있자, 일본은 1940년대 한국인을 포함한 강제 징용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지난 7 5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이 신청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에 대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당시 일본 정부대표단은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노역을 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포함시킬 준비가 돼 있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곧바로 말 바꾸기에 들어갔다. 기시마 후미오 일본 외무상((岸田文雄))은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대사의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부 시설에서 조선인이 강제 노역했다는 발언에 대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 결과는
<무한도전>에서 봤던 것과 같다. 하시마 섬의 현지 가이드는 연신 밝은 목소리로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한국인 강제 징용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없었다. 홍보 책자를 비롯한 그 어디에도 강제 징용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견학 코스는 철저하게 근대화된 모습 위주로 짜여져 있었고, 그마저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45℃의 고온에서 속옷 한 장만 걸린 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작업 할당량을 채워야 했던 강제 징용자들의 고통은 온데간데 없고, 깔끔한 제복을 차려 입고 50만 엔의 봉급을 받으며 풍족한 생활을 했던 일본인 광부들의 모습만 남겨져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과는 달리 강제 징용됐던 한국인들은 콩기름 찌꺼기로 끼니를 채워야만 했다.
그 자리를 함께 했던 서경덕 교수는 "현재 일본이 독일과의 역사 인식이 비교가 많이 되고 있다"면서 강제 징용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를 공개하고 있는 독일의 출페라인 탄광의 사례를 소개했다.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져 있다. 독일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과 달리 일본은 이를 외면한 채 오히려 군국주의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자 하는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7일 일본의 <산케이(産經) 신문>은 현행 중학교 교과서 중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마나비샤() 교과서를 향해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았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교과서인가"라며 비난했다.
이러한 맥락은 기본적으로 아베와 자민당의 역사 인식과 맞닿아 있다. 아베는 2006년에 펴낸 자신의 책 『아름다운 나라』에서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국가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답한 학생이 일본에선 50.6%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중략) 이는 우리의 의무교육에 대담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자민당 교육재생실행본부는 "교육기본법이 개정되었지만 (중략) 여전히 많은 교과서가 자학사관에 기초해 있는 등 문제가 되는 기술이 존재한다"며 일본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분쟁 지역으로 되어 있는 독도 센카쿠열도 등 영토 문제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지만, 전범국 일본이 저질렀던 수많은 과오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학이므로 모른 척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자학 사관'이라는 용어가 낯설지가 않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은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역사 학계의 대부분이 좌파로 구성되어 있고, 현행 검정 교과서는 좌편향에 자학사관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끝내 '국정 교과서'를 강행할 움직임이다. 이들이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은 이승만과 유신에 대한 재평가(미화)이다. 국부로서의 이승만과 경제 발전을 이룩한 유신이 그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우경화를 지적한다. , 그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비난한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치졸함을 성토한다.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국가(혹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고 다그친다. 하지만 그 잣대를 우리에게 들이댄다면 어떨까? '자학 사관은 그만 하자'는 목소리는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생각들을 '자학 사관'이라고 비난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과연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일까? 그것들이 선조의 몫이라 할지라도,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혹은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이를 떠나 한 개인의 자격이라도 좋다)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긍심'을 갖게 되는 길은 아닐까?
일본의 역사 왜곡, 대한민국 정부와 새누리당의 국정교과서 강행, 우경화 논란.. 한일 양국에서 공히 벌어지고 있는 '역사'와 관련한 몇 가지 핵심적인 움직임들은 결코 '별개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진실에 대한 외면, 역사에 대한 왜곡,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국가와 민족. 그 과오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가 고스란히 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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