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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MB식 비용절감의 폐해

  • 입력 2015.09.01 11:35
  • 수정 2015.09.03 14:48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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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정비업체 직원 A씨(28)는 강남역에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도중 역으로 진입하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습니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원인이 '2인 1조 작업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2인 1조 작업 원칙이 포함된 '스크린도어 정비 매뉴얼'은 2013년 2호선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한 후, 서울메트로가 만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매뉴얼이 현실적으로 작업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다음은 서울메트로에서 배포한 안전사고 방지 매뉴얼 중 일부입니다.

- 2인 1조 점검
- 지하철 운행 시간 중 스크린도어 내에 진입 금지
- 스크린도어 내 진입 시 관제센터에사전 보고

매뉴얼은 지하철 운행 시간 외에 승강장에서만 작업하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 토요일 오후 붐비는 강남역에서 지하철 운행을 멈추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 작업자들이 매뉴얼을 지킬 수 없었는지, 원인을 조사해봤습니다.


하루 8번씩 고장나는 스크린도어...원인은 MB식 비용절감에
매뉴얼을 지킬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자주 고장나는 스크린도어 시스템에 있습니다. 2013년 서울 지하철 1~4호선의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는 2,409건이었습니다.



2014년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는 2,852건으로 2013년보다 400여 건이 더 발생했습니다. 2015년 4월까지 스크린도어 고장 발생 건수는 985건이었습니다. 서울지하철에서만 매일 8.2건의 스크린도어 고장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오선근 서울지하철노조 안전위원장: 그렇죠. 러시아워 시간에 스크린도어 조치하고 뭐 하는 거, 30초, 1분 늦게 되면 뒤에 차가 계속 밀려가지고. 승강장에, 사당역이라든지, 강남이나 이런 시내 중심구간에는 뭐 1분-2분 사이에 승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립니다. 원활하게 소통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이동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고요.

2014년 9월 26일, <한수진의 SBS전망대>

1~4호선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지하철 승강장에 설치된 스크린도어에서, 매일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인 1조',' 전동차 진입시 선로 진입 금지'라는 매뉴얼은 거의 지켜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스크린도어는 왜 이렇게 자주 고장날까요? 따지고 보면 모두 돈 때문입니다. 지난 MB정권 시절, 정부는 공공기관의 적자 경영을 막겠다며 최저입찰제를 적극 추진했습니다. 최저입찰제는 말 그대로 최저의 금액을 낸 업체가 공사를 수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업체들이 낙찰을 위해 억지로 줄인 비용은 고스란히 품질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서울지하철의 스크린도어 계약 업체별 스크린도어 장애 현황을 보면, A업체가 장애건수 2,918건으로 전체의 5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A업체는 소규모 회사로, 최저입찰제로 선정된 곳 중 하나입니다. 소규모 업체가 적은 비용으로 스크린도어 시공을 낙찰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도어에 대한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차운행시스템의 경우 안전시스템으로 분류돼 SIL(Safety Integrity Level)인증을 가진 기업만 참여합니다. 그러나 스크린도어는 건축기계구조물로 SIL 인증이 필요 없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스크린도어도 SIL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별다른 기준이 없습니다. 이번 사고처럼, 고장이 나면 사망 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는 중요한 구조물이지만 태생부터 안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용역 외주화, 과연 비용이 절감될까?
최저입찰제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정비, 수리 등을 대부분 외주 용역으로 돌리는 구조입니다. 외주업체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수리를 마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2인 1조 매뉴얼'은 사실상 지키기 힘듭니다.

◇ 정관용:그리고 사고가 만약 나더라도 그건 책임은 누가 지는 거예요? 외주업체가 지는 거예요? 아니면 지하철공사나 코레일 같은 그런 원청업체가 져야 하는 거예요?
◆ 박흥수(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연구원) :이게 외주화의 가장 큰 문제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건데요. 저번에도 서울메트로 측에서는 하청업체가 전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그러고요. 또 하청업체는 하청업체대로 노동자가 혼자 들어갔다. 결국은 사망한 노동자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데요. 결국은 외주업체에 대해서 원청업체의 관리감독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런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고 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한국 지하철은 예산 절감을 위해 외주 용역을 채택한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등을 계산해보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공공기관의 예산 낭비를 막는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시민의 안전에 꼭 필요한 부분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올라온 지하철노조원들의 댓글.

2013년 성수역에서도 강남역 스크린도어(PSD:PLATFORM SCREEN DOOR) 사망사고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사고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나온 것이 매뉴얼이었습니다.
언론은 외주업체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고 사고 원인을 돌립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합니다. 언제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요소가 숨겨져 있습니다. 지하철노조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수리와 정비를 외주로 돌리지 말고 직원을 채용해 지속적인 훈련과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강남역 사망사고가 벌어지기 불과 몇 달 전에도, 스크린도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돈이 든다는 이유로 그들의 주장은 다시 무시되었습니다.


언제나, 돈 앞에서는 사람의 목숨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세상입니다. 돈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이 당연한 명제를 기억시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더 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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