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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실세는 역시 진돗개였다

  • 입력 2015.08.31 14:25
  • 수정 2015.09.03 14:49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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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한 장 올렸습니다. 청와대에서 키우고 있는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가 새끼 5마리를 낳았다며 이름을 지어달라는 청원이었습니다.
어떤 댓글이 가장 인기가 많았을까요?
사람들의 가장 많은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은 '진돗개1·진돗개2·진돗개3· 데프콘1·워치콘2'였습니다.


"진돗개1, 진돗개2, 진돗개 3는 진돗개 이름으로 만든 대한민국 경보 조치를 의미한다. 평상시는 진돗개3(셋) 북한 간첩 침투나 무장 탈영병 등이 발생하면 진돗개 2(둘)이 발령된다. 진돗개 1(하나)는 최고 비상경계 태세가 이루어진다. 데프콘 1은 전쟁 직전의 상태를 뜻하며 (데프콘 3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한미연합사령부로 이양) 워치콘은 적의 도발이 명백할 때 발령된다."


강아지 이름을 무엇으로 정하든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언론들이 이번 '개이름 소동'을 보도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에 나섰다"는 논조의 기사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취임 전 72건, 취임 후 32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는 페이스북페이지는 2012년 12월 20일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2005년 사진이 있지만, 오래전 딱 하나 있었던 사진이라 제외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대선 다음 날인 12월 20일 대선에서 승리한 커버 사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총 104건의 글이 올라왔는데 (커버사진 업데이트 포함, 2005년 사진 제외) 그중 72건이 대선 다음 날부터 취임식 전까지 올라온 글입니다. 취임식 이후 8월 30일까지 올린 글은 32건입니다. 취임 이전 2개월간 72건의 글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72건의 글도 대부분 인수위 비서실에서 작성) 취임 이후 30개월 동안 올린 32건은 너무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은 모두 32건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편지나 선물이야기가 7건으로 제일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새해 인사나 설날, 추석 등 명절 인사가 6건이었습니다. 커버사진 5건과 취임식 행사 5건을 제외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22건에 불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게시글로만 본다면, 몇몇 언론의 주장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으로 국민과 소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기-승-전-창조경제

박근혜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32건의 게시글을 모두 조사했더니 대통령 페이스북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나 '창조경제'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6월 20일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20대 청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박 대통령은 청년의 편지에 '지금 새 정부가 창조경제를 모토로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14년 1월 27일 슈밥 다보스 포럼 회장에게 받은 선물 얘기를 하면서도 창조경제를 말했습니다.
창조경제에 맞는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창조경제를 말했는지, 하다 보니 창조경제가 됐는지, 창조경제를 강조하려고 일부러 창조경제 관련 선물을 골랐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한가지,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서조차 창조경제를 말하려고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나의 휴가를 반드시 국민에게 알려야 해!'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에서 꼭 빼놓지 않는 주제가 휴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만 가면 어김없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였던 2013년 7월 30일 저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진을 올렸고, 2014년과 2015년에는 휴가를 청와대에서 보냈지만 그때도 페이스북에 휴가 관련 글을 올렸습니다.

페이스북을 위한 설정샷?

'패션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은 늘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대통령의 페이스북 사진에 등장한 패션은 어땠을까요?


대개 정치인들은 동영상이나 카드로 명절인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설날과 추석에는 마치 연예인들이 찍는 화보 형태의 사진을 올리면서 명절 인사를 합니다.
설날 인사를 하면서 한복 입은 사진이 올라왔는데 인사를 하는 것인지 패션쇼를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추석에도 마찬가지로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진이 올라옵니다. 마치 영화 포스터와 같은 분위기의 사진과 함께 추석 인사를 합니다. 페이스북을 위해 화보 촬영을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내 얼굴이 나온 선물은 꼭 페이스북에 올려야 해!'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올라온 글은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편지나 선물 이야기입니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로부터 받은 페이스북 티셔츠부터, 초등학생에게 받은 편지까지 다양합니다.


페이스북에는 박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간 선물 사진이 유독 많습니다. 벤처기업인이 박근혜 대통령 사진으로 만든 스탠드부터 6개월 동안 수놓은 십자수, 그림 등 대부분 얼굴이 나온 선물입니다.


주어도 실체도 없는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친구끼리 함께 이야기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명절날, 휴가날, 선물 받았을 때만 글을 올립니다. 정작 국가의 큰일이나 아픔이 있을 때는 침묵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페이스북에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몇 주가 지난 4월 29일,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에는 검정 배경에 국화 한 송이와 글이 있는 커버사진만 변경됐습니다.
커버사진에는 '가족, 친지, 친구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겪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립니다.'라는 문장만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도 인터뷰도 잘 하지 않고 질문도 받지 않는 대통령입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통로라고는 청와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댓글 이외에는 없습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진돗개 새끼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이 '시중에서는 청와대 실세들끼리 다툰다고 하는데, 청와대 진짜 실세는 진돗개에요'라던 말이 유머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움직이는 실세는 국민도, 새누리당도, 청와대 비선도 아닌, '진돗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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