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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나는 엠네스티의 <성매매 비범죄화 제안>을 환영한다

  • 입력 2015.08.27 13:54
  • 수정 2015.08.27 18:51
  • 기자명 오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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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나는 과거에 느꼈던 당혹감을 기억한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 특별법’)1) 에 반대하여 거리로 나선 ‘성매매 여성’들. 드디어 그들을 구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는데 저들은 왜? 여느 떠들기 좋아하는 인사들처럼 처음의 반응은 ‘포주들에게 등떠밀려 나온 여성들’ 내지는 ‘스톡홀름 증후군’ 따위였다.2) 어설픈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성을 사고 파는 행위’이자 ‘어떤 이유에서든 이 폐해에 엮인 피해자’라는 단순한 인식을 넘어 보다 깊이 사고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 ‘성매매 비범죄화 제안서’를 채택한 국제엠네스티의 결정3) 을 두고 말이 많다. 아마 ‘아니 엠네스티가?!’와 같은 반응이리라. 벌써 많은 여성단체와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유무명인들이 이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국제엠네스티가 구별하고 있는 성매매/성노동 비범죄화(관리폐지주의)와 성매매 합법화(관리주의)를4)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5) 직썰에 올라온 “성매매 산업의 유일한 피해자, 여성”(MC 워너비, 2015-08-18)6) 의 글 역시 이를 명백히 구별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초점이 ‘성을 매매한다’라는 명제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썰의 글에서 피해자는 '성판매' 여성이 아니라 그냥 여성이다. '성매매' 산업의 존재 자체가 여성이란 보통 명사의 대상 전반에게 위협이 된다는 뜻으로 쓰는 전략일 테다. 그러나 일단 번지수가 틀렸다. 엠네스티는 성노동 운동이 그간 해온 입장을 받아들이며 전반적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이 글은 비범죄화와 공창제 및 여타 등록/허가제라는 방식의 합법화를 구별하지 않고 퉁쳐서 합법화라고 말해버렸다. (글에 삽입된 ‘나라별 성매매 제도와 관점’ (인권 법률 공동체 <두런두런>)이라는 표에도 불구하고)

ⓒ인권 법률 공동체 <두런 두런>


여기, 성노동 당사자 목소린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도 일관되지 않을 것이고 그 분포 역시 각 사회마다 역사마다 다를 텐데 항상 여성의 피해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성매매 산업' 밖에서 나오고 있다. 피해를 이야기하는데. 피해 당사자가 생략되었다.
성노동자 인권이 침해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섹스라는 행위의 본질 따위가 아니리 섹스를 유별난 것으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논리의 결과인 낙인이다. 가부장제에 대해 종속된 섹스는 여성의 성을 정숙과 창녀로 나누었다. 이 낙인으로 인해 성노동자는 음지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고 사회적 질시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여기에 기생하는 온갖 범죄와 착취는 이러한 낙인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합법화', 즉 국가에 의한 관리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이 낙인을 제거하는데 실패하고 사실상 포주의 역할을 국가가 승계하겠다고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합법화라는 이름의 '제한적 허용'과 같은 포지션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과 같은 이미지를 생산하고 만 것이다. 낙인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성노동자는 국가라는 포주에 기대는 것이 (항상) 더 나은 선택이 되리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엠네스티의 이번 선언은 이러한 점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들은 수 차례 강조하기를 성노동 당사자가 이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성노동 운동가들도 소위 '합법화'라는 이름의 공창제를 반대한 것은 이 공창제가 낙인을 제거하는데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노동을 둘러싼 온갖 범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는 경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비범죄화'를 대안으로 내걸었다. 당장에 낙인이 사라지진 않더라도 최소한 낙인을 만드는 가장 큰 요건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다. 성-판매자를 처벌하지 않더라도 성-구매자를 처벌한다면 여전히 '성매매'는 부정한 것으로 낙인 찍힐 것이다. 이로서 성-판매자는 법적 처벌은 면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처벌은 계속해서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수요자를 찾아야 하는 성 서비스 제공 노동자들은 범죄에 엮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더 풀어보자. 성노동자들은 현실 속에서 사실상 일상적 강간에 노출된다. 모든 것이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어떤 노동이나 서비스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다는 이유로 이를 수행하는 노동자나 서비스 제공자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다면 우린 사회라는 공동체와 국가/법에 호소한다. 그러나 성노동자는? 비-시민인 이들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이 각자도생할 길을 찾아야 한다. 성노동자가 범죄와 연루되는 이유는 성노동자의 처지를 법이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성-판매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든 안하든, ‘성매매’ 자체를 ‘불법’으로 못박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성노동자의 처지,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성노동자 권리모임 GG


자 그렇다면, 우린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못견딜 지경이 되도록 그 낙인을 강화해야 하는가? ‘성매매를 불법화’하고 '구매자'를 처벌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를 바라는 것 같다. 우리가 ‘성매매 여성’, 당신들을 구원해 줄께. 성노동자들을 더 어려운 구석으로 몰고가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이로서 ‘여성의 인권’을 지켜낸다고. 실현 가능성 여부는 일단 괄호치고, 이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 자세인지 난 묻고 싶다.
여기서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엠네스티의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자발적일 수 없다고 전제하고 있다. 여성이 처한 어려운 경제 사정 등에 의해 ‘성매매 시장’에 유입되는 것은 사회적 강제라는 이야기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자유주의’스러운 접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노동이 과연 완전한 ‘자유의지’에서 출발하는가? 성노동 운동 등에서 ‘자발적 성노동’을 굳이 꺼내는 것은 문제를 삼는 ‘인신매매’나 가족이나 애인 등에 의한 ‘강제적 성매매’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성매매’가 인신매매로만 채워질 것은 우리의 오해지, 자발적 성노동이라니 사회 구조적 맥락을 전혀 모르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전혀 맥락이 다른 의미로 ‘자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발적 성매매는 없다고 하지는 말자.
반대로 상상해보자.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이 사라졌을 때, 최소한 지금보다 덜할 때, 성노동자는 지금과 같은 일상적 강간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될 수 있겠는가?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이 없다면, 최소한 이들이 경찰에 찾아가 호소를 하고 사회에 고발할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비범죄화가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을 곧바로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법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만들어놓으면 낙인을 해소할 방법은 아예 없다. 일단 기본 배경은 깔아놓고 시작하자는 말이다.
‘몸을 판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가부장제가 여성을 속박하는 장치이다. – 남성에게는 이런 말 안 쓴다. 이는 기실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여성의 모든 것을 남성에게 제공한 것이라는 사고를 전제한 것이다. ‘매춘’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성매매’라는 이름에서 보듯, 이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보편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하다. 그리고 그 보편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성노동자 당사자를 배제시키는 것은 더더욱 이상하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섹스를 특별한 것으로, 더 나아가 성스러운 것으로 삼고 성노동자를 성스러움을 더럽히는 어떤 행위로 보는 종교적 태도다. 이 종교의 이름은 가부장제이다.7)
그래서 난 엠네스티의 이번 선언을 지지한다. 아울러 성노동자들의 운동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8)

주석

1)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 약칭: 성매매방지법 )

2) 조금 검색을 하면 당시 기사를 볼 수 있다. 가령, “성매매 여성 2500명 시위..."자발적이라고?" – 오마이뉴스(2014.10.07)와 같은. 대부분의 언론 역시 ‘성매매 여성’의 반대 시위에 대해 뒤에 있는 업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논조로 이 시위를 다뤘다.
3) “국제앰네스티, 성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 채택”
4) 캐슬린 배리 지음, 정금나, 김은정 옮김, <섹슈얼리티티의 매춘화>, 삼인, 2002., p279~313 (Katherleen Barry, Ptostitution of sexuality,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5). 단, 이 저자는 이 책에서 ‘1979년 나는 <여성 성 노예제>라는 책에서 매춘 여성 개인에 대해서 폐지주의적인 입장을 취했고 (중략) 1980년대 중반에 나는 매매춘 법에 대한 나의 입장을 재구성했는데, 비범죄화는 구매자가 아닌 오직 매춘 여성에게만 필요하고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p.299~300)라고 밝히며 ‘구매자에 대한 범죄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 변화에 대해 ‘개인은 제도와 분리될 수 없다’라는 명제 외 자세한 논증이 이 책에선 생략되어 아쉽다.)
5) 반면 다음과 같은 글은 엠네스티의 입장이 ‘비범죄화’임을 인식하고 있기는 하다. 이나영(중앙대 교수, 사회학), “[기고]국제앰네스티, 흔들리는 인권의 촛불”, 경향, 2015-08-18. 여기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짧은 코멘트를 붙여본 적이 있다.

한마디 하자면 비-성노동자가 인정하는 인권 쯤 되려나?
첫째 항목, 국가별, 지역별 차이는 각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각 지역활동과 지역활동가의 몫이지 총론과 일반론을 이야기해야 하는 엠네스티 본부의 몫이 아니라고 누가 이미 지적하셨다. 비범죄화라는 원칙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 나갈 것인가는 각론이다.
둘째. 인신매매든 '강제에 의한'이든 어떤 수사가 붙는 형태든, 그것은 각각 인신매매의 문제고 강제노동의 문제지 '성매매'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학자는 그간 국제적으로 증가한 성노동 논의를 싸그리 무시한다.
셋째. 그 인권은 당신과 같은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인정받는 인권인가? 성-매매 수요가 늘면 인신매매가 늘 것이라고? 인신매매를 잡을 생각 안하고 성-노동자의 삶의 주체성과 그들의 목소리를 타자화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타자적이고 시혜적 시선이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 대 모체의 삶에 대한 대립이다. 우린 이 부분에서 후자에 손을 들어준다. 태아의 생명이 생명이 아니라서? 아니다. 현실적으로 모체가 처할 여러 어려움들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보육이 전적으로 사회적인 것이고 모체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그만큼 낙태가 여성의 권리로 인정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구매자 처벌이든 뭐든 그럴 수록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은 강화될 것이며 그들은 그들의 일을 위해 더욱 음지에 구속될 수 밖에 없다. 성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 대체 누구인가?

6) 직썰 성매매 산업의 유일한 피해자, 여성7) 여기서 ‘매춘’과 ‘매매혼’과의 관계, 근본적으로 가부장제 하 모든 ‘결혼’이란 제도가 일부다처이든 일부일처이든 어떤 제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결혼제도’와 다르지 않음은 서술하지 않았다. 이를 이야기하려면 이 글보다 훨씬 더 긴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단, 현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매우 최근에 보편화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여성이 어느 정도라도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최근이고, 여성이란 존재는 사실상 거래 대상이었다. 지금도 저발전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 근대국가에서조차 이것이 해소되었다고 보긴 힘들다.
8) 종종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를 비교하더라. 난 하나 묻고 싶다. 성노동과 구매자의 이동은 고려했는가? 스웨덴 일국에서 표면적인 숫자가 줄었다고 이를 자축해야 하는 것인가? 난 스웨덴의 성노동자와 독일의 성노동자 목소리가 듣고 싶다. 국가가 내어놓은 이름 없는 숫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은 부정적인 것이며 성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 '구매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성노동자가 성노동이 아닌 다른 직업으로 이동하고 이에 만족할 수 있도록 뭔갈 만들자는 이야길 하라. 단 처벌이니 제약이니라는 식의 다시 낙인 찍기의 방법이 아니라. 적어도 여성노동의 문제에 관한 우린 손을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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