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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섹스를 해야만 부부인가요?

  • 입력 2015.08.08 16:35
  • 수정 2015.08.10 13:30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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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폴 콕스(24)는 아내와 결혼한 지 9달이 지나도록 성생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불화가 있는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는 않지만, 여전히 부부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무성애(asexuality) 부부입니다. 무성애자 남편 콕스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소개합니다.

저와 제 아내는 결혼한 지 9달 된 신혼부부입니다. 우리는 아주 행복하지만, 아직 성 경험이 없습니다. 저희는 둘 다 무성애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성애(asexuality)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말합니다. 워낙 드러나지 않는 현상이다 보니, 사람들이 무성애를 못 믿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저 또한 무성애를 인정하기 힘들었으니까요.
저희 부모님은 농업 학자이셨고, 저는 열 살 쯤부터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열여섯 살 때 까지는 인도에서 살았고, 그 다음엔 짐바브웨에서 2년, 그리고는 쿠웨이트에서 살았죠. 런던에 자리잡기 전까지는 중국과 뉴욕에서 공부했습니다. 열 살 무렵, 저는 제 자신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어릴 때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제 생각은 나중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에 흥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학교 친구들은 점점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지만, 전 그들이 뭘 얻기 위해 그런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인도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족 파티가 있었고, 아이들은 정원에 모여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열 세 살이었고, 제게는 카심이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카심은 호주 아이인 제시카에게 반해 있었죠. 모든 사람은 제시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속닥거리며 카심이 제시카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참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실비라는 프랑스 여자아이에게 반한 척을 했지요. 그 애는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그 애와 남자 애들 얘기를 조금 했을 뿐입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여자 아이들이 제게 관심있는 티를 낸 적도 있었지만, 저는 일부러 그 신호를 무시하곤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불편한 상황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여자 아이와 키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키스한 여자는 제 아내였죠.
열세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성교육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마치 먼 나라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왜 사람이 섹스라는 것을 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러 인터넷에서 포르노물을 찾아 본 적도 있지만, 역겹고 끔찍하거나 아니면 마치 벽지를 보는 것처럼 따분할 뿐이었습니다.
당시 친구들은 자위에 대한 얘기도 즐겨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위를 해봤지요. 하지만 그건 성적 욕구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환상을 가지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가 그렇게 하기로 한 것 뿐이었죠. 어떤 사람은 “자위를 한다면, 그 자체로 성적 기호가 있다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설명하기 좀 힘든 얘기지만 당신이 무성애적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자위와 당신의 성적 지향을 명확히 연결지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냥 제가 생물학적으로 인체를 가졌다는 정도의 의미일 뿐입니다.
우리 가족이 짐바브웨로 이사온 뒤, 저는 제 오랜 친구 카심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와 제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즈음의 우리는 콜라를 마시고 피자를 먹으며 게임에 빠져 있는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년 만에 카심을 만났을 때, 저는 그가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섹스였습니다. 그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기 직전까지 간 상태였습니다. 카심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카심은 두 명의 여자애들에게 카메라 앞에서 키스를 해 보라며 끈질기게 괴롭혔죠. 주변 분위기는 열광적이었지만, 저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심은 오랜 시간 동안 제 친구였지만, 이제는 마치 저를 내버려두고 혼자 다른 세계로 들어간 사람 같았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친구들이 제 성 정체성을 궁금해하도록 내버려 뒀습니다. 더는 여자에 관심 있는 척할 필요가 없었죠. 어떤 사람은 제가 게이일 거라고 짐작해 뒷말을 했습니다. 지금 제 가장 친한 친구인 시몬은, 그 때 제게 직접 부딪혀 온 첫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저우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도시였죠. 저는 그 거리를 시몬과 함께 걸으며 그의 노골적인 질문에 대답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는 집요하게 제 성 정체성에 관해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난 이성애자도 아니고, 게이도 아니다. 그게 전부다.”라고 답해줬습니다. 그때 전 어떤 용어를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해 여름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한 여자가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민을 쓴 글을 봤습니다. 그 글에 대해 다른 사람이 무성애자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asexuality.org라는 사이트를 추천해주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사이트에 접속해 처음 게시물들을 읽었을 때, 저는 그 곳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살면서 무성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프로이트와 킨제이 이후로, 심지어 1960년대에 이르러서도, 성적 지향점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무언가에 억눌려있거나 망상이 심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트를 방문하고 게시판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 역시 정상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혼자 생각만 해왔지만,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점을 그들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마침내 저는 제 자신을 설명할 단어를 찾았던 겁니다. 제가 느껴왔던 불편함과 의문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죠. 저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대학으로 돌아왔고, 어느 날 "무성애는 아메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적힌 티셔츠를 입으면서 모든 걸 밝히기로 했습니다. 저는 불안했지만, 이제까지 꽤 여러 명의 사람들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같은 질문에 대답해주는 일에는 익숙했습니다. 운 좋게도, 아무도 제게 나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무성애에 관한 웹사이트를 찾은 뒤, 어머니와 이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어머니는 "네가 어느 날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제가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저는 제 교우관계가 단단하고, 제가 충분히 독립적인 성격이라는 사실을 늘 스스로에게 되새겼습니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에는 뉴욕 무성애 모임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웹사이트에 메시지를 보냈죠. 그들은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카페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만다라고 하는 여성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무성애자였고 마침 이웃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성애자인 남자 친구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난 로맨스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경고로 대답을 해줬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를 마시고 스케이트장을 가면서 자주 만나게 됐습니다. 전 아만다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또 그녀는 예뻤죠.
처음엔 보통 일반적인 우정과 마찬가지로 그 감정을 대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4마일을 달려가 샌드위치를 사오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두 달 뒤 전 공연을 보던 중 그녀 손을 잡았습니다. 조심스러웠지만, 저는 그걸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우리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약혼을 발표하자 가족들은 기뻐했고, 무성애자 모임 사람들은 더 환영했습니다. 결혼 첫 날 밤, 장모님은 허니문 스위트룸을 예약해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그래서 우리 부부는 친구들을 전부 방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밤 늦게까지 단어 맞추기 게임을 했고 모두 다 같이 방에서 잠들었습니다.


주변에선 우리 결혼 생활이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인간끼리 관계를 맺는다는 게 실은 다 일종의 친구 맺기가 아닐까요. 우린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우정을 건설한 겁니다. 명백히 우리 부부가 남들과 다른 것은 키스나 포옹은 해도, 섹스는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우리 중 한 명이 앞으로 섹스를 원하게 된다면, 그 때 과연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문제에서도 타협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부부이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에 타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일에 크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아기는 입양으로 얻을 생각입니다. 확실한 건, 지금 우리 부부가 무척 행복하다는 겁니다. 이제 누가 묻더라도, 제 파트너 아만다가 제 인생에서 무슨 의미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가정입니다.


원문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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