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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 입력 2015.07.01 14:36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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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7월 1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두 가지의 생소한 개념이 도입된다. 하나가 부가가치세고하나는 의료보험이다.

부가가치세는 영업세, 입장세 등 종전의 8개 간접세를 통합, 단일화시킨 세목이었다. 김용환 재무부 장관은 세율을 “당초의 13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낮췄으니 지금까지 부담했던 세금보다 적다” 고 강조하며 가격을 부당하게 인상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같은 날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은 ”의료보험 실시에 즈음한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의료보험이 도입될 당시 이 혜택을 받는 사람은 소수였다. ”5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단 지역 근로자“가 그 대상이었고 당시 약 350만 여 명이 의료보험의 수혜를 입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의료보험이 실시될 당시의 우려가 지금과 매우 흡사하다.

일선병원들이 보험지정 병원이 되기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건사회부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낮은 의료수가’에 승복할 수 없다는 일종의 거부반응으로 볼 수 있다. 모처럼의 복지 제도가 실시를 앞두고 아직 기본적인 합의에마저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제도의 전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은 계속 확대됐다. 특이한 것은 의료보험 관련 정책이 확대되는 날짜가 7월 1일 이라는 점이다. 1979년에는 300인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로까지 확대 실시됐고 81년 7월 1일에는 지역의료보험이 처음으로 시행됐으며 88년 7월 1일에는 5인 이상 사업장은 당연 가입하도록 제도화됐으며 마침내 1989년 7월 1일에는 도서 지역에 지역 의보가 확장되면서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보면 7월 1일은 신의 축복이라도 내린 날 같지만, 그래서 인자하신 통치자들이 착착 계획을 세워 의료보험의 시혜를 확대한 것 같지만, 그래서 맹장수술에 수 천 만원이 들고 앰뷸런스 한 번 부르면 기백만원이 깨지는 태평양 건너 어느 강대국과는 차원이 다른 의료보험이 확립돼 온 것 같지만, 모든 복지가 그렇듯 그것은 권력의 은혜가 아니라 투쟁과 노력의 반대급부였다.


4차 5개년계획 최종 보고회의 이틀 전에 청와대 안보상황 보고 자리에서 정보부(안기부) 판단관이 ‘가장 위험한 안보 취약 지대는 봉천동, 상계동 등의 판자촌 빈곤 주민들입니다. (중략) 일단 병에 걸리면 치명적이 되는 상황이어서 유사시엔 예측 불가합니다. (중략) 이들에 대한 의료보장 대책이 시급합니다

우석균 교수 “박정희가 건강보험의 아버지인가” (건강과 대안, 2010.7)


이 무렵에는 남한의 ‘의료 참상’에 관한 북한 삐라가 많이 날아왔다고 한다. 북한은 당시 ‘무상 의료’를 시행하고 있었다. 북한은 “세상에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 죽어? 우리는 무상의료라우.” 하며 약을 올리고 있었고 남한 사람들은 병이 들어도 치료조차 못 받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의료보험의 산파라 할 수 있는 김종인 당시 비서관의 의견은 그야말로 돌직구다.


당시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날 때인데,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서 (중략) '학생운동과 노동자들의 분배 요구가 맞물려 합쳐지게 되면 큰일난다. (중략) 의료보험제도라도 우선 도입하자’고 했던 겁니다.


의료보험 도입은 충돌의 충격을 피하기 위한 완충이자 브레이크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물길은 점차 확대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 시대 대동법이 100년에 걸쳐 결국은 전국적으로 실시됐듯이 의료보험 제도는 실시 10여년만에 전 국민의 것이 됐다. 2013년 7월 1일부터는 스케일링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그렇게 오랜 동안 싹트고 일궈낸 건강 보험은 최근 위협을 받고 있다. 홍준표 경남 지사는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면서 “의료보험제도라는 좌파정책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도입하면서 의료분야 전반에 공공의료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까지 빨간칠을 하며 의료 상업화에 앞장서는 광경은 새삼스럽지 않다.
1970년대 이전, 아니 그 이후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족들을 둘러업고 “의술은 인술이라지 않습니까? 제가 간이라도 팔아 댈 테니 제발 좀 환자 좀 봐 주십시오.” 라며 의사에게 읍소했다.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가족을 지켜보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의료보험 덕택에 그런 시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에게 다시 그 구렁텅이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어찌 ‘선진’일 수 있을까?


신뢰할 수 없는 정부를 국민은 계속 참아주지 않는다. 국민은 어느 순간까진 참지만 그 이상은 못 참는다. 국민을 조작하고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국민은 불공평한 걸 제일 싫어한다. 비민주적인 걸 싫어하고, 쓸데없이 사회 갈등 일으키는 것을 싫어한다. 이제 복지 격차가 심하면 용납을 안 하는 게 시대정신이 됐다.

김종인 의원


우리도 아울러 기억해야 한다. 의료보험이 확대된 것은 ‘국으로 인내하고 묵묵히 참으며 내일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이 더러운 세상! 돈 없어 사람이 죽다니!” 하면서 앙앙거린 사람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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