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말 못하는 대통령을 욕하는 이유

  • 입력 2015.06.29 15:22
  • 수정 2015.09.09 11:20
  • 기자명 정주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 잘하는 놈은 사기꾼이다

어디서 비롯된 건지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말 잘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정서가 있다. 이 정서는 정치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구에서는 오바마, 토니 블레어 같은 달변가 정치인들이 큰 인기를 얻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말실력은 그리 유익한 스펙이 아니다. 바른말을 잘하는 정치인은 분열주의자, 약장수 취급을 받는 반면, 중요한 순간 말을 아끼는 정치인은 진중함, 안정감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말을 못하는 대통령을 얻게 되었다.



출처: 오마이뉴스


의원시절, 후보시절 누구보다 말을 아끼는 정치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의 대가로 무책임, 비겁함이라는 비난 대신 무게감, 신뢰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것이 청와대로 입성하는 데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첩과 프롬프터 없이는 온전히 한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빈곤한 언어구사능력과 이산화가스, 바쁜벌꿀로 상징되는 한글파괴적 말실수들은 청와대로 가는 길에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실수가 문제가 될 때마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말 좀 못하면 어때. 일만 잘하면 되지

과연 그럴까? 정말 말 못하는 대통령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래 대통령의 발언들을 보자.


출처: 오마이뉴스

와해된 언어는 와해된 사고의 반영이다. 일관되게 저런 분별없는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사고체계가 심각하게 와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누구보다 명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직업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권력구조를 가진 나라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감은 태산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의 ‘말’은 크게 중요치 않은 덕목으로 인식되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해독이 불가능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말 못하는 대통령에 대한 옹호는 여전히 강력하다.

"말 좀 못하면 어때. 일만 잘하면 되지"

이렇게 대통령의 말솜씨를 두둔하는 이들은 언변을 훈련을 통해 습득하는 일종의 '스킬'로 이해한다. 말솜씨를 마치 물구나무서기나 볼펜돌리기처럼 연마를 통해 얻어내는 잡기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말빨이 좋다’ 따위의 얄팍한 칭찬에 담겨있는 정서와 일치한다.
말은 신체적으로 갈고 닦아서 얻어내는 ‘운동능력’이 아닌, 사고의 출력에 관한 문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떤 신체적 언어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설령 말을 ‘기술’로 이해한다 해도 정치경력 20년, 대통령 3년차 정치인의 언어구사 수준이 이정도라는 건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사고의 출력이며, 그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는 화자 그 자체다. 말이 자꾸 엉키고 꼬인다는 건 말하는 이의 사고회로가 뒤죽박죽 엉켜있다는 뜻이다. 출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제대로 입력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정리된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이 명확한 메시지가 담긴 말을 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이 물구나무서기는 할 줄 몰라도 되지만, 대통령이 볼펜돌리기는 잘 못해도 되지만, 말은 잘해야 한다. 말은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있거나, 해석이 되지 않는 모호한 말로 국정책임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사회 전반에 혼란이 빚어지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정체 모를 외계의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에게 갈등의 조정과 사회통합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매번 올바른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언제나 명료한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들이 국정책임자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어떤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가?

더 오싹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못하는 본인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사실이다. 잦은 말실수와 와해된 화법은 후보시절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었던 래퍼토리다. 대통령은 이런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임기 초 극도로 말을 아끼던 대통령은 임기 3년차에 접어들어 국정이 완전히 장악된 지금 전에 없던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그네체 화법을 구사한다. 창피한 말을 늘어 놓고도 창피한 줄을 모른다는 거다. 이러한 학습능력의 부재, 소통의 부재는 대통령과 국가를 점점 더 위험에 빠뜨린다.


'제1회 그네문학상'에 부쳐


우리는 ‘대통령의 말’이 가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공론화시키고, 가능하다면 대통령 본인에게 자각시키고 싶었다. ‘제1회 그네문학상’은 그렇게 기획됐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며칠 새 6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응모했고, 공모 페이지와 수상작 발표 페이지는 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제1회 그네문학상


응모작을 읽은 사람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
그네체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심사를 위해 500여 편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보았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원작들을 뛰어넘는 작품은 찾기 어려웠다. 말을 작정하고 못하려고 해도 우리 대통령만큼 못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그네체는 단순한 대통령 말주변에 대한 조롱이 아닌, 국민들이 느끼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의 함축이다. 무논리, 철학의 부재, 염치없음, 권위주의… '그네체'라는 조롱에는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통령은 말을 똑바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대통령은 5개국어에 능통한, 혹은 외계어를 쓰는 대통령이 아닌, 우리말을 똑바로 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네체’ 열풍을 겸허히 받아들여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네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어보며 자신의 말을 돌아봤으면 한다. 사회일반과 괴리된 언어를 사용하는 대통령이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면 제2회, 제3회 그네문학상은 계속될 것이다.


'제1회 그네문학상' 수상작 발표 [바로가기]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