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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수사가 유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 입력 2015.06.16 11:51
  • 수정 2015.06.16 11:52
  • 기자명 영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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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시켜!”라는 일갈이 유행어가 된 사회
오래 전 일이지만, 주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검사로 분한 개그맨은 “구속시켜!”를 외쳤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아무 무리 없이 유행어로 받아들여졌다.


ⓒKBS 개그콘서트


세간의 주목을 받는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든 국민은 범죄자가 구속되었는지 여부에 관심을 기울인다. 만일 구속되지 않는다면 법이 과연 문제라면서 성토가 줄을 잇고, 구속되면 엄정한 법의 집행으로 칭송이 이어진다. 얼마 전 ‘땅콩 리턴’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경우도 이와 같았다. 조현아 부사장이 구속되고, 언론은 무례한 공주님이 푸른 수의를 입고 찬 바닥에서 자는 모습을 계속 보도했다. 국민들은 이 사실에 통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통쾌함을 잠시 접어두고 ‘구속’과 ‘구치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검사에 의해 구속된 사람들은 과연 죄인일까? 구치소는 과연 죄인들이 머무는 공간일까? 형사소송법은 이 질문들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구속된 사람은 과연 죄인일까?
단언컨대 한국의 형사소송 절차 중 가장 큰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구속이다. 구속이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필요에 따라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수사의 과정을 말한다. 즉, 구속은 처벌이 아니며, 구속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이 아니다. 구속의 사유에 관하여 정하는 형사소송법 제70조는 다음과 같다.

제70조(구속의 사유) 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구속은 피해자의 신원이 불확실할 경우 이를 확보하여 공판을 원활하게 진행하거나, 증거를 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구속 자체에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유무죄인지 법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제27조 제4항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을 받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구속은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우리 헌법은 이를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형사소송법 제198조 제1항은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여 불구속 수사가 기본원칙임을 밝힌다.


하지만 현실은 ‘구속원칙 관행’이다. 검사가 구속 영장을 신청하면 대부분 별다른 검토 없이 발부된다.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은 법원이 아니라 검찰 등 수사당국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편의를 위해 일단 구속부터 해놓고 보는가 하면, ‘특정 범죄를 강력히 단속하기 위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언사가 횡행할 정도로 구속을 징벌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경미한 사안이라도 수사당국에 잘못 보이면 영락없이 구속 영장이 떨어진다. 누군가 구속되면 그의 생활은 일시에 파탄 나게 마련이다. 사회적 단절, 경제생활 중지는 물론이고 수사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중죄인’이 되어 버림에도 이런 관행은 수정되지 않고 있다.
구속이 되면 구금되는 구치소의 현실도 이를 반영한다. 우리 법은 구치소를 교정시설로 구분하지만 과연 구치소가 교정시설일까? 아니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에게 교정을 시행할 수 없다. 구치소는 형벌의 공간이 아니다. 아직 무죄로 추정되는 사람의 도주와 증거인멸을 막기 위한 공간이며, 수사의 공간이다. 따라서 구치소는 이 목적을 위해서 인권을 최소 침해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구치소에서는 이미 죄수들이 입는 수의를 입히고 수갑을 채운다. 죄인도 아닌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한다. 이는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국제기준에도 위배된다.


권력에 순종했던 검사 황교안
근래 고교 동창들이 뜻밖의 자리에서 해후한 사건이 있었다. 국회 청문회장에서 경기고 동창인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와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만난 것이다. 이 둘의 인연은 이전에도 각별했다. 1989년 노회찬 전 의원이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황교안 당시 검사가 찾아가서 수갑을 풀어주고 담배도 건네면서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황교안 - “구치소는 어떠냐?”
노회찬 - “시설도 좋고 지낼 만하다.”
황교안 - “그게 문제야. 구치소가 좀 춥고 그래야지 반성도 하지.”

1989년, 비록 권위주의가 아직 모두 가시지 않은 시대라고 해도 민주화의 시대였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그때에 이미 시행되고 있었고, 무죄추정의 원칙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속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황교안 후보자의 인식은 반헌법적이었다. 무죄로 추정되는 피의자에게 부당한 처우를 요구하고 반성을 종용했다. 권력에 대항하는 시도는 법원의 유죄 판단 이전에도 춥고 어두운 곳에서 징벌 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에게 헌법의 명령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에 순종하며 관행에 매몰되는 평범한 공안검사일 뿐이었다.


ⓒ민중의소리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감수성, 민주주의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없었던 그가 지금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의 총리가 되고자 한다. 사반세기를 지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을까? 이후 법무부장관 시절까지 그의 행보를 보면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다. 무엇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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