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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방역, 합리적 판단이 '진짜 재난’을 막는다

  • 입력 2015.06.04 12:16
  • 수정 2015.06.04 14:02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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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불안하다. 바이러스로 모든 사람이 죽어나는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국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다음과 같은 대책들을 어서 내놓지 않고서.

1. MERS 의심환자를 신고하지 않는 병원은 처벌한다.
2. MERS 전염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병원은 즉시 인터넷에 공개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확실해 보이는 이 대책은, 실제로 시행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발견될 것이다.

1. MERS ‘의심자’는 독감 환자만큼이나 많다.



ⓒ영화 <감기>

메르스 자체가 신종 독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심자 모두를 성실하게 자진 신고한 병원은 폐쇄되어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신고하지 않았을 때 처벌받을 뿐이다. 이런 경우, “걸리지만 않으면 됐지” 생각이 앞서게 된다. 의심이 가도 숨기려고 한다.

2. 의사 스스로는 이 환자는 메르스가 아닐 것이라고 자기암시를 건다.


이런 맥락에서 “그 당시엔 몰랐다” 식으로 준비한 변명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또한, 메르스일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병원을 2주일이나 폐쇄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부담은 정말 신고해야 할 순간을 망설이게 하는 ‘현실적인’ 요인이다.
보통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떠올릴 수 있는 대책을 쉽게 행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방역체계’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에이즈는 전염의 우려가 큼에도 국가가 절대적으로 피검자의 비밀을 보장한다.
가장 좋은 상황은 에이즈 의심자가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고, 주변에도 환자의 존재를 알려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균형은 이뤄지지 않는다. 에이즈 감염사실 공개가 의무인 사회에서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이 알려질까 두려워 검사를 받지 않고 결과적으로 사회가 대비할 기회를 놓치게 한다.
그래서 차라리 의심될 때 검사라도 잘 받으라고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결과를 비밀로 지켜주는 것이다. 반대로 헌혈을 할 때에는 이왕 한 에이즈 검사임에도 결과를 헌혈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검사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에이즈 의심자가 검사를 위해 헌혈을 하는 행동이 사회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정보가 더 나은 공익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100명인데 구명조끼가 90개인 상황에서라면, 구명조끼가 충분하니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거짓말을 하면 90명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구명조끼가 부족하다는 방송을 하면,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달려들다가 모두 압사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재난 상황이니 물과 식량을 사재기하라는 방송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같다. 그 방송이 나오는 순간 상점이 약탈되고 모두가 평등하게 식량을 나눠가질 수 있는 구호체계가 작동할 수 없으므로.
물론 그 ‘거짓말’이 정당한가의 문제는 별개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다시 회복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너무 뼈저리게 체험을 했다. 이제는 정말 가만히 있어야 할 상황에도 그걸 믿지 못해 움직이게 되었으니.


‘재난’을 막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것들
MERS 의심자가 나오는 병원을 너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까닭은 병원이 입소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환자를 신고하는 것을 유도하여, 초기 대응을 완벽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확실한 발병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관련자들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전체적인 방역시스템을 위해서 효율적이다.
MERS 확진이 되면 포상금을 주는 정책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적극적으로 보내려 할 테니까. 사람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할 뿐이지만, 상을 받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성의를 다하게 된다. 빈틈은 처벌이 아니라, 포상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일선에서 방역에 힘쓰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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