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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이 망하는 4단계 과정

  • 입력 2015.05.18 12:27
  • 수정 2015.05.19 10:10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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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그 중에서도 특히 MMORPG라는 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 생명과 같다. 외부와 끊임없이 접촉하고 상호작용하여 스스로를 바꿔나가며,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유저들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받고 끊임없이 돌아간다. 유저들은 오직 게임 속 세계에서 주어진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율적인 의지로 많은 새로운 것들을 찾아 즐기며, 또 게임은 그에 맞춰 자신을 움직이고 생명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바뀌고 유저들이 더 이상 그 게임을 찾지 않을 때, 마치 우리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그 게임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 ‘죽음’의 과정에 도달하기까지 대부분의 이 온라인 RPG들은 대체로 유사한 몇 가지의 공통적인 단계를 거친다. 단계의 진행 속도와 그 수명은 모두 다르지만, 속칭 ‘망겜’의 타이틀을 획득하며 죽음을 목전에 둔 게임들은 마치 암의 발병 및 확산과도 같은 모양으로, 다음의 단계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잘 들으세요. 유저님의 서버가 종료되어 앞으로는..."


첫 번째 단계 : 자잘한 버그와 매크로 유저 방치


건강한 작업장 일꾼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 ⓒ마비노기 영웅전


게임도 하나의 컴퓨터 프로그램인 이상 당연히 버그가 발생한다. 유저들이 이를 발견하고 각종 문의 등을 이용해 문의하지만 GM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처리를 뒤로 미룬다. 결국 유저들은 자신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었음을 깨닫고 버그 제보를 그만둔다. 물론 그 버그는 반드시 큰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속칭 ‘작업장’이라 불리는 매크로 유저들도 망겜 1기가 진행되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이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수의 계정을 이용하여, 게임 내 화폐를 비정상적으로 불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그러나 일부 게임의 운영진은 매출의 일부, 혹은 그 외 여러 이유로 이들을 방치하고, 결과적으로 게임 내 경제체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 이 단계의 게임은 꽤 건강한 편이다. 유저가 없는 게임에 누가 작업장을 차리겠는가. 실제로 ‘매크로’ 문제로 가장 골머리를 앓는 게임은 리니지, WOW, 아이온 등으로 제법 높은 인기를 누리는 편에 속한다.


두 번째 단계 : 과도한 (사행성) 캐시 아이템 판매


믿지 마세요. 어서 탈출하세요 ⓒ던전앤파이터


게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을 때쯤, 낮은 확률로 대박이 터진다는 ‘전설의 행운상자’나 ‘마법의 강화 망치’ 같은 확률성 아이템이 출시된다. 사실 안사면 그만인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 유저들은 적지 않은 돈을 이 도박에 투자하고 여기에 재미를 본 게임사는 자체 콘텐츠 개발보다 사행성 아이템 판매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한번 도박에 빠진 유저는 그동안 들인 돈이 아쉬워 게임에 붙어 있으나, 마음은 이미 게임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추가 콘텐츠의 출시도 없으니 한번 식은 애정은 쉽게 돌아올 길도 없다. 한편으로 이러한 유료 아이템 판매를 위해 게임 내 여러 시스템을 건드리며 밸런스 붕괴를 유발하는 등 몇 가지 삽질이 더해지기도 하는데, 매출은 잠시 오를지언정 마음도 지갑도 비워버린 유저는 하나 둘 이탈하기 시작한다.
물론 게임사는 이슬만 먹고 운영하는 곳이 아니며, 당연히 자선단체도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사행성 유료 아이템에 대한 욕심이 어떤 참사를 불러오는지는 이미 대한민국 게임 역사상 희대의 흑역사로 남은 두 사건, 던전앤파이터의 ‘키약믿’ 사태 그리고 메이플스토리의 ‘놀장강’사태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세 번째 단계 :
잦은 이벤트를 통한 과도한 보상 남발


갈 때 가더라도 이벤트 한번쯤은 괜찮잖아?


이쯤되면 꽤나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접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진은 점점 무리수를 던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게임 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거나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나서는 대신, 얻기 힘든 고성능 아이템이나 파격적인 레벨업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이벤트를 개최해 유저들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출석체크나 플레이타임 누적하기 등, 동시접속자수와 같은 일시적인 지표 향상만을 노리는 이벤트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보상은 꽤나 빠방하기 때문에 유저들은 울며 겨자먹기, 또는 잠깐 혹하게 되어 결국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나 악몽은 끝나지 않는다. 보상으로 풀린 고성능 아이템들 때문에 기존 고가 아이템들은 순식간에 헐값이 되고, 너도 나도 고수가 되어 사냥터를 쓸고 다니며 게임 밸런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다.
잠깐 치솟았던 지표는 이벤트가 끝나며 다시 하락하고, 운영진은 또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유저들이 호구는 맞지만, 그렇다고 상호구는 아니다. 이쯤에서 이미 ‘망-겜’이라는 수식어는 확정. 이미 신규 유저의 유입은 끊긴 지 오래인데다가, 남은 이들마저 몇몇 헤비유저 외에는 다들 떠나기 시작한다.


네 번째 단계 : 콘텐츠 업데이트 중단


게임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즐기는 게임이 1년 이상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만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자. 그동안의 길었던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많은 유저들이 떠나고 이전과 같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새로운 맵이나 캐릭터와 같은 콘텐츠 업데이트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없으니 하던 사람도 떠나고, 당연 신규 유저 유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마을에선 더 이상 아무런 활력도 찾을 수 없고, 마치 폐촌만을 연상케 한다. 홈페이지 게시판은 마지막 남은 유저들의 제발 우리 게임 좀 살려달라는 청원으로 가득한데, 망했으니 짐 싸고 떠나자는 댓글만 달린다. 어떤 유저들에게 추억이 담겨있는 그곳은 이제 하나의 픽셀 조각일 뿐..
사람들이 워낙 모여 버벅거리던 지역도 한산하고, 가끔은 싱글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외부와의 모든 상호작용이 끝나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며 우리의 게임은 조용히 마지막 순간을 준비한다.



그렇게 우리가 한때 사랑하고 즐겼던 그 게임은, 서비스 종료 공지와 함께 찬란했던 일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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