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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 입력 2015.04.27 10:12
  • 수정 2015.11.15 00:55
  • 기자명 영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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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항상 우리 반대편에 자리 잡았다.
지난 16일, 광화문 세월호 집회에서 시위대와 의경이 폴리스라인을 사이에 두고 다퉜다. 11명의 사람이 다쳤다. 그 중 2명이 의경이었다. 사람들은 애꿎은 의경을 폭행하고 욕설한다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이 비난은 의경들이 무슨 죄냐, 의경들도 뉘 집의 자식인데, 억지로 끌려왔는데, 나 의경이었는데, 내 친구 의경인데 등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폭력시위 불법시위를 규탄한다는 의견으로 결론 맺었다.

생각해보면 의경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숱한 파업 현장과 광화문과 시청의 시위에 있었다. 멀리는 87년 서울과 80년 광주, 유신의 시절에도 시위대의 반대 편에 자리 잡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왔고 왜 그곳에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시위대는 죄 없는 의경을 괴롭히려는, 못된 사람들이 되었다.

의경이 누구이고, 무엇이기에
의경은 의무 군복무를 위해 의경으로 지원하고 배치된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 중에 입영대상자를 경찰로 배치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대외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방어하는 일과 민간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독특한" 의경이 우리에게 있을까?

의무경찰, 나아가 전투경찰 제도의 근거규범은 <전투경찰대 설치법>으로, 이는 1970년에 제정되었다. 1968년 일명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하여 총격전을 벌인 데에 놀란 청와대는 무장공비의 침투에 대비하기 위하여 의경과 전경 조직을 마련했다. <전투경찰대 설치법> 제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간첩(무장공비를 포함한다)의 침투거부(浸透拒否), 포착(捕捉), 섬멸(殲滅), 그 밖의 대(對)간첩작전을 수행하고 치안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지방경찰청장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가경찰기관의 장 또는 해양경비안전기관의 장 소속으로 전투경찰대를 둔다."

무장공비를 잡기 위해 마련된 의경, 전경은 무장공비보다 시위현장에서 국민을 잡기 시작한다. 무장공비가 내려와봐야 수 년에 한 번, 90년 후반부터 20여 년 간 무장공비 구경을 하기 힘드니 이 조직은 준거법이 무상하게 국민을 때려잡는 일이 아니면 할 게 없게 되었다. 1972년 유신 이래 의경과 전경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집회 및 시위 현장, 노동자들의 쟁의 현장에 동원되었다.
당연히 문제가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1995년, 헌법재판소는 전투경찰대 설치법의 위헌성을 판단한다. 판단 결과, 헌법재판소는 "현역으로 군 입대한 사람을 전경으로 '전환 근무'시키는 것과 일선 시위진압 업무에 동원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재판관 9명 가운데 4명이 "전투경찰대로 편입되는 현역병은 대간첩작전의 수행을 임무로 할 뿐이며 순수 치안업무인 집회 및 시위 진압 임무는 국방 의무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무려 20년 전, 권위주의의 그늘이 아직 남아있는 때에도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과 비등하였으며, 위헌 논란은 지금까지 잠복해 있는 셈이다.
전투경찰 조직은 2013년에 폐지되었다. 시대의 변함을 자기들도 감당할 수 없으니까 폐지되었지만 눈가리고 아웅, 이들 조직은 의경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그리고 무장공비를 잡겠다는 <전투경찰대 설치법>은 여전히 의무경찰의 근거규범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누구를 향하여 분노하여야 하는가
전투성이 탈색된 의무경찰은 이제 경찰조직의 끝에서 경찰조직의 시종처럼 가장 지저분한 설거지를 담당한다. 갑옷 같은 옷을 입고, 직업 경찰들이 근무를 마친 시간까지 시위 현장에 배치된다. 그렇게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권리를 막는 상징, 국민 대 국민의 갈등이라는 모순, 헌법 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를 억압하는 레토릭이 된다. 대외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겠다는 개인의 의지는 그렇게 묵살된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시위대와 의경이 폴리스라인을 사이에 두고 다툴 때, 우리는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 이건 국민을 들어 국민을 막아내는 국가 체제의 몰상식함, 의경을 시위 진압 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는 경찰 조직의 무책임함을 비난해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군인으로 징집된 이들을 궂은 일만 도맡는 경찰력으로 활용하는 제도 자체를 비난해야 한다. 비난의 방향은 응당 그래야 한다. 불쌍한 의경들 사이에 두고 힘없고 초라한 사람들끼리 누가 잘못했느냐 드잡이를 하는 동안에 그 뒤에서 낄낄 웃고 있을 사람들을 향하여, 공동체에 의무를 다할 뿐인 의경을 방패 삼아 숨는 그 사람들 말이다.
이제 16일은 지났고, 5월 1일 철야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일 의경이 다친다면 다음 날 보수 일간지 1면엔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릴 것이다. "세월호 집회, 폭력 시위로 번져... 의경 0명 부상", 그때에 우리는 누구를 향하여 분노하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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