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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2. 대학원 입학과 조교생활

  • 입력 2014.10.28 12:17
  • 수정 2018.04.11 15:21
  • 기자명 309동1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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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학원 입학과 조교생활

2007년 12월, 대학원 입학이 예정되자 조교실장이 나를 포함한 그 해의 대학원 신입생 셋을 호출했다. 나는 학과사무실에서 함께 신입생이 된 K와 S를 처음 만났다. 둘은 나보다 한두살씩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어느새 서로 꽤나 친해져 있었다. 내가 인사하자 둘은 반갑게 맞아주기는 했으나, 뭔가 잘 어울릴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닌 것을 서로 알았다. K는 술자리를 주도하는 편이었는데, 어느날은 오빠 내가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조용히 밥만 먹을게, 라고 하기에 나는 니가 조용하니까 참 좋다, 라고 말해 버렸다. 내가 원체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동기들과의 사이는 애초부터 별로 좋을 수가 없었다. 조교실장은 박사과정생으로 나보다 5살쯤 많았다. 박사과정생인 조교실장이 있고, 그 밑에 박사 석사 과정생들이 조교가 되어 학과 사무실의 행정을 보는 시스템이었다. (학과장이나 직원이 행정을 주로 책임지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러하다.) 조교실장은 조교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에게 반드시 조교 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미 조교 활동을 해야 등록금을 보전 받을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기에, 의례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 셋을 무척 당황케 했다. 요컨대 주5일 근무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급근무를 방학 내내, 2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과하지 않은가 싶어서 신입생이 셋이니 로테이션으로 근무를 하면 안될지 물었다. 그러자 사무실 쇼파에 앉아 이쪽을 귀담아 듣고 있었던지, 2학기쯤 위의 여선배 하나가 나직이 쟤 지금 뭐라는 거야, 라고 했다. 조교실장은 이것이 대학원의 전통이라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학원 측에서 신입생들에게 공부할 자리를 마련해줬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공부해라, 얼마나 좋으냐, 세상에 이렇게까지 해주는 대학원 선배들이 어디있냐, 이런 공간 내주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냐, 라고 꽤 긴 시간 동안 훈계했다. 동기인 K는 자신은 가족과 매번 3박4일의 휴가를 다녀오니 그때의 근무를 조정해달라고 했는데, 조교실장은 올해는 못가는 거지 뭐, 하고 무심히 답했다. 학과사무실에서 나온 우리 셋은 모두 짜증이 나 있었다. K와 S는 이게 말이 되냐고 입을 삐쭉 거리며 함께 어디론가 갔고, 나는 자취방으로 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대학원 조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도보로 약 30분 떨어진 곳에 살았다. 대학원 석사과정생 형님 둘, B(30)와 L(28)과 같이 자취했는데, 두 분은 모두 차가 있었고 나는 자전거 한 대뿐이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방을 얻으려 했으나 그들의 제안으로 같이 살게된 것이었다. B와 L 모두 학부 때 적당히 안면이 있는 선배들이기도 했고 거절할 명분이 딱히 없었다. 그들은 학교가 다소 멀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매일 아침 7시면 일어나 8시 전까지 학교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차나 골라타고 같이 가면 되지 않겠느냐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출근 첫날 둘은 8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성격이 조금 부드러운 B를 먼저 조심스레 깨웠는데, 그는 짜증을 내며 돌아 누웠다. 그래서 L을 깨우자 그는 어쨌든 나를 8시 5분까지 데려다 주었다. 8시 5분에 사무실 문을 열자 동기 둘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조교실장을 포함한 선배 둘이 나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왜 늦었는지 내게 물었고, 나는 늦잠을 잤다고 답했다. 걸레를 빨며 잠시 이등병 생활이 떠올랐다. 나는 그 이후에도 몇 번 룸메이트들을 깨우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고 7시에 일어나 씻고 짐을 챙기고 7시 반에 자전거를 탔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노트북을 들고 눈길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노트북이 박살나기도 했다. 그래도 8시까지 사무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사무실 청소는 메뉴얼이 있었다. 문을 열어 소화기로 고정시키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일단 빗자루로 바닥을 '잘' 쓸고, 대걸레를 빨아 와 바닥을 '잘' 닦고, 걸레로 눈이 닦는 모든 곳을 '잘' 훔쳐내고, 교수와 강사들을 응대할 커피를 내리고, 컴퓨터를 켜 공문을 확인해 출력해 놓고, 화분에 물을 주고 등등, 지금은 잘 생각도 나지 않지만 적어도 두 배는 더 메뉴얼이 있었다. 8시에 청소를 시작하면 거의 30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한 번은 청소를 하고 있는데 3학기 위의 석사과정생 J가 들어와 예전에는 흰장갑을 끼고 형광등 위를 훑어 보고 까맣게 되면 욕 먹었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 그지, 하며 나가기도 했다. 대학원의 갑을 관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는 원래 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좋게 말하는 법이 없어서 그저 이렇게 저렇게 잘하면 된다고 말하면 될 것을, 이렇게 하면 죽는다, 라며 내게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이건 군대에 갓 들어온 이등병을 갈굴 때 선임들이 기를 죽이기 위해 주로 하는 수법이었다. 이런 것을 당하며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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