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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피터] 아빠의 뽀뽀를 거부하는 딸의 용기

  • 입력 2021.07.05 15:31
  • 수정 2021.12.19 12:17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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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그의 딸 애순양

 

"아빠 딸. 뽀뽀 한 번 해주라"

 

 

"아빠!. 나 이제 그럴 나이 아니거든."

 

 

가끔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아빠 눈에는 여전히 다섯 살 꼬맹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뽀뽀를 해달라고 하지만 딸은 단호히 거부한다.

 

 

딸이 뽀뽀를 해주지 않으면 아빠는 우울하다. 이제 아빠를 싫어하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엄마하고 둘이서만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외롭기까지 한다.

 

 

어제 아내가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 수업을 듣고 와서 "당신이 딸에게 했던 행동이 잘못됐다"며 조목조목 지적했다. 가장 먼저 딸에게 '뽀뽀를 해달라'가 아니라 "아빠에게 뽀뽀해줄 수 있니?"라고 정중하게 물어봐야 한단다. 안는 것도 "아빠가 우리 딸 한 번 안아봐도 될까?"라고 꼭 묻고 허락을 구해야 한단다.

 

 

아빠가 딸에게 뽀뽀하고 안아주는데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욱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아내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집에서도 당당하게 아니라고 거부할 수 있어야 커서도 남자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싫다', '안 된다'를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간혹 여성들은 남자 친구가 키스나 몸을 요구하면 '내가 싫다고 하면 화를 내지 않을까?'. '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한다. 두려운 마음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공군 여군 중사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여군 중사는 상관의 성추행에 분명 싫다고 했다. 그러나 소속 부대와 상관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군 중사 사건은 딸을 키우는 아빠들에게는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만약 우리 딸이 당했다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싫다'고 말하면 멈춰야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너는 싫다고 말해도 나는 괜찮으니 계속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다. 어떤 남성들은 이런 행동을 남성적이라며 자랑을 한다. 이건 남성적인 게 아니라 범죄다.

 

 

굳이 페미니즘을 말할 필요도 없다. 인권 차원에서 보면 상대방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아빠와 딸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아빠가 딸에게 뽀뽀하는 것을 좋아해도 딸이 싫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내 딸이니 아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다. 딸을 키운 지 12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아빠는 딸의 뽀뽀를 받지 않아도, 딸이 안아 주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나중에 딸이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물어보고 딸아이의 허락을 구한다. 이게 정상이다.

 

 

아빠 딸, 그동안 아빠 마음대로 뽀뽀하고 안아서 미안해.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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