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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비극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

  • 입력 2014.05.09 15:45
  • 수정 2014.05.09 15:58
  • 기자명 권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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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긴 지 이십 여일이 지났다. 이 사건은 정혜신 박사의 말처럼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충격의 정신적 상흔을 우리에게 남길지 모른다. 대형 선박의 침몰과 구조 과정, 정부의 무책임, 선박회사의 안전불감증, 해운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카르텔 등은 단순한 재난사고를 넘어 한국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의 총체적 문제점들은 피해자 및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선박회사의 행태는 이윤을 위해서라면 승객의 안전까지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경악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으며 승무원들 역시 비정규직이거나 알바생 신분이었다. 선장의 탈출이 마녀사냥식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비정규직 선장이 상대적으로 배에 대한 책임감이나 승객에 대한 의무감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외화될 수 있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세월호 참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충격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먼저 국가의 변화를 눈여겨 봐야 한다. MB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는 철저하게 민영화되었다. 물론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적 국가운영이 본격화되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MB 정부는 국가의 사유화에 가까울 만큼 국가의 성격을 바꾸었다. 이는 국가의 성격이 전체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국가를 형성하고 작동시키는 구체적인 주체들, 즉 공무원이나 각종 공적 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근 '관피아'라는 말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공공의(public) 영역은 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국가체제에서는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국가의 민영화 논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결국 자본의 논리이지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의 욕망이 어디까지 침투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본과 인간, 이윤과 생명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대결할 때, 작금의 자본주의는 이미 자본과 이윤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고귀한 생명'으로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배가 침몰할 때 수많은 어린 생명이 물 속에 가라앉고 있을 때 선장과 해운사는 자신들의 이윤을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타산이라는 입장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설령 인간의 소중한 목숨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것이다. 역시 믿을 건 나뿐이라는 생각은 이웃이나 사회, 국가 등 모든 연대와 공동체를 거부할 것이다. 개인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강력한 탐욕의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대안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국가라는 시스템은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가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가치와 형태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 노동 등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다양한 영역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혹은 책임을 자꾸 묻지 말고 침묵하거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지만 일상이란 무엇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상은 아니다. 평온함이 일상의 특징이 아니다. 일상은 다양한 굴곡이 이어지고 희노애락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일상이 평화라는 생각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침묵 역시 마찬가지다. 침묵의 강요는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반복되어 왔다. 그것은 대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와 닮아 있다. 그리고 대의는 초월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알고 보면 매우 노골적인 국가권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입을 닫는 것이 침묵이 아니다. 침묵은 조용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소용돌이를 품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숨은 뜻을 발견할 때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은 침묵을 깨고 난 이후의 시간, 즉 행동할 때이다.

지금 우리가 할 것은 슬픔과 연민을 경험하고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가능하다. 문제는 참사 이후, 아니 참사를 목도하는 지금, 우리의 삶이 바뀌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우리의 삶이 바뀌는 일은 요원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은 세월호라는 비극의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캄캄한 극장을 나오는 순간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똑같은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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