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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다더니 어떻게 여행을 갔어?

  • 입력 2017.11.25 14:36
  • 수정 2018.04.03 13:53
  • 기자명 가끔 쓰는 이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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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몇 번 이상한 경험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소비 패턴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 검소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절약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올해로 일을 시작한 지 5년 차가 됐지만, 생활비는 대학생 시절보다 조금 늘어난 정도이니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돈을 안 쓰는 건 아니다. 다만, 가치 있다고 여기는 데에만 쓰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한 달에 한두 번 이상은 극장에 가고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도 정기 결제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1년에 세 번 이상은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온다. 회사에는 단출한 도시락을 싸서 다녀도 맛집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옷과 가방, 신발 등을 포함한 패션과 헤어, 화장품 등 미용에는 돈을 적게 쓰는 편이다. 좋아하는 책도 거의 사지 않는다. 어릴 때는 수집벽까지 있었지만, 어느 순간 책을 물질로 소유하는 일에는 회의를 느껴 아예 포기해버렸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기기에도 욕심이 없다.

이 같은 소비 습관이 자리 잡게 된 이유가 있다. 첫째, 돈을 별로 못 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직장을 고른 제1의 기준은 연봉이 아니었다. 업계 자체가 연봉이 낮은 편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곳을 가장 원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처럼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둘째, 남 눈치를 안 본다. 상대적으로 남의 평가에 크게 관심이 없다. 특히 나의 이름 모를 브랜드의 가방이나 스마트폰 기종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내게 호감을 느끼길 바라지만, 성품, 분위기, 실력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알맹이에 관해서다. 외적으로는 남들보다 조금 후져 보여도 괜찮다고 여긴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아끼지 않아도 쉽게 모았을 정도의 돈이지만. 고민 끝에 병곤과의 장기 여행을 결심했다. 지금이 아니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녀온 여행이 지난가을의 38일 유럽 여행이었다.


병곤과 내가 두세 달에 한 번씩 가던 단골 참치 집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가장 낮은 등급도 비싼 편이었지만, 질 좋은 참치가 무한 제공되기 때문에 기분을 내고 싶은 날이나 오랫동안 술을 마시고 싶을 때는 갈 만했다. 실장님은 유독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좋은 부위도 많이 주셨다. 매번 제일 저렴한 등급을 천천히 먹는데도 눈치 보이지 않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 아직 병곤이가 학생인데도 꾸준히 와주는 게 고맙다고 하셨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참치 집에 갔다. 여느 때처럼 실장님과 대화를 하다가 곧 한 달 정도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고 말했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너무 부럽다고 하셨다. 그런데,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장난일 거라고 여기면서 작은 선물이라도 사 오겠다고, 그러고 싶다고 했다. 실장님은 갑자기 정색하면서 선물은 됐고, 다음에는 조금 더 비싼 등급을 먹어 달라고 하셨다. 술에 취하셨던 것 같다. 유독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당황한 병곤과 나는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했지만, 둘이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알았다. 좋아하던 단골 술집을 하나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날 둘 다 술에 취한 채로 참치 집을 나와서 거리를 걸으면서 조금 서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스킨케어 영업을 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호기심이 생겨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또 어쩔 수 없이 여행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분의 눈이 빛났다. 자신의 삶에 투자하는 만큼 외모도 잘 관리할 것 같다면서 한 달에 5~10만 원꼴로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스킨케어 프로그램을 권하셨다. 상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미용에 쓰고 있는 지출 범위에서 초과하기 때문에 한 번에 결정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큰 금액을 바로 결제한 적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다시 여행 이야기를 꺼내면서 설득하셨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서툴러도 최선을 다하는 분 같아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행과 스킨케어를 계속 연결 짓던 부분은 뒤돌아서 다시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했다.

이렇게 내가 만난 몇몇 사람은 한 달 정도 유럽에 다녀올 정도면, 다른 부분에도 어느 정도 돈을 더 써야 한다거나 쓸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물가가 비싼 곳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평소에도 비싼 음식을 마음 놓고 사 먹거나 정기적으로 스킨케어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안이 좋지도 않고, 연봉이 높지도 않다. 앞으로 계속 돈을 벌겠지만, 목을 맬 생각은 없다. 이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관심 없는 부분에는 과감하게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매일 돈이 없다더니 어떻게 여행을 다녀왔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꼈기 때문에 다녀올 수 있었다.

돈이 없다는 말은 말 그대로 돈이 없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이기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있다. 두 가지 다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잇대, 이 연봉에 이 정도는 써야지”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여행에, 패션에, 굿즈에 돈을 쓰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좋아하는 일에 쓸 돈은 있는 법이니까. 돈이 없어도 장기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당당하게 자신의 욕구와 가치에 따라 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_가끔 쓰는 이다솜(brunch.co.kr/@yeeda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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