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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얼굴 공개한다고 우리가 안전해질까?

  • 입력 2017.10.14 13:20
  • 수정 2017.10.16 10:20
  • 기자명 곽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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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사건 맞다. 그러나 신상 공개는 전혀 다른 문제다. ⓒjtbc <썰전>

지난해 봄에 안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경찰이 언론에 공개한 것을 보고 이런 글을 썼었다.

소위 ‘어금니 아빠’와 관련해 한국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그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는데,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통해 절차를 거쳐서 한 것이라고 해서 그 신상정보 공개가 타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다니 말이 되나.

심지어 이 사람의 페이스북 글들조차 기삿거리가 되어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의 대형언론들에 의해 기사화가 되고 있던데 이게 얼마나 야만적인 인권유린인지 왜 다들 인지하지 못하는가. 언론의 윤리는 대중의 취향에 따라 지켜졌다 말았다 할 수 있는 그런 편리한 것이던가.

댓글을 보니 '가해자 인권 같은 소리 할 바에는 피해자 인권이나 보호해라', '드디어 가해자 인권 같은 헛소리를 안 하고 경찰이 일을 제대로 하는구나' 등의 말이 많던데, 인권은 마치 정해진 총량이 존재해서 한 주체의 인권을 보장하는 만큼 다른 주체의 인권이 덜 보장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신상 공개의 위험성. ⓒjtbc <썰전>

여성의 인권을 보장한다 해서 그만큼 남성의 인권이 덜 보장되는 게 아니듯, 가해자의 인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그만큼 피해자의 인권이 줄어드는 게 아니란 말이다. 가장 흉물스럽고 지탄받아야 할 존재조차 누리고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인권이며, 국가와 법은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이 피의자 얼굴공개 옹호 여론의 또 다른 주장은 '국민 안전을 위하여'이다.

이 사람이 현재 현상수배범도, 탈옥범도 아닌 상황에서 피의자의 얼굴을 전 국민이 알아야 할 당위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사람의 얼굴이 공개되어야 우리가 더 안전해진다는 말은 대체 어떤 지점에서 합리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안정은 그저 일시적 플라세보 효과일 뿐, 실질적 안전과 전혀 관련성이 없지 않은가?

+)

별개의 주제이지만,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도 흉악범죄를 저지르는구나"라는 반응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말에는 범죄를 비일상적인 특이현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투영된 굉장히 위험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특이현상으로만 보고 범죄자를 사회 부적응자로 보는 시선이야말로 범죄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 문제들을 은폐해버린다.

오히려 그 범죄의 "평범성"을 제대로 인지할 때 비로소 그러한 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마주할 수 있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들을 고민해볼 수 있다.

성범죄자를 "변태적 성욕을 가진 비정상적 존재"로만 볼 경우 우리 사회 도처에 깔린 다양한 성범죄 양상의 근본적 원인인 여성에 대한 억압과 가부장제의 폭력성이 은폐되어 버리며, 오히려 그 근본적 원인이 얼마나 일상에 녹아있는지를 인지하고 이에 대해 고찰할 때 비로소 성범죄에 대한 진짜 유의미한 근절이 시도될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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