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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구두와 장애신(神) 헤파이스토스

  • 입력 2017.08.04 16:44
  • 기자명 여강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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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유행 지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있어도 해진 옷이나 밑창이 다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5·18 국립묘지 참배 당시 우연히 찍힌 낡은 구두가 새삼 화제가 됐다.

보통 사람들도 그 정도 낡은 구두라면 주저 없이 새로 구입하기 마련인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닳고 해진 구두를, 그것도 공식 석상에 신고 나왔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이 더더욱 열광했던 것은 대통령의 소탈함만은 아니었다. 그 낡은 구두에 얽힌 사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그 닳고 해진 구두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제화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2년 '아지오'라는 수제화 전문 기업을 방문해 애로사항도 들어주고 구두 한 켤레도 구입했는데 그 구두를 여태 신고 있는 것이다. '아지오'는 2009년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몇 명이 경기도 파주에 모여 만든 구두공장으로 최고의 구두를 만들어 교회를 세우겠다던 사회적 기업이었다.

처음에는 장애인 직업교육으로 시작했지만 직원들의 솜씨가 늘고 입소문이 나면서 독자 브랜드까지 만든 케이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이 구두를 살 수 없다. 장애인이 만든 구두라는 편견 때문이었는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2013년 폐업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이 낡은 구두 한 켤레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필자의 감성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스 신화 속 지체장애신[神] 헤파이스토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5·18 국립묘지 참배 당시 찍힌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삐딱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반대를 외치면서도 정작 장애인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고 하면 기를 쓰고 막아선다.

삐딱한 시선이 어디 장애인에게만 향해 있겠는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머리 따로 가슴 따로다. 야금술과 수공업, 조각 등을 관장하는 헤파이스토스도 태어날 때부터 장애신은 아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다리를 절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애신 헤파이스토스는 어떤 신보다 당당했다

이야기 1.

헤라가 어떤 남성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낳은 아들이 헤파이스토스였다. 헤라는 아기가 너무 작고 못생긴 데다 시끄럽게 울어대자 올림포스 꼭대기에서 아래로 던져버렸다. 헤파이스토스는 하루 종일 추락하여 바다에 떨어졌는데 이때 다리를 다쳐 장애를 가지게 된다.

이야기 2.

헤파이스토스는 헤라와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헤라와 제우스가 부부싸움을 할 때 헤파이스토스가 어머니인 헤라 편을 들자 화가 난 제우스는 아들을 하늘에서 던져버렸다. 이번에도 헤파이스토스는 하루 종일 추락하다 섬에 떨어졌고 그 후로 다리를 절룩거리게 되었다.

▲제우스의 번개창을 만들고 있는 헤파이스토스. 사진-구글 검색

천륜을 저버린 부모를 만나 장애신이 되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부단한 노력으로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이 된다. 그는 야금술의 장인이 되어 올림포스 궁전은 물론 주요 신들의 무기와 갑옷을 만들었다. 제우스의 번개, 아테나의 방패,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 등이 모두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이었다.

편견도 청산되어야 할 적폐다

비록 장애신이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결혼한다. 제우스가 자식을 버렸던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맺어준 인연이었다. 하지만 신들의 세상이나 인간들의 세상이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건 별반 차이가 없었다.

헤파이스토스의 당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못생긴 외모와 장애로 인해 많은 신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아내인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워 자식까지 낳는다.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헤파이스토스가 아니었다. 태양신 헬리오스로부터 둘의 간통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어 아프로디테의 침대에 설치해 놓고 집을 비웠다.

헤파이스토스가 집을 비우자 아프로디테는 어김없이 아레스를 불러 불륜 행각을 벌이다 그물에 걸렸고 헤파이스토스는 모든 신들을 불러 둘의 불륜 현장을 공개했다. 포세이돈의 끈질긴 설득이 있고 나서야 헤파이스토스는 둘을 그물에서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추남 헤파이스토스와 최고의 미녀 아프로디테. 사진-구글 검색

새 정부 최고의 화두는 적폐 청산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행해진 정치적, 사회적 범죄행위나 인습이 그 대상이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각종 일상에서도 갑질 행위들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데이트 폭력 관련 뉴스들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갑질이나 데이트 폭력도 결국에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편견이 언어적인 때로는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반민주적인 사고나 관습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편견도 분명히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적폐 중 하나다. 장애인이나 여성, 동성애자,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당당히 양지로 나올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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