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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징집률 90%까지 올린다는 정부, 이게 무슨 뜻이냐고?

  • 입력 2016.05.25 12:12
  • 수정 2016.05.25 13:58
  • 기자명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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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2014년 여름. 자살 우려자 수용소라고 할 수 있는 전방 군단의 그린 캠프를 방문했을 때 봤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입구에는 심신을 쉬게 하는 ‘옹달샘 같은 곳’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막상 입소한 병사들은 그 반대로 심신이 망가진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완전히 눈동자가 풀려서 뭘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조차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춘들. 동행했던 사단장 출신의 한 예비역 장성은 자신이 근무했던 사단에서 운영했던 그린 캠프 분위기와 유사하다며 혀를 찼습니다.
이 그린 캠프는 부모 동의가 있어야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야전에는 “내 자식을 그런 캠프에 보낼 수 없다”고 부모가 반대해서 그린 캠프에 입소하지 않은 채 버젓이 근무하고 있는 비슷한 병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린 캠프에 입소하는 병사의 숫자는 자꾸 늘어나 작년에는 3,000 명을 넘어섰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린 캠프 교육을 다 받은 뒤에 다시 부대로 돌아가는 병사의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 군단장은 이들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며 “부하 지휘관들에게 그 시한폭탄을 돌려보낼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그린 캠프는 인간불량품의 분리수거장인 것입니다.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날, 반짝반짝 빛이 나야 할 청춘의 한 시절을 깊은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하는 청년들의 슬픈 사연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MBC

지난주에 국방부가 “2023년까지 병역 대체·전환 복무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거센 반발을 맞딱드린 뒤에 “정식으로 결정된 안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징집 대상자의 현역 판정률을 90%까지 늘리겠다”며 또 새로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현재 87%인 현역 판정률을 더 높여서 이제는 병역면제에 해당되는 신체허약자의 현역 입영을 더 늘리겠다는 발상입니다.
201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21세 남자는 36만 명입니다. 그런데 2022년이면 11만 명이 줄어들어 25만 명이 됩니다. 인구 절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후년부터는 서서히 병역자원 부족사태가 시작되어 다음 대통령 임기 중반쯤이면 군의 존립이 위협받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딱히 새로울 것 없이 이미 20년 전에 다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징집률 90%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고학력자들이 병역특례로 현역에서 제외되며 발생할 병력 부족분을 정신적·신체적 장애인으로 채우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역대 정부는 2000년대에 국방개혁안을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개혁이란 말은 사라졌고 병력감축과 부대구조 개편과 같은 국방개혁은 다음 대통령에게 떠넘겨졌습니다.


ⓒJTBC

김대중 정부는 2015년까지 50만 명으로 감군하겠다고 한 <국방기본정책서-국방개혁 2015>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2020년까지 50만 명으로 감군하겠다는 <국방개혁 2020>을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그 전임 정부의 개혁 목표는 계승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진행되던 국방개혁이 멈췄고 모든 개혁목표가 2030년으로 미루어졌습니다.
임기 중에 인구절벽이 본격화되어 가장 개혁이 절실한 박근혜 정부에서 말입니다. 아무리 개혁안을 만들어도 다 뒤집어버리는 행태가 반복되니까 군의 인력 운영은 갈수록 질곡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국가안보를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나 조기 퇴출 등 가혹한 개혁을 진행하면서 정작 개혁이 시급한 군은 그 반대로 운영해 온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44만 명의 병사를 포함한 62만 명의 대군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괴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장성 숫자를 감축한다던 공언도 다 헛소리가 되었고, 거꾸로 직업군인의 계급 정년을 연장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민간 기업이었으면 여러 번 망했을 것입니다. 지금 군은 자체 개혁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징집률 90%라는 용어는 군의 파국을 예고하는 묵시록이나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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