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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방기하는 어른들과 연대하는 아이들

  • 입력 2016.01.23 14:51
  • 수정 2016.01.23 22:09
  • 기자명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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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앞서 1 : 저는 <스타워즈> 덕후를 자처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젠 ‘<스타워즈>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과거형이 된 <스타워즈> 확장세계관(Expanded Universe. 이하 ‘EU’)에 대해선 단편적인 정보 외엔 접해본 적이 없고, 현재형인 ‘<스타워즈> 캐논’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제대로 접한 <스타워즈>의 세계는 오로지 극장판으로 나온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새로운 희망>,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과 프리퀄 삼부작(<보이지 않는 위협>, <클론의 습격>, <시스의 복수>),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이 <스타워즈> 세계관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혹 제가 명백한 팩트를 틀렸다면, 댓글로 가르침을 주실 것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들어가기 앞서 2 : 이 글 자체가 거대한 스포일러입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7편의 극장판과 TV시리즈 <스타워즈: 저항군>을 아우르는 스포일러의 향연이니, 원치 않는 분은 피해주십시오.

들어가기 앞서 3 : 시퀄 3부작의 첫 편이 이제 막 공개되었을 뿐입니다. 제가 지금 쓰는 리뷰의 많은 부분은 의도적으로 비워진 것으로 보이는 플롯 구멍들을 제 예측과 상상으로 채운 불확실한 전망에 기대고 있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4 : 이 글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 저작자에게 있습니다. Rights of all the images used in this post belong to their respective owners.

들어가기 앞서 5 : 매우 긴 글이 될 겁니다. 이 글의 끝까지 함께 해주시는 분들께, 포스가 함께 하기를.


무책임한 시대, 버려지고 착취 당하는 아이들

“루크 스카이워커? 그냥 신화(Myth)인 줄로만 알았는데?” BB-8이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를 찾을 수 있는 지도를 지니고 있다는 핀(존 보예가)의 말에,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화들짝 놀라 외친다. 자쿠 행성이 고작 30년 전 활약했던 영웅의 실존 여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만큼 오지인 걸까? 설마. 설정 상 은하제국과 저항군이 마지막으로 혈전을 벌인 곳이 다름 아닌 자쿠 행성인데. 레이가 집을 삼은 건 폐허가 된 AT-AT고, 그의 직업은 스타 디스트로이어 잔해에서 쓸만한 부품을 떼어다 파는 넝마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루크와 한 솔로(해리슨 포드)와 레아(캐리 피셔)의 활약상 따위야 어떤 식으로 잊혀지고 왜곡되든 별 상관이 없을 만큼 자쿠 행성의 현실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타투인 행성이야 아우터 림 촌구석이었고 공권력이 닿기 어려운 동네여서 어쩔 수 없었다 치자. 자쿠는 저항군이 은하제국을 꺾고 신 공화국의 초석을 다진 기념비적인 승전의 현장인데도, 신 공화국은 자쿠 행성의 빈곤과 참상을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폐허로 방치된 자쿠에서 사람들은 사체에 꼬인 구더기처럼 살아간다. 이들에게 제국과 공화국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분노와 공포로부터 다크 사이드가 발현한다는데, 왜 신 공화국은 은하계의 삶의 조건 개선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일까? 그렇게 라이트 사이드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레이가 자라났다. 돌아오지 않을 가족을 기다렸던 날들을 한쪽 벽 가득히 빗금 쳐 기록해가며.


불모의 땅, 버려진 아이. © 2015 Lucasfilm


<스타워즈> 사가의 주인공들은 늘 사막 행성에서 반쯤은 고아인 상태로 시작하지만, 레이만큼 철저히 버려진 주인공은 없었다. 루크에겐 삼촌(필 브라운)과 숙모(쉴라 프레이저), 먼 발치에서 루크를 지켜보는 오비-완 케노비(알렉 기네스)가 있었고, 아나킨(제이크 로이드)에겐 엄마(퍼닐라 오거스트)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 나온 정보들을 아무리 취합해봐도 레이에겐 가디언이 없다. 멀리서 로어 산 테카(막스 폰 시도우)가 지켜보고 있었을지 모르나, 레이 입장에선 혼자 버려진 상황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신 공화국과 라이트 사이드가 자쿠 행성을 외면했듯, 아직 밝혀지지 않은 레이의 가족은 –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 자쿠 행성에 레이를 버려 뒀다.
FN-2187, 혹은 핀에게도 시대는 무책임하다. 핀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납치되어 스톰트루퍼로 육성되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는 그 교육조차 제대로 안 된 탓에 첫 전투부터 PTSD를 얻고 낙오자가 되었다. 역대 시리즈에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착취만 하는 병영제도가 존재한 적이 있었나? 프리퀄 시대 은하공화국의 클론트루퍼는 애초에 감정이 절제된 채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이었다. 클론 제작과 관련한 생명공학적 윤리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자유의지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을 영아 납치해 강제징병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이 편이 더 윤리적이다. (심지어는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넘어간 후엔 희망자에게 전역을 허락하기까지 했다.) 오리지널 시대 은하제국의 스톰트루퍼? 그들은 자원병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깨어난 포스>에 만족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적하는 약점인 “카리스마 없는 악역”인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버) 또한 마찬가지다. 다스 베이더(데이비드 프라우스/제임스 얼 존스)를 보라. 팰퍼틴/다스 시디어스(이언 맥디아미드)은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가 제다이 기사로서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갖출 때까지 오랜 시간 참고 기다리며 그의 불안을 자극해 시스로 유도했다. 역대 가장 강한 시스 중 하나인 두쿠 백작(크리스토퍼 리) 또한 전성기엔 요다(프랭크 오즈)만이 상대할 수 있는 최고의 제다이였다. 그러나 스노크(앤디 서키스)가 ‘렌 기사단 중 최강의 존재’라 추켜 세우며 앞장 세웠던 카일로 렌은, 사실 수련도 덜 끝난 애송이였다.
그러니까 영화가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ABY(야빈 전투 후) 34년은, 진영을 막론하고 모두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몰염치의 시대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들을 책임져 주지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도 않는 환경을 견디던 핀과 레이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 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함께 영화를 본 동행인은 핀과 레이를 보고 “마치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본 대상을 부모로 인식하고 따르는 오리” 같다고 평했다.) 핀은 밖에서 알 껍질을 깨는 걸 도와줄 줄탁동시(啐啄同時)의 파트너로 포 데머론(오스카 아이작)을 선택했고, FN-2187이란 이름 대신 포 데머론이 지어준 이름 ‘핀’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몸 담았던 전함의 터보레이저 포를 박살내곤, 리틀 야구에서 3루타를 치고는 칭찬 받고 싶어 관중석의 부모에게 달려간 소년처럼 포 데머론에게 외친다. “방금 그거 봤어요?! 그거 봤냐고요!”(Did you see it! Did You See It!)
레이 또한 마찬가지다. 엑스윙 파일럿 차림의 인형을 가지고 놀고, 엑스윙 파일럿의 헬멧을 쓰고 있던 그에게 핀은 – 적어도 그가 기억하는 한 - 처음으로 만나는 ‘살아있는 저항군’이자 처음으로 가져본 동료였다. 한 솔로와 츄바카(피터 메이휴)는 살면서 처음 만난 ‘좋은 어른’이었다. (레이는 자쿠 시절 넝마주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연상의 어른과 감정적 교류를 나눈 것은 한 솔로와 츄바카가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전반부 내내 자쿠에 돌아가야 한다 말하고, 마즈 카나타(루피타 뇽오)의 설명에도 아나킨의 라이트세이버를 쥐기 거부하며 도망쳤던 레이가 후반부에 목숨을 걸고 라이트세이버 듀얼에 임했던 건 다른 어떤 대의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처음으로 의미를 부여한 이들을 해친 카일로 렌에 대한 복수심에 가깝다.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고 손을 내밀어주었기에 간신히 서로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의 세계 안으로 편입됐는데, 카일로 렌이 자신을 다시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무책임의 황야로 돌려보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력갱생의 시대, 연대를 통해 너의 깃발을 세워라배운 적도 없는데 말년의 오비-완 수준으로 포스를 운용하는 레이는 그 탓에 ‘완성된 캐릭터’란 비판을 듣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영화 내내 꾸준히 성장한다. 단순히 그가 포스에 눈을 뜨고 그것을 잘 운용해 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는 떠난 가족이 언젠간 돌아올 거라 믿으며 과거를 살던 이였고, 현실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이였다. 그가 현실에 참여하려는 한계는 딱 BB-8을 저항군에게 데려다 주는 것까지 였다. 그러던 그는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대상들이 눈 앞에서 다치는 광경을 보고, 해본 적도 없거니와 승산도 없는 라이트세이버 듀얼에 뛰어들었다. 두려움에 가득 찼음에도 결연한 눈빛으로.

레이도 알고 있었다. 그가 꿈꾸는 ‘가족이 다시 돌아와 행복을 복원하는 미래’ 같은 것은 오지 않으리란 걸. 레이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기다림으로써 현실직시를 끊임없이 유예한다. 영화 전반부 그가 BB-8에게 이야기한 “나도 기다림이 뭔지 너무 잘 아는 사람(I know all about waiting.)”이란 말은, 반복된 유예를 통해 예정된 고립과 파국을 외면하는 수동적 태도의 고백이다. 그러나 후반부 레이는 싸움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싸움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싸움의 주체가 된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BB-8의 저항군 기지로의 귀환)을 지키기 위해, 자기기만적 낙관을 버리고 제 의지로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깨어난 건 포스만이 아니라, 레이의 의지다.
레이가 현실도피를 끝내고 의지를 세웠다면, 핀은 현실순응을 끝내고 의지를 세운다. 비록 도망치긴 했으나 핀은 퍼스트 오더의 일원이었기에 그 위력을 잘 알고, 그래서 전반부 내내 더 외진 곳으로 도망치려 했다. “퍼스트 오더와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현실주의자 핀에게 가능한 것은 둘 중 하나다. 체제에 부역하거나 도망가거나. 체제로부터 도망가기를 택했으니, 마즈가 주선해 준 우주선을 타고 아우터 림 구석의 외딴 행성으로 도망가면 될 일이다. 스타킬러 베이스가 공화국 행성을 파괴하든 말든 알 게 뭔가. 허나 참상을 목격한 뒤 그는 도망을 멈추곤 레이를 구하기 위해 스타킬러 베이스로 갈 것을 자청한다. 체제 순응과 도피라는 두 가지 선택지 대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체제를 상대로 싸울 것을 택한 것이다.


연대를 통해 도망을 멈추고 체제와 싸우길 선택한 소년. © 2015 Lucasfilm


그렇게 보면 이 작품에서 제일 놀라운 점은 레이가 배운 적도 없는 포스를 운용하는 것이나, 일개 사병에 불과했던 핀이 사령관인 카일로 렌과 몇 합이라도 겨룰 수 있던 것이 아니다. 가장 무책임하게 버려지고 착취당한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곤 연대함으로써 예언이나 멘토를 대신했다는 것, 그 연대의 힘으로 현실도피나 현실순응이라는 폭력적인 양자택일의 답안지를 찢었단 점이야말로 가장 경이로운 점이다. 에피소드 1이 개봉할 때 핵심 홍보 카피는 “모든 세대에겐 전설이 있다”였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도착한 이 세대의 전설은 “시대가 외면한 아이들이 시대를 바꾼다.”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똑같이 무책임하게 착취당하는 대상인 카일로 렌은 왜 <깨어난 포스>에서는 시대를 바꾸는 주역이 되지 못하고 끝내 패배하는 것일까?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다크 사이드고 주인공은 라이트 사이드니까. 하지만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카일로 렌은 아버지의 나약함을 혐오하고 다크 사이드를 열망한다. 그런데 딱하게도 그 다크 사이드로의 추동조차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만으론 해낼 수 없다. 그가 ‘벤 솔로’이길 거부하며 ‘카일로 렌’으로서 아버지를 베어 놓고도 외할아버지 다스 베이더의 라이트세이버를 손에 넣어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광경을 보라. 카일로 렌은 더 강력한 아버지(다스 베이더), 더 거대한 프로파간다(퍼스트 오더)와의 자기동일시 없인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다.


더 거대한 존재와의 자기동일시 없인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카일로 렌.
© 2015 Lucasfilm



“반역자!”(Traitor!) 방금 막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살해한 자가 외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카일로 렌은 핀을 향해 소리친다. 그럴 시간이 있었다면 포스 그립으로 잡아서 제압하는 것이 훨씬 빨랐을 테다. 카일로 렌은 왜 굳이 시간과 힘을 낭비해가며 핀을 쫓아가 말을 섞어가며 패배의 빌미를 줬을까? 첫째. 본인도 제 친부살해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 그는 자신이 마음 놓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이를 찾아 ‘반역자’라 호명하고 처단함으로써 배신은 자기가 아니라 핀이 한 것이라 외쳐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배신을 (더 거대한 아버지로서의 국가인 퍼스트 오더에 대한) 핀의 배신으로 덮으려는 시도다. 둘째. 핀을 꺾어야만 벤이 아니라 카일로 렌으로 살기로 한 제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퍼스트 오더가 준 이름 FN-2187을 버리고 자유인 ‘핀’으로 살아가길 택한 핀을 꺾어야, 아버지가 물려준 성 ‘솔로’를 버리고 ‘카일로 렌’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카일로 렌은 핀을 쓰러뜨리는 것에는 성공하나 핀과 연대한 자유인인 레이까지 이기진 못한다. 레이를 궁지에 몰아넣은 순간, 카일로 렌은 레이에게 “넌 아직 포스를 잘 모르니 알려줄 스승이 필요하다.”며 회유의 손을 내민다. 그러나 단순히 강해지게 해주겠다는 것을 넘어서는 다른 제안을 할 수는 없었다. 카일로 렌 본인부터가 외할아버지 다스 베이더를 호명하는 일 없이 홀로서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자기 주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로 한 자유인을 설득할 수 있을 리 없다. 레이는 카일로 렌에게 유혹되는 대신 제 안의 잠재력을 들여다보곤 카일로 렌을 쓰러뜨린다. 남의 싸움의 도구가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제 싸움을 살아내기로 결심한 자유인들의 승리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전이되는 깨달음
자기 깃발 아래서 싸우는 것의 중요함을 논하려면 다시 무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종종 잔인할 정도로 무책임했다. 요다는 다스 시디어스에게 패배하고 오더66으로 제다이의 씨가 마르자 대고바 행성에 몸을 숨긴 채 세월을 보냈다. 오비-완은 먼 발치에서 루크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것 하나로 딱히 요다보다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엘더란이 데스 스타에 산산조각이 나는 동안 오비-완은 무엇을 했는가? 케이넌 제러스(프레디 프린즈 주니어)나 아소카 타노(애슐리 엑스타인)가 저항군 창설과 투쟁을 위해 목숨 걸고 뛰고 있는 동안, 이들은 명맥이 끊긴 제다이란 이름에만 얽매여 세상을 등지고 숨어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위대한 스승,

그러나 한번도 자신이 세상을 등지고 은거한 걸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 1980 Lucasfilm



이를 모든 제다이들의 완벽한 스승으로 추앙받는 요다나 오비-완조차도 한계와 허물을 지닌 존재라고 품어내는 넉넉함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스타워즈>의 세계가 이렇게 한계를 지닌 존재들에게 그 한계를 묻는 대신 마냥 우러러 볼 스승으로 추앙한다는 건 분명 껄끄러운 문제였다. 다스 베이더를 처단하라는 미션을 하필이면 그 친아들인 루크에게 맡기는 요다와 오비-완의 무신경함에 대해 일부 팬들이 불만을 드러낸 적은 있었지만, 공식 세계관은 이를 제대로 해명하거나 비판한 적이 없다. 그저 루크와 스카이워커 가문이 걸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말 속에는 모든 비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무책임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었다.
<깨어난 포스>는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것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어떤 내용이 전개되느냐에 따라 완전 틀린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솔로는 한 때 저항군의 장군이었으나, 지금은 젊은 시절로 퇴행해 스스로 “잘 할 줄 아는 딱 한 가지”라 평한 밀수꾼의 삶으로 돌아간 상태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세월을 보냈는지 ‘신화’로나마 루크를 접해본 적 있는 레이조차 한 솔로는 유명한 밀수꾼으로만 알고 있다. “당신이 바로 ‘그’ 한 솔로냐”는 말에 “한 때는 그랬지(I used to be).”라고 답하는 그는, 자신에 대한 세간의 기억이나 받아 마땅할 과거의 공로에 대한 평가조차 거북스러워 한다. 그런 그를 일깨워주는 건 다름 아닌 레이와 핀이다.
그가 ‘전쟁 영웅’이자 루크 스카이워커의 동료란 사실을 일깨워주며 회피하지 말 것을 주문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 한 솔로를 ‘적’이라 배웠을 - 스톰트루퍼 출신 핀이다. 타인을 투자금 사기나 칠 상대로 간주하며 살아온 한 솔로에게 다시 동료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건 레이였다. (혹자는 한 솔로가 레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며 레이가 모종의 이유로 기억이 지워진 한 솔로의 딸이 아닐까 말한다. 정말? 그 장면이 나오기 5분전쯤엔 대충 포드에 레이와 핀을 태워 가까운 행성에 떨궈주고 가려 했던 한 솔로인데?) 한 솔로는 핀과 레이에게 의지가 되는 멘토가 되어주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애송이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한 솔로는 투쟁하고 연대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리부트할 수 있었다.



"내가 왕년에 루크를 태우고 밀레니엄 팔콘을 몰 때는 말이야..."
같은 말 따위는 하지 않는 한 솔로.
© 2015 Lucasfilm


우리의 주인공 루크 또한 최초의 제다이 사원을 찾아 떠났다는 풍문 만을 남긴 채 자리를 비운 상태다. 많은 이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다크 사이드를 제압할 방도를 찾느라 자리를 비운 것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 해도 자신의 쌍둥이 누이가 자신을 애타게 찾느라 저항군 최고의 파일럿을 위험에 빠뜨려가며 도박을 걸고,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로어 산 테카와 마을 주민 전체가 몰살을 당하고, 은하계 반대편에서 자신의 가장 절친한 전우이자 매형인 남자가 죽어가는 동안 그가 마냥 잠적하고 있었단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에피소드 5에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수련이 더 필요하다는 요다의 만류도 뿌리치고 떠났던 루크다.)
그런 루크를 찾아가 아나킨의 라이트세이버를 전해준 것은 레아도 C3PO도, 같이 밀레니엄 팔콘을 몰고 간 츄바카도 아닌 레이다. 이어질 다음 에피소드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루크에게 가르침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싸움에서 자리를 비운 루크를 찾아가 그에게 다시 이 싸움에 뛰어 들어야 할 명분을 일깨워 준 것은 레이인 것이다. 루크는 요다처럼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로 제자를 맞이하는 대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레이를 본다. <깨어난 포스>에서 무책임한 시대를 물려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마냥 자신들을 따라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가르침은 세대를 따라 수직으로 내려가는 대신 서로를 자극하고 일깨워주며 수평으로 전이된다. 거대한 프로파간다로 자신을 안심시켜 줄 어른에게 무비판적으로 기댔던 카일로 렌만이, 새 세대의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패배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내 눈엔 이게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부의 비판에 대한 항변 1 - 무슨 싸움? 유일한 싸움?혹자는 <깨어난 포스>를 보며 한숨을 쉰다. 대표적으론 <포브스>에 “'Star Wars: The Force Awakens,' 'Spectre' And The Most Disappointing Films Of 2015” 기사를 기고한 평론가 스콧 멘델슨을 꼽을 수 있다. 멘델슨은 <깨어난 포스>가 6편의 극장판 동안 몰락과 구원을 오가며 간신히 해피엔딩으로 완결된 서사를 사보타주하면서 시작한다며 화를 냈다. 한과 레아의 아들이 다시 은하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악의 사도가 된다니, 한과 레아가 이어져선 안 되는 거였단 말인가? 루크가 제다이 교육을 시킨 아이가 그 기술로 다른 제다이 영링들을 베었다니, 루크는 후계를 길러내선 안 되는 거였나? 그렇게 많은 희생 끝에 간신히 다크 사이드를 이겨냈는데, 왜 그 모든 성취들이 무로 돌아갔단 말인가?
그러나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뒤 고민 끝에 폐기해버린 <스타워즈> EU를 봤다면 멘델슨도 그렇게 이야기하진 못했으리라. EU에서 다크 사이드는 <깨어난 포스>에서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악랄하게 다시 돌아오는 존재였으니까. 분명 다스 베이더의 손에 낙사한 줄 알았던 다스 시디어스는 자꾸만 클론을 만들어 옮겨 타며 되살아났다. 오비-완처럼 성형수술을 하고 등장한 제국의 첩자, 클라우드 시티에서 잘려나간 루크의 오른손을 이용해 만든 클론 ‘루우크’ 스카이워커, 심지어는 신 제국에 이르기까지, EU에서 다크 사이드는 반복해서 무찔러도 거푸 과거의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다크 사이드가 완전히 패퇴한 적은, 멘델슨이 원했던 “데스 스타는 파괴되고 모두가 행복을 찾는” 안정적인 결말은 애초에 없었다.
시지포스 같은 투쟁, 기껏 일궈낸 성취가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 짓을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1000년 넘게 술집을 운영해 온 마즈 카나타는 답한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결국 단 하나의 싸움(the only fight)이라고. 마즈는 지난 1000년간 어둠이 그 이름과 모습을 바꿔가며 번성하는 것을 지켜봤다. 시스, 제국, 퍼스트 오더. 라이트 사이드 또한 공화국과 제다이 기사단, 저항군, 신 공화국 등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대응해왔다. 빛과 어둠이 끊임 없이 서로를 견제해 온 것이 마즈가 목격한 지난 1000년간의 은하계의 역사고, 세상의 모든 싸움은 결국 빛과 어둠, 선과 악의 항구적 싸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다시 말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모든 승리는 불가역적인 성취라기보단 그저 유일한 싸움의 한 국면에 가깝다는 뜻이다.


"유일한 싸움이야. 우리 모두 다 싸워야 해."
© 2015 Lucasfilm


이런 맥락 안에서, 우린 조심스레 시대의 무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걸 고려해 볼 수 있다. 선과 악의 싸움은 늘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긴장관계 속에 있기에, 아무리 최선을 다해 싸웠다 해도 그 세대의 성취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깨어난 포스>처럼, 아이들에게 더 무책임하고 황폐화된 세상을 물려주는 결과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니 자신들이 한 때 이뤘던 성취에 도취되어 과거의 계급장을 붙인 채 싸움의 주도권을 청구할 이유도 없고, 그 성취가 죄다 사라졌다는 이유로 싸움을 포기하고 좌절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겸허하게, 그러나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내는 것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3인방 중 이 태도를 견지해낸 유일한 어른은 레아다. 레아는 휴전을 선택한 신 공화국 진영 안에서 제국의 잔당들을 끝끝내 소탕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탓에 제국이 퍼스트 오더로 부활하고 자신의 아들이 다크 사이드로 넘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남편은 그 충격으로 자신을 떠나 우주의 변방을 떠돌고, 쌍둥이 동생은 잠적했다. 그럼에도 레아는 좌절을 핑계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주였다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바라지도 않는다. (C3PO는 그를 ‘프린세스’라고 부르려다 정정하고 ‘제네럴’이라고 부른다. 레아가 ‘프린세스’라는 호칭을 의식적으로 피해왔음을 암시하는 묘사다.) 그리곤 루크를 찾아 라이트세이버를 전해주는 중차대한 일을 레이의 손에 맡긴다. 라이트세이버가 선택한 자가, 새 시대의 새로운 미션을 수행할 주역이 자신이 아닌 레이라는 걸 인정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에겐 겸허한 자세로 지금 당장의 싸움을 외면하지 않고 싸워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겸허하게, 지치지 않고 싸워준 어른의 풍모.
© 2015 Lucasfilm


한 솔로 또한 싸움에 돌아오되 그 어떠한 계급도 없는 자유인의 자격으로 참전한다. 그는 스타킬러 베이스에서 청소 말곤 한 것이 없는 핀의 말을 온전히 믿고 캡틴 파즈마(그웬돌린 크리스티)를 납치하는 계획에 동참했으며, 포기했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간 방기했던 아버지의 자리에 가서 섰다. 그리고 비극적이고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다. 늦게나마 제 몫의 싸움을 피하지 않고 연대를 실천함으로써 무책임했던 세월을 보속한 셈이다. 이제 오리지널의 세 영웅 중 ‘돌아와야 할’ 사람은 오직 루크 뿐이다. 우리는 레이가 루크를 찾아 그의 전의를 깨우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극장을 나섰다. 2017년 개봉할 여덟 번째 극장판에서 제 몫의 싸움을 하러 전선으로 복귀하는 루크를 만나게 될 것이며, 운이 좋다면 그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려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루크 스카이워커인 채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될 수 있을 지 모른다. 길고 지리하며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듯 해 허망해도 끝내 포기해선 안 되는 유일한 싸움을.

일부의 비판에 대한 항변 2 - 그리고, 우리의 시대이 글을 쓰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는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지유석씨가 기고한 영화평 “시대정신 빈곤한데... 비주얼만 깨어났나”였다. 지유석씨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베트남전 패전과 소련 팽창의 악몽에 시달리던 미국의 자화상을 초라한 저항군에게 투사하는 동시에 저항군이 상징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를 노래하는 작품으로, 은하공화국이 제국으로 전락하는 프리퀄 시리즈를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며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점점 키워가던 부시 행정부 당시의 미국을 반성적으로 반영한 작품으로 해석했다. 그에 비해 이번 작품에선 거대 정치 체제에 대한 은유를 하지 않았기에 지유석씨는 <깨어난 포스>를 “훌륭한 오락일 수는 있겠으나,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는”, “오리지널의 아우라에 기대 돈벌이를 시도”하는 영화라고 평가를 내렸다.
가장 기본적인 층위에서부터 몇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스타워즈> 시리즈는 현실정치에 대한 반영이기보단 신화의 원형질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조지 루카스가 써내려 간 새 시대의 신화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둘째, 영화를 통해 당대를 은유할 것인가 아닌가는 온전히 창작자가 결정할 일이다. 셋째, ‘오래 전 머나먼 은하계에서’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벌어진 일들을 다루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실정치를 담아냈느냐 아니냐로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현실 반영 여부만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현실세계에 대한 은유의 틀 안에만 가둬 둠으로써 다양하게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지유석씨처럼 영화를 당대의 반영으로 해석한다 해도 이 작품을 2015년의 시대정신을 훌륭하게 담아낸 영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반론의 요체다. 앞선 역사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가 황량한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광경은 <깨어난 포스> 속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문제이다. 세계금융위기의 여진 속에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며 독립을 포기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차브’라는 돌출적인 존재를 비웃는 것으로 전체 실업률보다 3배 높은 세대별 실업률을 애써 감추는 영국의 20대, 미래에 대한 비관에 모든 희망이나 야심을 버린 결과 ‘그럭저럭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된 일본의 사토리 세대, 오랜 세월 동안 제3제국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성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끝내 준동하는 네오 나치와 파기다를 막지 못한 독일, 그리고 ‘죽창’, ‘탈조센’이란 단어로 체념과 리셋 증후군에 시달리는 한국의 ‘흙수저’까지.


꿈도 희망도 없는 영국 하류층 청년 계급 차브(Chav) 청년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 2014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부동산에 기댄 금융파생상품 버블이 전지구적으로 훅하고 꺼지자, 그 자리에 남은 건 노동유연화와 극심한 빈부격차, 무한생존경쟁 탓에 파편화되어 서로를 미워하게 된 대중뿐이었다. 앞선 성취를 이룩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세대들 – 386세대, 68혁명 세대, 베이비붐 세대 - 은 자신들의 성취가 무너져 내린 자리에서 절망하고 주저 앉았다. 젊은 세대들은 체제에 의해 방치되거나 – 흙수저, 차브, 사토리 – 혹은 가볍게 착취할 대상 – 밀레니얼 – 으로 전락했다. 마음 둘 곳을 잃은 젊은이 중 몇몇은 더 거대하고 강력한 힘과 질서를 약속하는 극우 국가주의 프로파간다 – 파기다, 네오 나치, 재특회, IS, 일베 – 에 몸을 맡겼다. 이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파편화된 이들끼리 연대를 복원해 자신의 정치를 하는 것이고, 체제에 순응하거나 도망 – 탈조선 – 하는 두 가지 보기만 적혀있는 답안지만을 강요하는 체제를 향해 저항하는 것이다. 멘토를 찾아 기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수평적인 연대를 이룸으로써.
나는 <깨어난 포스>의 등장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짚어 누구는 흙수저, 누구는 일베, 누구는 낙담했다가 회심한 386, 누구는 세상을 등지고 득도한 사람 흉내를 내는 386이란 식으로 직접적인 비유를 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앞서도 말했듯 그런 식의 비유와 해석은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한국 사회에 대한 은유의 틀 안에 가둬 더 많은 상상력과 해석의 가능성을 질식시키는 일이니까. 그러나 굳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서 제작 당시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흔적을 찾아내야 속이 시원한 거라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나? J.J.에이브럼스와 로렌스 캐스단이 의도했든 아니든, <깨어난 포스>는 외따로 버려진 것 같은 오늘날의 청춘들을 위한 훌륭한 위로이자 독려로도 읽을 수 있다. 도망치지 말라고. 너처럼 버려진 사람들을 찾아 손을 내밀어 동료가 되고 연대하라고. 이 싸움은 유일한 싸움이고 항구한 싸움이니까, 지치거나 낙담하지 말고 계속 담대하게 싸워 나가라고. 두렵겠지만, 루크의 라이트세이버를 잡으라고. 포스는, 빛은 언제나 네 안에 있으니까.



라이트세이버를 잡으렴. 포스는, 빛은 언제나 네 안에 있으니까.
© 2015 Lucasfilm

p.s. 지유석씨가 마지못해 <깨어난 포스>가 시대정신을 반영한 흔적으로 인정한 “여성인 레이가 포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흑인이 조력자로 나선다는 점”은 “단지” “오리지널보다 진보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말 수준의 것이 아니다. 당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 중 이렇게 여성 주인공을 우주의 운명 한 가운데에 내세운 작품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 헤아려 보라. 2015년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블록버스터 영화 주인공 중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와 <깨어난 포스>의 레이는 특별 언급을 해도 좋을 만큼 드물게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이다. 이게 시대정신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원문 : 이승한 블로그 <라이트세이버를 잡으렴. 포스는, 빛은 언제나 네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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