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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호의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 입력 2016.01.21 15:48
  • 기자명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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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주인공 홍설은 늘 도움을 받는다. 유정으로부터는 장학금을 양보받았고, 백인호로부터는 옷을 샤방하게 입고 다니라는 조언을 듣는다. 친구인 보라로부터는 남자를 소개 받는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정작 홍설은 그 도움과 조언을 단 한 번도 원하거나, 청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그 사실을 안 홍설은 유정에게 몹시 화를 냈고, 소개팅 장소에서도 억지웃음만 지었다. 백인호의 조언도, 실제 상황이었으면 무척 무례하게 느껴질 만한 지적이었다. 도움, 조언, 소개. 아주 좋게 표현했을 때나 그런 단어를 붙일 수 있지. 약간의 호의도 없이 말하자면, 그것은 그냥 오지랖일 뿐이다.
물론 억울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항변할 수 있을 거다. “나는 호의였는데. 나는 널 생각해서 그런 건데.” 의도를 의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받아들이는 사람이(이 경우에는 홍설이) 그것이 도움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세상은 넓고 오지랖은 많다
호의의 탈을 쓴 오지랖이 드라마 속에만 있을 리는 없다. 조금 과장되어 있을 수 있어도, 드라마는 현실을 꽤 잘 반영하고 있다. 아니, 장학금을 양보한 유정 정도면 양반이다. 차라리 그건 실제로 도움이라도 됐지 않은가.
세상에는 도움조차 안 되는 오지랖을 펼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예의 없는 친절도, 형식뿐인 관심도 너무나 과잉인 시대다. 얼마 전에 내게취업은 언제 하느냐.”고 물은 뒤에 바로먹고 살기 힘들겠네.”라고 얘기했던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의 어머니가 그랬다. 내 지난 학점을 물은 뒤에 한숨을 쉬던 어떤 선배가 그랬다.


몇 주 앞으로 다가온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을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도 그렇다
. 민족 최대의 오지랖이 펼쳐지는 날 아니던가. “살은 언제 뺄 거냐.”부터 해서여자가 그러면 안 되지, 남자가 이래야지.”, “결혼은 언제 할거냐,” “공부 좀 열심히 해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관심들. 언제부터 그리 관심들이 많으셨는지.
인생의 선배로서 한다는 조언들도 역시다.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틀렸다고 전제하며, 내가 너보다 훨씬 훌륭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정해놓기 때문이다. 그래. 물론 호의일 것이다. 호의였을 것이다. “다 너 잘되라고하는 말일 수 있다.


호의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호의를 베풀고는 욕을 먹어 당황했던 적이 있을 테다. 호의였던 것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폭력이 되고, 우리는 종종 가해자가 된다. 도무지 이해 못 할 일이다. 아니, 내가 왜너 잘되라고 한 말을 하고 욕을 먹어야 하는가.
그러나 호의가 폭력이 되는 어떤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치즈 인 더 트랩>에서 그랬듯, 상대가 원하지 않은 호의, 청하지 않은 호의가 그렇다. 상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호의는 당사자를 무력하게 만들기 쉽다. 당신의 그 넓은 오지랖을 펼치고 싶게 하는 그 사람, 그 사람 역시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역시 하나의주체라는 이야기이다. 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자신이며, 어려움에 빠졌을 때 조언을 구하는 것 역시 자신이다. 상대가 그럴 능력이 없을 거라 판단하고, 그 과정에 끼어드는 것 그 자체로 무례이고, 폭력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호의가 대체로 이렇다
. 연장자에게서 연소자에게로, 상사에게서 부하 직원에게로,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선생에게서 학생에게로. 자신이 우월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그 나름대로 근거와 이유가 있을 것이며, 당신의 조언이 정말 필요했다면, 먼저 도움을 청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호의를 오지랖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호의가 오지랖도, 폭력도 아닌 채로 남을 수 있는 때는 오직 상대가 그것을 원할 때뿐이다. 당신의 권위는 당신이 내세움으로써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이라면, 그는 당신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건강이 걱정된다고 상대에게 "살 좀 빼야지"라고 말할 필요 없다. 대학과 취업이 걱정된다고, "성적은 얼마나 나왔어."라고 구태여 물을 필요도 없다. 당사자는 이미 그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말은 폭력 이상이 되기 어렵다.


상대가 청하지 않았다면
, 당신이 호의라고 꺼내 든 그것, 넣어두시라. 당신의 당신만의 호의를 계속한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호의를 보일 수 없을 테니까. 당신에게 (원하지 않는) 호의를 내보일 권리 따위는 없다. 당신이 정말 그를 생각한다면, 가끔은 침묵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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